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3학년 주임 선생의 별명은 싸이코였다. 7시 등교, 우열반 편성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학 진학생을 풀빵 찍어내듯이 찍어내는 공장과도 같은 학교에서, 성적 향상을 지상 과제로 생각하고 시험 공부 외에 모든 것을 학생들로 부터 차단해내는 것에 불철주야 물불을 가리지 않아서 싸이코라고 불리던 선생은, 당연스럽게도 동료 교사와 학부모들로 부터 일대 존경과 찬사를 받았고, 자율학습을 거부하는 학생을 몽둥이질로 머리를 깨뜨린 과오는 학생 지도의 열의가 차고 넘쳐 벌어진 실수 정도로 인정되었다.
열의.. 그렇다 선생의 열의와 성실성 만큼은 사실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생들이 새벽 7시 등교, 밤 11시 귀가를 하는 동안 그런 살인적인 근무시간을 (오직 학생들의 진학 지도를 위해) 빠짐없이 일해왔으며, 그 선생을 추앙해 마지 않는 학부모들로 부터 그 잘난 촌지하나 받은 적이 없이 검소한 옷차림을 유지했다. 선생이 학생들을 그렇게 다그친 이유는, 3년 동안 고생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 만이 그 나이의 아이들에게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믿었고, 그것이 진정으로 학생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제자들을 위한 “성실”과 “헌신”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던 중 전교조가 결성되고 학교 교사 중 몇 명도 가입했다. 평생 “성직”이라고 생각하고 학생들을 위해 희생해 온 선생에게 있어서,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부르고 “노동 3권”을 주장한 교사들이 교사의 자질이 덜 된 이기주의자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획일적인 수험공부를 벗어나서 사회에 대해 생각하고 학생 개개인의 재능을 살려주는 교육을 해야한다는 전교조 교사들의 주장이 선생에게는 현실을 모르는 무책임한 선동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사실 모든 사회가 우수 대학 졸업생들을 우대하고, 이른바 SKY만 졸업하면 대기업 취직과 나머지 여생이 탄탄대로처럼 보장되던 그 시절, 반대로 말하자면 삼류대학을 나오거나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취직도, 승진도 어려웠던 그 시절에, 획일적인 교율에서 벗어나서 개인의 재능을 신뢰하자는 말은 얼마나 (아름답지만) 허황한가? 그래서 선생은 분연히 싸워야 했다. 학생들의 인생을 지키기 위해, 학교의 진학율을 지키기 위해, 전교조 교사들을 교문 밖으로 내몰고 물을 뿌려대고, 전교조 교사들의 유인물을 받은 학생들을 색출해서 대가리를 부수고 빠따를 때려가면서, 자신과 학교의 명예를, 학생들의 미래를 지켜냈다.
그렇게 선생이 지켜낸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왔다. 몇몇은 선생의 가르침대로 (적절한 노력과 적절한 처세술을 동반해서) 성공을 위해 일로매진했고, 몇몇은 자신의 숨은 재능을 뒤늦게 발견해서 그 길을 걷기도 하고, 몇몇은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몇 년 후 IMF가 터졌다.
많은 회사들이 문을 닫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었다. 증시, 환율, 집 값 등 모든 것이 폭락했다. 다리를 열차 선로에 놓고 잘라내는 등 보험금을 타기 위해 자신의 혹은 자기 자식의 몸을 상해하는 일이 번번히 일어났다. 돈이 없는 세입자들은 월세를 내지 못해 거리에 나앉았고, 세입자들로부터 월세를 받아 생활하던 집주인들은 은행빚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팔고 거리에 나앉아야 했다.사람들은 어디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망연자실했다. 선생의 철학을 굳게 믿고, 공부에만 전념했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졸지에 IMF를 떠맏게된 김대중 정부는 어부지리로 보다 손쉽게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한번 된 서리를 맞은 모든 국민들의 가슴에는 무엇보다 “돈”이 소중한 것이다라는 철학이 자리잡게 되었다. 폐업과 실업의 난국 속에서 한국의 노동시장은 전례없이 유연하게 되었고, 파견근무나 계약제 근무등 여러가지 비정규직 형태가 저항없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 때 반짝이는 발상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한 벤처기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기 시작했고, 그들이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엄청난 주식 시세 차익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자 너도나도 주식 거품을 이용해보고자 눈에 흰자위를 띠었다. 당연한 듯이 사기꾼들들 등장하고 피해자가 속출했다. 선생이 예견한 우수 대학 입학을 통한 신분상승이 보장된 미래는 더 이상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의 축적이 최고인 세상이 왔다. 선생은 침묵했다.
