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후)

오랜 만에 아내와 가진 휴가.. 
록키에 가자, 선샤인 코스트에 가자 등등 계획이 무성했지만, 날씨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이 결합되어 바로 직전 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다가, 그러던 도중 갑작스럽게 결정된 곳이 바로 오카나간 지역이었다. 예전부터 한 번쯤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마침 다른 지역에 비해 기상예보도 양호한 편이었고, 아내나 나 역시 타지방으로 까지 구직활동을 넓혀본려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번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아주 시골 곳곳에 대자본이 침투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 것이라고나 할까나. 우리가 신세를 졌던 섬머랜드의 한 리조트는 (주변 건물들과 전혀 균형이 안맞는 것이) 한 눈에 봐도 외부에서 들어온 대형 자본으로 세워진 시설로 보였는데, 의외로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표정이 너무나 피곤해 보였다. 딱히 내가 만난 그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블로거들의 평에서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는 얘길 읽었다. 
그게 사실 우리한테야 휴가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먹고 사는 일이니, 우리처럼 방긋방긋 거리길 기대할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나름 고객 서비스 업종인데 좀 너무 딱딱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면서 섭섭하기도 했고, “그래도 저 사람들 지겨운 포도 농장 일 그만 두고 이곳에 와서 유니폼 받고 처음 일 시작했을 때는 자부심이 대단했을껄???” 라면서 괘씸해 하기도 했다가… 정반대로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처음엔 자부심이 대단했겠지만… 어쩌면 소득수준도 높아졌겠지만, 지금 대형 자본 밑에서 하는 이 일이 과연… 예전에 포도농장에서 친구들과 같이 놀며놀며 일 할 때에 비해 그렇게 대단한 건가?
그러다 보니, 예전에 FTA에 대해 생각을 남겼던 것이 떠올랐는데……
전편에 이어서…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서 걸음이 불편했던 덕팔이는 학창시절이 정말 비참했다. 단지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을 스스럼없이 공격할 수 있는 아이들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따돌림 받지 않기 위해 가장 약한 상대를 떼거지로 괴롭히는데 부끄럼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이란 얼마나 잔인한가? 
상투적이지만 덕팔이에게도 그를 항상 이해해주고 보호해주는 유일한 친구 삼식이가 있었다. 삼식이 덕분에, 진작에 때려치웠거나, 누구 한 명을 죽이고 나서 쫓겨났을 학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자신을 때릴 때에도 삼식이 집으로 도망갈 수 있었고, 일반 가정에서 배웠어야 할 것을 삼식이에게 배울 수 있었다. 삼식이 덕택에 하루 하루를 용기를 가지고 겨우 겨우 살아갈 수 있었고, 삼식이는 덕팔이에게 친형 이상으로 믿고 존경할 수 있는 친구였다. 
때문에 자신에게 처음으로 아버지의 인생을 능멸하고 자기 두 발로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맥도널드 읍내 입점을, 삼식이가 두 손들고 반대하고 나섰던 것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걸 떠나서, 농산물 수입 시장이 확대되자 마을 주민들을 규합해서 반대 시위를 조직하는 삼식이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덕팔이에겐 평생을 지지리 궁상으로 살면서, 술과 욕지기로 점철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버지 굴레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술에 취해 툭하면 자신과 어머니에게 손찌검을 날리던 아버지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다면, 어릴 시절부터 고교 졸업 때까지 쉬지 않고 자신을 괴롭히던 또래 마을 사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작살낼 수 있다면,  FTA 든 뭐든, 농산물 시장 개방이든 모든 간에 영혼을 팔아서라도 쌍수를 들고 환영할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의 생각을 삼식이는 이해해 줄 줄 알았다. 
세월이 흘러, 삼식이가 반대를 하든지 말든지, 덕팔이가 환영을 하든지 말든지, 농사물 시장 개방 이후 양촌리의 농업은 그야말로 끝장이 났다. 이제 땅을 지키는 사람들이란 근근히 자기 입 풀칠하는 노인들 뿐이고, 덕팔이 또래의 주민들은 도시로 도시로 뿔뿔히 흩어지거나, 관광이나 부동산을 알아보러 온 외지인들 상대로 장사를 하게 되었다. 그나마 마을 요지에 자리 잡은 맥도널드에서 장애인의 몸으로 점장까지 된 덕팔이의 삶이 그나마 제일 나아 보였다. 
