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겨울, 스크린 쿼터 투쟁이 한창이고 영화인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철야 농성을 할 때, 나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덩달아 끼어든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이미 한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었을 때이고, 여기 저기서 영화나 애니메이션 관련 직종이 언론에서 조명을 받고 있던 차라, 영화사 대표와 배우들, 유명 감독, 평론가들이 한 자리에 모인 철야 농성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가 충분했었고, (그 한 밤 중에) 여야 국회의원들이 철농장에 찾아와서 영화사 대표들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었다.
무슨 “문화 주권 수호 결사대” 같은 뽀다구를 잡으며 영화인들 끼리는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인 양 결의에 차 있었지만, 사실 골리앗 크레인의 고공 시위나 화염병, 죽창 시위 진압 등으로 단련된 경찰 입장에서 봤을 때는, 그냥 책상물림들의 뻥카라는 것이 눈에 보였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영화인들인 한국 영화 수호, 민족 문화 보호를 읊어댔음에도 세상 사람 모두 이게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나아가서 그 전에 농민들이나 노동자들이 밥그릇 싸움을 할 때에 영화인들이 연대투쟁으로 나섰던 적이 없었던 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다.
웃기는 건, 경찰 측에서는 이렇든 국민적 지지가 낮은 시위에 대해 어떤 움직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교 영화과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거듭, 정말 아무런 위협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찰을 돌기도 했었고, 철농텐트 안에서도 웃기는 것이, 이건 무슨 투쟁의식 같은 것은 전혀 볼 수 없이 영화사 대표나 프로듀서들은 계속 모여서 회의하고 인맥 만들기에 바쁘고, 감독들은 모여서 술 마시고, 울면서 주정하고, 이건 무슨 상가집에서 밤새는 것도 아니고…
여하튼, 사람 좋기로 소문이 났던 <8월의 크리스마스> 감독은 계속 들락날락 거리면서 겨울 밤 규찰을 돌던 영화과 학생들을 챙겨주기 바빴고, 당시 영화사 대표와 불륜을 저지르면서 만든 불륜 영화로 흥행에 성공한 신인 감독이 나에게 “한국 영화가 망하면… 뭐 애니메이션은 살아남을 것 같아요?” 라고 빈정빈정 대고 있을 때 (아.. 나는 정말 뒷끝의 정점이다.. 벌써 10년 전 일인데), <코르셋>과 <세븐틴>으로 흥행에 거듭 실패한 한 감독이 “아니.. 차라리, 생존권 싸움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국민들 모두 이게 다 밥 그릇 싸움이라는 걸 아는데, 오히려 문화주권 수호라고 거창하게 대의명분을 내세우니까 호응을 못얻는거 같아요”라고 정곡을 찔렀다. 아.. 그 때의 썰렁함이라니, 만일 흥행 감독이 그런 얘길 했으면 그렇게까지 경멸의 눈빛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을텐데… 그렇게 지당하신 말씀이 너무도 잘난 사람들의 “뭣하러 그렇게 스스로 품위를 손상시키냐”는 등의 개무시로 묻혀가는 걸 보는 건 정말 딱한 일이었다. 그래도 <약속>의 김유진 감독은 “영화 인생 20여년 만에 간신히 흥행했는데 쿼터 철폐 왠말이냐!”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지만.
도대체 뭐가 민족 문화 주권수호고 뭐가 한국 영화 보호냔 말인지. 지금처럼 대형 영화 하나 개봉하면 전국에 400개 ~ 600개 스크린에 걸리는 시기 (그래서 작은 영화는 아예 개봉도 못하게 되는 시기)는 아니었었지만, 그 때는 그 때 대로 해마다 트렌드라는게 있어서 한 해는 여름이고 추석 연휴고 멜러물만 죄다 스크린에 걸리고, 다음 해는 젊은 애들이 주인공인 절단 공포영화, 그리고 몇 해를 걸쳐 조금씩 양념만 바꿔서 나오는 조폭물 등이 지겹도록 반복되고 있었는데, 그런 영화들을 스타 캐스팅과 독점적인 배급력으로 스크린을 죄다 차지해서 관객들이 다른 영화들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하는데 동참할 때는 언제고 말이지. 그러고도 문화적 다양성 운운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는 건 너무 뻔뻔한 것 아닌가?