그러던 중 이해찬이 교육부 수장이 되어 일대 공교육 개혁을 단행했다. 모든 비정규적인 추가 학습, 과외학습이 규제되었고 사교육 시장을 철저하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대입 시험의 난이도도 대폭 하향 조정되었으며, 과외 봉사활동을 통한 내신 성적과 개인 특기 만으로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이상적인 교육환경은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부의 축적을 통해 성공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자신의 다리를 잘라 보험금을 타먹어야 하는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작금의 현실이 “자신의 꿈을 지키고, 재능을 발현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보호장치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해마다 기업의 신규채용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이제 더 이상 좋은 대학의 간판만으로는 충분한 경쟁력이 되지 못했다. 이렇듯 사회 현실과 교육 개혁 정책의 어처구니 없는 부조화 속에서, 음성적인 사교육 시장의 혜택을 받기 위해선 높은 비용이 요구 되었고, 이 때서 부터 빈부격차에 따른 수험능력의 차이도 두드러지게 되었다. 선생이 믿었던, 3년 간 죽어라고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면 팔자 고치는 시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그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세상이 왔다. 선생은 이 때도 침묵해야 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에서도 신자유주의 하에서 파탄나는 인민들의 생활과, 각종 공교육 정책의 부조화는 심화되기만 했다. 당장 비정규로 하루 8시간 백화점 카운터에 서서 금전등록기를 찍어내하는 어머니 입장에서 볼 때, 현재 교육제도 하에서 딩가딩가 공부하는 자식들이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 상황이,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지는 이 망할 놈의 사회 탓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애들을 놀게 만드는 공교육 탓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 정부 살림을 이끌며 신자유주의를 적극 도입하고 자유무역협정을 진두지휘하던 이해찬 국무총리에게는 뭐라 항변하기 힘들었지만, 그냥 그저, 이 말도 안되고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공교육 정책을 개발한 이해찬 전 교육부총리 만을 욕하게 되었다. 이 때, 혜성처럼 나타난, 명문대 출신이고 굴지의 대기업 CEO출신인 대통령 후보가 각종 교육 규제를 풀고(0교시 수업 다시 시작하고, 사교육 시장 활성화 시키고), 심화된 경쟁을 통해서 우수 학생을 육성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을 때 감동하지 않은 부모가 없었으리라. 그들은 이제 자기 자식들이 부잣집 자식들과 동일한 수준의 사교육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명박씨를 보면서 처음에 고등학교 시절의 싸이코가 떠올랐다. 물론 선생과는 달리 그 개인의 도덕성이나 검소함에서 엄청나게 저질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대통령이지만, 이번 자유무역협정이나 교육규제 철폐에 있어서, 그는 이런 정책들이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백성들에게 때로는 사과하는 척도 하고, 때로는 몽둥이질을 하면서 끈질기게 수험지도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쇠고기 수입 문제로 일시적인 지지율 하락이 나타나긴 했지만, 과반수의 인민들은 아직도, IMF 이후 부터 줄기차게 시행된 시장 중심의 경제 속에서 이명박이 얘기하는 대로 살아야 보다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싸이코의 믿음과 철학이 신자유주의 질서 속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듯이, 60년대 경제 부흥의 주역인 이명박의 철학이나 그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이 사회 속에서 그대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얼마 전, 세계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인정받았던 비보이 한 명이 생계 곤란을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있었다. 어쩌면 그는 이해찬 교육 1세대로서,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갈고 닦으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인 인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배워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한국 비보잉의 우수성에 찬사를 보낼 때, 스스로 성공했다고 믿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은 반지하에 살면서 밀린 월세를 해결하지 못해 하루 하루 전전긍긍한 삶을 살고 있어야 했다. 이것이 바로 이해찬 교육 부총리와 이해찬 국무총리의 정책 괴리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현실이 이런데도 자식을 0교시 수업에 등 떠밀어 보내는 부모만을 탐욕스럽다고 탓할 수는 없다.
만일, IMF의 고통 속에서,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어떤 한 언론 만이라도, 행복한 삶에 대한 다른 철학을 제시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역사 속에서 “가정”이라는 것 만큼 바보스러운 짓도 없지만, 그 때 넘쳐 흐르는 주식 투자를 통해 한 몫 잡는 것 말고도, 사람들이 재밌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게 모든 인민들에게 알려졌다면 어땠을까?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차를 바꾸고, 집을 넓히고, 매번 새로운 신상품을 사들이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해찬의 교육 개혁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싸이코도 자신의 철학이 그다지 재미없는 거라고, 시대에 뒤쳐졌다고 순순히 인정하게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