나름 거창하게 시작했던 삼식이의 시장개방 반대시위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끝내 시장이 개방되자, 마을 사람들은 삼식이가 외부 불순 세력의 사주를 받아 마을 사람들을 구렁으로 끌고 갔다고 몰아 붙혔고, 이런 모함을 견디지 못한 삼식이는 새색시와 야반도주를 해야 했다. 비록 세상 돌아가는 일에 잠시 이견이 잇기는 했었지만, 삼식이와의 이런 어이없는 이별이 덕팔이에겐 충격이었다. 그건 자신이 경멸해 마지 않던 아버지가 농약을 먹고 자실했을 때 보다도 더 충격적인 일이었다. 가끔… 서울에 다녀온 만수 놈 (어린 시절 덕팔이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그 놈. 그리고 지금은 외지인 부동산 업자의 바람잡이로 일하는 놈)으로 부터 삼식이가 청량리역 부근에서 노숙자로 살고 있다는 얘길 전해들었을 때에도 그럴리가 없다고 딱 잘라 부정할 수가 없었다.
몇 년 만에 만난 삼식이는 조금 야위었고 어깨가 좀 더 앞으로 굽어 있었다. 마을을 떠날 때 막 가졌다던 아이는 이미 닌텐도 캐릭터를 줄줄 외는 초등학생이 되어있었고, (한 눈에 보아도 말썽 꾸러기로 보이는) 그 아이를 단속하느라 정신이 없는 삼식이의 아내는 또 다시 배가 불러 있었다. 결코 이르지 않은 나이로 시작한 서울 생활. 중국집 배달부에서 부터 택배 직원, 대리 운전 등등 삼식이의 고생은 굳이 일일이 캐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고, 삼식이도 부러 줄줄 늘어놓을 필요도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삼식이 가족은 덕팔이가 내놓은 햄버거 새트 메뉴를 먹으면서 긴 침묵에 들어갔다. 그리고 침묵이 길어질 수록 덕팔이는 불안해졌다. 이미 덕팔이에겐 순수하게 옛친구를 반가와 해 줄 수 없을 만큼이나 지켜야 할 것이 많아졌다. 
아니나 다를까, 연대보증을 부탁하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덕팔이에게는 닳고 닳은 대본이 있었다. 어릴 적 자신을 괴롭혔던 마을 아이들이 이제 와서 (너무도 뻔뻔스럽게도) 글로벌 대기업(!) 직원인 덕팔이에게 종종 연대 보증을 부탁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개쪽을 주고 내쫓고 싶었지만, 나름 고객 서비스 업종이라서 상대가 어떤 보복을 할지 조심해야 했기에, 이것 저것 신경써서 만들어둔 완곡한 거절법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썼던 거절 대본을, 하나 뿐인 친구라고 생각했던 삼식이에게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서 왼쪽 6번째 갈비뼈 부근이 아프게 될 줄은 몰랐지만, 장애인의 몸으로 맨땅에 헤딩하며 지금의 자리에 올라온 덕팔이에겐 연대보증의 위험을 떠안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친구는 친구.. 덕팔이는 삼식이에게 일자리를 제안했고, 몇 년 후에 옆 마을에 생길 지점에 점장 후보로 추천을 넣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삼식이는 덕팔이의 두 손을 꼭 붙들면서 몇 번이고 고맙다는 애길 했고, 삼식이의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자기가 항상 형처럼 생각했던 삼식이가 무척 작아보였다.
삼식이가 일하기 시작한지 80일 째 되었다. 삼식이의 타고난 근면성과 친화력은 어쩌면 이런 종류의 업종에 최적의 조건일지도 모르겠다. 규칙적인 생활 덕택인지 삼식이의 얼굴에는 며칠 새 핏기가 돌기 시작했고, 다시 특유의 썰렁한 농담을 늘어 놓으면서 예전처럼 활달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삼식이의 아내 역시 다음 달 산달을 앞두고 건강이 좋아보였다. 하지만, 회사 규정을 앞장서 지켜야 하는 덕팔이로서는, 경기침체로 인해 매상이 계속 저조할 경우 90일 이내의 수습 사원을 먼저 해고해야 한다. 그것은 규정이다. 삼식이가 힘든 서울 생활을 마치고 이제야 어렵게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든 말든, 그와 그의 아내가 다음 달에 아기를 갖게 되든 말든, 삼식이가 덕팔이를 어릴 적부터 유일하게 지켜준 친구이든 말든 말이다.
이따가 삼식이를 불러서 해고통지를 해야 할텐데.. 왼쪽 6번째 갈비뼈 부근이 또 아프게 될텐데.. 일단 만수놈에게 전화해서 술 약속부터 잡아야 겠다. 역전 과부촌에서 미스김 옆에 앉혀놓고 술 한잔 하면서 사정 얘기를 하면 삼식이가 잘 알아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게 애초부터 차라리 만수놈처럼 부동산 업자 바람잡이라도 할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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