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문화가 산책

용의자 X의 헌신
TV에서 명성을 떨친 “갈릴레오”시리즈의 극장판. 그러나 배우들과 포맷만 빌려왔을 뿐, House나 Numb3rs와 같은 과학 추리물이었던 TV시리즈와는 달리, 외로운 천재들의 마음을 쓸쓸한 대도시의 풍경과 함께 잔잔하게 그려낸 심리극으로 재탄생했다. (때문에 정교한 추리드라마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처음에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맥이 빠졌을듯). 
퀀텀 오브 솔라스
뭐.. 그럭저럭. 근데 이번 007은 참 열심히 뛰어다녀. 당초에 비행기 안에서 보기엔 좀 어정쩡한 영화였는데, 결말 역시 어정쩡한 똥폼으로 점철하면서 김 새버렸다. 
과속스캔들
이 영화의 완성도를 찬양하던 어떤 블로그에서 “이제 작가주의 좀 그만 하자“라고 하던데, 뭐 사실 남의 돈 빌려 찍는 영화인 이상, 최소 본전은 돌려줄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건 투자를 받은 사람으로서의 기본적인 책임이지만.. 뭐 그래서야 어디, 시대가 지나도 깜짝 놀랄만한 걸작이 나올 수 있겠나.. 기획사 중심의 비숫비숫한 장르영화만 또 우후죽순 쏟아져 만들자는 건가? <결혼이야기>나 <닥터봉>이 평단의 호평을 받은 것이 15년이 넘은 지금, 한국영화의 수준은 이제 잘 빠진 영화 한편이 나왔다고 해서 판을 다시 짜자..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닥터봉>으로 세련된 연출력을 인정받았던 이광훈 감독의 다음 작품이 <자귀모>였다는 역사 속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영화를 너무 제조업 관점에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암튼.. 잘 빠진 가족 코미디물. 헐리우드가, 특히 디즈니 계열이 당연하게도 좋아할 만한 얘기.
워낭소리
뭐 이 역시 세련된 기획 다큐. 흥행성공이 좀 어이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관객들의 냄비근성을 향해 던지는 돌팔매에 덩달아 얻어맞아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도대체 뭘 기대한거야? 인간과 동물의 거룩한 우정이라는 (상투적이지만) 흥행코드를 품고 시작한 기획도 좋았고, 할머니의 푸념은 가족영화 장르의 정형적인 코믹 추임새로서 정확하게 쓰였다. 하지만 이런 장르의 공식을 뛰어넘어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나레이션이나 인위적인 배경음악을 배제함으로써 최대한 건조하게 이끌려고 노력한 감독의 자신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다큐라고 할지라도) 사람이 카메라 뒤에 서 있는 이상 영화는 영화일 뿐, 오해하지 말자. 어짜피 제작사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는 뻔한 건데.. 그 장면에서 소가 눈물 흘리는 장면을 안넣으면 도대체 뭘 넣는단 말인가? 그리고 제작자가 이명박씨를 만나 환담을 한 것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데…… 극장에서 상영할 때 맨 처음 나온 크레딧을 잊었는가? 이 영화는 기획단계부터 공적자금 지원을 받은 작품인데, 왜 다들 독립영화라고 하는 거지? 세금의 일부로 최초 기획비용을 조성한 이상 저 정도 서비스는 해줘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더라 하더래도, 사실 좀 흥행을 너무 의식했다는 생각은 계속 들었다. 다 좋은데, 부디 이 작품이 독립 다큐의 모범사례가 되는 일만 없었으면 한다.  
슬럼독 밀리어네어
허장성세도 이런 허장성세가 없다. 아마도 최근 10년간 가장 과대평가 받은 작품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다. 도대체 대니 보일 정도 되는 사람이 왜 인도까지 가서 이런 영화를 찍었는지 모르겠다. (아! the Beach 에서 알아봤어야 했나?) 슬럼가에서 어렵게 사는 아이들의 에피소드들은 그냥 90년대 홍콩영화나 한국영화에서 무수히 본 것 같고, 경찰서 고문 장면은 정말 뜬금없었으며, 퀴즈쇼의 긴장감 역시 너무 작위적이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터 주부 퀴즈왕>이 이 영화보다 700배 정도 더 가슴에 와닿았다는..