지금 한국 영화 위기라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투자가 안되서 위기라고 하는 건가? 그래서 제작편수가 줄어서 위기라고 하는 건가? 몇 편의 흥행 예상 영화들에게만 투자가 몰리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적은 예산으로 만드는 영화들이 투자를 점점 못받아가는게 쿼터일수가 줄은 것과 관련이 있는 걸까? 아니면 작은 영화들의 생존권을 보호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럼 다른 식으로 물어보자. 한국 배우에 한국어 대사, 그 외엔 죄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그것도 80년대) 장르 영화를 그대로 본따 만든 영화가 600여개 스크린에 걸리면서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 “아버지와 마리와 나” 같이 10개 극장에서 교차 상영되는 영화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것일까?
스크린 쿼터 지지론자들이 주장하는 논리 중에 제조비가 수십, 수백배 차이가 나는 외국 제품과 같은 가격으로 동등한 경쟁을 하라는 것은 부당하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논리는 두 가지에서 결함이 있다고 생각 되는 것이, 첫째로, 국내에서 제작되는 영화들 역시 작품에 따라 제작비가 천차만별인데도 불구하고 저예산 영화에 대한 보호장치가 전혀 없는 현실인데, 그런 경제적 논리를 수입영화에만 적용하기가 공정무역 차원에서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 미국영화가 전세계를 지배하는 원인이 단지 제작예산이 더 높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시나리오 단계에서 부터 이거 되겠다 싶으면 물량을 때려부어서 만드는 경향이 있지만, (지금은 검증 시스템이 더 철저한 느낌이 있지만) 90년대 까지만 해도 그렇게 돈 발라놓고도 처참하게 망해서 영화사 부도내는 미국 영화들도 많았고, 지금도 소규모 예산으로 흥행에 성공하는 영화도 많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그런 블록버스터 장르영화들의 흥행공식을 개발해내고, 그걸 완수하는 제작인력들을 발굴해 내고 검증해온 것이 다름아닌 저예산 영화라는 사실이다.
‘김래원’과 ‘요리’라는 두 가지 키워드만 가지고 보기 시작한 드라마 <식객>의 최근 에피소드에 한국 전통요리가 해외에서는 일본 식당에서 일본 요리로 둔갑해서 인기를 몰고 있다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소식을 접한 주인공의 입에서 예상 외의 대답이 나왔다. “난 그런 거 관심없어요. 내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운암정이 맛을 잃고 있다는 거예요.” 물론 방송계 최고의 흥행 작가가 참여한 작품이니 결국에는 민족 자존심을 건 대결이라는 최고의 흥행 코드를 비켜갈리가 없지만, 당장 이 장면에서 만큼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말해준 대사였다고 본다.
과연 한국영화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2006년 부터 쿼터가 축소되어 한국 영화가 투자가 안되는 건가? 아니면 시장통에 우후죽순 들어선 ‘불타는 조개구이’같은 상황에서 관객들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더 이상 찾지 못해서 외면하는 건가? 그럼 대책은? 지금 여기서 쿼터 철폐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스타가 출연한 장르 영화가 무조건 나쁘고 싫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단지 무조건 애국심에 호소하고 보는 치사한 짓거리 좀 닥치고, 보다 장기적인 한국영화의 배양에 대해, 보다 다각적으로 접근해서 밥그릇을 정당하게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방화, 외화 구분 없이 <프린트 벌 수 제한>, <요금차등제>, 그리고 <저예산 영화 의무 제작 (상영) 제도> 같은 진정 문화의 다양성을 담보해 나가는 길로 범위를 확대해 가보는 것이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