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문화가 산책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Cloudy with a Chance of Meatballs)>

2009년 9월 29일 현재 2주 연속 북미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내내 불쾌했던 것은 단순한 취향의 차이일 지도 모르겠다. 영화 전체에서 음식들이 땅바닥에 나뒹굴고, 접시를 깨고 하는 것들이, 케잌이나 파이를 얼굴에 쳐 던지며 놀아왔거나 해롤드 로이드 식 접시 깨기 코미디를 보면서 자란 애들한테는 낄낄 거리면서 넘어갈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을 걱정하는 걸 보면서 자란 나로서는 정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극중 인물들이 그런 음식에 대한 (혹은 음식들에 의한) 폭력을 경험하면서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 장면들마다 절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난데없이 아이스크림으로 뭉친 눈덩이에 맞는다든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스테이크 조각에 식탁이 부서진다든지 하는 장면들을, 감독이 일부러 그렇게 폭력적으로 연출해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해 경고를 한 거라면야 할 말이 없지만.. 적어도 극장에서 같이 영화를 본 애기들은 전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듯. 역시 취향의 차이인게야. 덧붙혀 우리 뒷통수로 팝콘을 계속 던져대며 깔깔거리던 애기들한테 다짜고짜 쌍욕을 퍼부은 것도 취향의 차이였던거지, 결코 내가 원래부터 까칠한 노인네라서 그런게 아니었다고.

그래도 맨 처음 오프닝 크레딧에서 “A Film by…… a lot of people” 이라고 나왔을 때만 해도 흐믓했었는데, 게다가 카메라맨 매니가 자신의 숨은 재주를 선보이는 장면에서는 같은 이민자 입장에서 가슴이 뭉클.. “For better life” 라니..

1억 달러 제작비 회수가 금방일 거라고 하니까 할 말은 없지만, 왠지 실사영화로 보면 더 재미있었을 것만 같은 유머코드가 많이 있었다. 나 같으면 조 단테 감독에 제이슨 시걸과 세스 로건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들었을 텐데.


<Friday Night Lights> 

말하자면 이런 거지. 지나가는 어떤 사람을 붙들고 물어봐도 “천안”이라는 마을하면 떠오르는 것이 호두과자와 “천안북일” 고등학교 야구부 밖에 없던 시절. 한 때는 해마다 봉황기와 청룡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가져다 주던 야구부가 벌써 몇 년 째 지역예선 탈락만을 거듭하고 있다. 절치부심 고민 끝에 마을 유지들이 모여 내린 결단은 천안이 낳은 국가대표 출신 탁코치를 스카우트 하는 일이었다. 마침 올해는 중학교 때부터 과물이라고 불리던 에이스 투수 길용이가 3학년 주장이 되는 해. 올해야 말로 천안북일의 우승신화를 되찾아 오는 원년이 될 것이다. 우하하하 … 하고 모든 마을 유지들이 기대만발 할 때, 지역 예선 1차전에서 투수강습을 얻어 맞은 길용이의 팔꿈치가 어이없이 재기 불능이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천안 시내 전체가 마치 물벼락을 맞은 듯이 잠잠해지고, 사람들은 슬슬 탁코치의 지도방식에 의문을 재기하기 시작한다. 이대로 천안시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물거품이 될 것인가?  

텍사스주 오뎃사 마을 고등학교 미식축구부의 실화를 바탕으로 2004년에 만들어진 동명영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았을 것이 틀림없는 이 TV시리즈는 <하우스>나 <로스트>와 같이 엄청난 흥행을 하고있지는 않지만, 이 나라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많은 젊은 아이들에게 3시즌째 지지를 얻고 있다. 마을 전체를 종교처럼 지배하고 있는 미식축구에 대한 애정과 그런 부담을 짊어지고 나가는 테일러 코치가족의 힘겨운 여정이 담담히 그려지는 것이 재미있다. 게다가 모든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재수없는 jock 정도로 그려지는 미식축구 선수들의 생활들이 하나하나 현미경 화면처럼 보여지는 게 새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H2 류의 아다치 미츠루 식 고교 야구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강추하는 미드.

그나저나 시즌3에서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졸업을 해버리는데,  시즌4는 어떻게 시작되려나.



<왓치맨>

글쎄.. 뭐. 만화를 영화로 잘 재현해냈다고 하는 점에서 별점을 주고 싶은 영화.. 덕택에 도무지 감이 안오던 장면들을 그럭저럭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진정 원작 만화의 골수 팬이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 그런 영화. 당신이 원작 만화를 보고 상상해낸 장면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아마도 슬램덩크 애니메이션 판을 보고 겪게되는 실망감만 되풀이 하면서 느끼게 될듯. 그래도 슈퍼 히어로들의 “리얼”한 일상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원작의 공헌도는 무시할 수가 없다. 피자 배달을 하던 스파이더맨도 이 원작 만화에 빚을 졌다고 해야 할까.