오스트레일리아
비행기 안에서 15분 보다 그냥 잤다. 물랑루즈 이후 7년 만의 작품이 <진주만> + <크로커다일 던디>라니..
아키라
91년 1월, 대학 영화 써클 생활 1년, 유럽 예술 영화의 허영을 버리고, 현대 미국 장르영화들 해석에 한참 재미를 느끼던, 그러니까 다시 말해서 만화영화 따위는 (지난 10년간) 거들떠도 안보던 그 시절. 부산에 살던 선배의 집에 놀러 가서 시간 떼우기로 걍 들어갔던 극장. 처음 단 5분으로 내 두 눈을 스크린에서 떼어놓지 못했던 영화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폭풍소년>!!
이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아키라>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그렇게 잘 만들었다는 얘기는 풍문으로 듣고는 있었지만, 홍콩제작 만화영화로 둔갑해서 불법수입되서 단 일주일간 (지방) 극장에 걸렸던 것을 보게 될 줄이야.. 그리고 이 영화 한 편 땜에 내가 10년간 애니메이션계에서 일하게 될 줄이야.. 이번에 한국에 가서 우연하게 12권짜리 만화책 전권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보니 왜 애니메이션에서는 줄거리를 절대 이해할 수 없었는지 이해가 가더만. 이 작품의 극장판을 위한 폭력 수준의 줄거리 난도질에 비하면 <아마게돈> 극장판은 정말 친절한 편.  
원작도 읽었겠다.. 2001년도에 파이오니아가 출시한 스페셜에디션 DVD를 다시 집어들어 보게 되었다. 오.. 역시 작화 / 애니메이션 수준은 결코 지금봐도 뒤쳐지지 않아..

초시공요새 마크로스 – 사랑,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러 저러한 경로로 여러 번을 봤지만, 한국에서 정식 DVD를 사온 기념으로 다시 한번.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전혀 사라지지 않는 (오히려 더욱 공고해지는) 걍팍함과 까칠함만을 확인했다는.. 쩝. 도대체 왜, 참혹한 전쟁터에서의 변신 로봇 조종사와 아이돌 여가수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 만화영화를 보면서, 정치적 시각의 불균형이 감상을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건지… 그나저나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제 같은 걸 기획하면 어떨까?
Magic Hour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의 미타니 코기 감독의 신작.. 여전히 정신없이 꼬여가는 스토리에 쉴새없이 웃음이 터진다. 하지만 달랑 4편을 쓰고 찍은 작가 / 감독에게 벌써 매너리즘이 느껴지는 건 나 뿐일까? 
1. 여전히 라디오 드라마 제작진, 호텔리어, 영화배우 등등 직업의식을 최고로 존중하는 일본적인 (닭살)정서에(게다가 등장 인물들의 가족은 모두 불안정하고),  
2. 크고 작은 사고들이 연발해서 터지면서 그 프로페셔널리즘이 위기에 빠지게 되고, 
3. 위기에 빠져 좌절한 등장인물들에게 (억지스러운) 감동 요소가 용기를 주며, 
4.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모든 사건과 갈등이 일거에 해결된다는 .. 일종의 직업의식 스쿠루볼 코미디라고나 할까?
한 때 천재라고 칭송받던 쿠도칸이나 한국의 장진 감독이 계속된 과로로 인해 요즘 헛발질을 계속하는 걸 보면.. 미타니 코기 감독도 좀 쉬어야 할 듯..
여기에 <Blindness>, <Burn after reading>을 포함하면.. 와.. 정말 느닷없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보고 사는 게 아닌지. 이러고도 마음의 여유를 잃고 산다고 투정해도 되는겨?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