10년째 목수 일을 하고 있는 요하임은 사실 덴마크 왕가의 직계손이다. 건조한 나무 자재들을 점검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작업장을 정리하며 톱밥들을 쓸어내는 일로 하루를 마감하는 그의 일은 얼핏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무를 깎아내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구체화하는 순간이 요하임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가 나무를 깎으면서 생활을 하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가문의 몰락이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바로 그가 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목수일을 하는 것으로 아내와 두 아이를 부양하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벌이가 되지는 않지만 그리 걱정하지는 않는다. 월 수입에서 생활에 필요한 비용의 모자라는 부분을 바로 국가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비록 아이팟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즉시 즉시 구입하지는 못하고, 새로운 핸드폰으로 그 때 그 때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소득과 사회의 지원으로 주말이면 인근 공원으로 도시락 싸들고 가족 나들이를 간다든가, 아이들의 유소년 축구 리그 코치를 하는 등 적절한 문화 생활과 여가 활동을 즐기기 위한 충분한 소득을 보장받는 것이다. 이렇듯 덴마크에서는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자신의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도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가 있다.
얼마 전에 이런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캐나다 공영 방송에서 방영 된 적이 있다. 남들은 캐나다 산다고 하면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복지를 마음껏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실상은 이렇게 유럽의 복지국가의 제도를 마냥 부러워 하기만 하고 현실적으로는 미국의 모든 제도를 따라가고만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의 노동조건을 포함해서 말이다. 한국에서 4년제 대학 졸업 학사들의 취직율이 낮다고 개탄하는 얘기가 나오는 것 같은데, 노동환경의 열악성은 이곳이 더 하면 더 했지 덜한 것은 절대로 아니어 보인다.
(토론토 근처는 조금 낫다고 하기는 하는데) 적어도 이것 밴쿠버의 실상은 더욱 심각하다. 도서관에서 시간제 급여를 받으면서 비정규로 책을 서가에 꽂는 일을 하는 대부분의 직원들도 나름 이곳에서 내로라 하는 학교에서 석사까지 하고 나온 사람들이고, 로저스는 블록버스터와 같은 비디오 대여 체인점에서 비디오를 꽂는 일을 하는 친구들도 나름 좋은 대학에서 영화 관련 공부를 “많이”하고 나온 친구들이다. 내가 일하는 동네 슈퍼체인에서 조차 유명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전공을 하고 나온 친구들이 많다.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포항공대 컴퓨터 관련 학과 졸업생이 하이마트에서 컴퓨터 파는 일을 하는 셈이다) 뭐 좋게 봐주면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일반 인문계 졸업생의 경우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심리학과, 사회학과, 등등을 전공한 사람들은 도대체 취직이 안된다. 잘하면 도서관에서 책 꽂는 일을 하거나 일반 서점에서 일을 한다. 인문학이 좋아서, 사회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공부를 시작했지만 그게 생계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에 소매업이든 뭐든 알바를 뛰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나이를 한 개 두 개 먹게 되면 아무래도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고, 다시금 부모에게 손을 벌리면서 공부를 또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말하자면 보다 취직이 잘 되고 벌이가 좋은 직업을 위한 공부로 말이다. 예를 들어 부동산 중개업이라든가, 회계사, 아니면 전문 기술 같은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혹은 부모가 어느 정도 뒷받침을 해줄 수 있다면 아예 (한국처럼) MBA로 몰려가보기도 한다. 지금 나와 같이 슈퍼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대학생 친구들은 처음에 라틴어를 전공한다고 하기도 하고, 서유럽 고대사를 전공하겠다고 호기롭게 얘기를 하는 아기들이 많았었지만, 일년 이년이 지나자 모두들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꿨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미국식 신 자유주의 질서에 조응 하는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 4위 밴쿠버의 현실이다.
과연 이런 캐나다에 미래가 있는 것일까? 젊은 사람들이 모두들 “돈” 되는 공부만 해야하고 “돈” 되는 일을 찾아야 인정을 받는 사회가, 과연 내가 부모, 친구들을 모두 등지고 선택한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