<코렐라인>

<James and the giant peach>에서부터 알아봤지만, 핸리 셀릭의 취향은 그리 (팀 버튼 만큼이나) 유별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삼성전자 광고처럼 아주 고상한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고, 뭔가 나름대로 기괴하려고 하지만, 그게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의 악몽>에서의 팀 버튼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도 사람들에게 독자적인 예술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듯 싶다. 특히 왠지 모르게 착하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집 만한 곳이 없다”라는 오래된 주문을 되풀이 하면서 외우는 것 같다.

그렇다 하더라도 Blu-Ray에 수록된 making 영상을 보면 이 백전노장이 5초 짜리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 어떤 피똥을 싸야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셀애니메이션을 했었던 나로서도 “쌩노가다”라 하면 한 마디 거드는데, 정말이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앞에서는 두손 두발 다들었다.


<벼랑 위의 포뇨>

극장에서 보든지 TV로 보든지 간에 일본 애니메이션을 영어 더빙으로 보게되면 정말이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대사 처리에는 약간의 호들갑이라고 해야할까 과장이라고 해야할까.. 뭐 그런 일상 회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왠지 사극에서나 보게 될 것 만 같은 그런 억양이 있는데, 그런 기대를 영어 더빙에서 만족을 못하기 때문이 아닐지.

오랜만에 돌아온 거장의 작품은 의외로 아주 착하고 평화롭다. 아니 그 보다, 스케일을 대폭 줄여서 담담하게 생활의 얘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색다르게 받아들여졌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여자 아이의 용기를 그려보겠다”라고 공언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조차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스케일과 화려한 액션으로 점철했었으니, 이렇게 소박한 작품을 만나게 되면 의외로 당황하게 된다는 것. (하지만 충격과 공포의 리뷰를 발견했으니 http://shougeki.egloos.com/2638375)

그래도 하야오 옹의 작품을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각별하다. 영어화 작업을 픽사의 존 레세터가 직접 감독했다는 것에서 하야오 옹의 위상을 다시 한번 확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개봉시 봤을 때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뭣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영어 더빙에 무자막으로 봐서 줄거리를 쫒아가기 힘들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건지.. 좌우간, 다시 본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예전에는 못느꼈던 강한 힘으로 충만해있었다. 특히 이라크 전쟁으로 전세계가 시끄러울 때, 이렇게 메세지가 강한 애니메이션을 <디즈니> 배급을 통해 전 세계에 당당하게 내놓는 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그러고 보니 이것도 존 레세터가 영어판을 감독했네.

그나저나.. 이 작품을 포함해 <코렐라인> 등 최근 일련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쭈그렁 할머니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작가들이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새로은 관객층을 만들어내려는 건가?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서” 1.11>


재탕에 삼탕을 넘어 무한 반복해서 울거먹는 바람에 “사골게리온”이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이 전설적인 애니메이션의 리메이크는 새로움으로 가득해있었다. 맨 첫장면 새빨개진 바닷빛깔부터 시작해서 군데 군데 이루어진 첨삭 장면이 호불호를 떠나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메인 캐릭터의 성격만큼은 어쩔 수 없는지 신지는 온종일 징징대고, 겐도는 여전히 선문답으로 뜬구름을 잡아댄다. 그리고 새로운 사도들의 최후 설정으로 샤무셸과의 대결 마지막 정지 장면(붉은 노을 배경 바로 그 장면!)이 없어지게 된 것은 꽤나 아쉬웠다.

영화의 중반을 넘어서자 새로운 레이아웃을 가진 장면들이 늘어나는데.. 아.. 극장에서 보면 정말 멋있겠다.. 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극장 예고편에서 미사토의 영어더빙을 듣자마자 환상이 와르르르르. 아 정말이지 북미에서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일본어 더빙에 영어자막으로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스트레인저 무황인담>

이런 걸 볼 때마다 정말이지 일본 애니메이션들은 (적어도 움직임 설계 만큼은) 무한 성장을 하는 구나.. 라고 느끼게된다. 애니메이션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Blood: the last vampire>로 나를 놀래키더니, 가이낙스와 콘 사토시의 신작이나 <전뇌코일>과 같은 TV신작들이 쉬지않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전세계에서 애니메이션이 특히 2D 애니메이션들은 정체되어 있는데, 그리고 내가 알기에는 일본 조차도 젊은 인력들이 대거 돈을 더 잘 버는 게임 분야로 몰려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예전부터 일을 해 오던 그 노인네들이 이렇게 쉬지않고 자기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존경스럽다. 동시에 이렇게 멋진 애니메이션을 이렇게 진부하기 짝이 없는 사무라이 액션물에 담아내다니.. 아쉽기 그지 없다. 

하지만 수병위인풍첩이나 카무이의 검 등 오래된 사무라이 애니메의 칼 싸움 액션에 만족 못했던 사람들, 혹은 칼 싸움 액션 설계를 해보려는 사람들은 꼭 한번 참고해 볼 만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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