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 밴쿠버 국제 영화제

아.. 정말 올해는 이래저래 우여곡절이 많았던 영화제 기간이었다.
모처럼 의욕 충천해서 작년의 <우린 액션 배우들>과 같은 진흙속 진주를 발견해보자는 기분으로 일찌감치 예매도 했고 (게다가 한국 영화 뿐아니라 다른 아시아권 영화까지), 두 직장에다가는 몇 일몇 일은 일을 못한다고 미리 통보까지 한 상태였는데… 거기다가 이번 기회에 다운타운에 있는 각 나라 음식들을 하나씩 죄다 시도해봐야갰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애가 아프는 바람에 ..  
결국 영화표 3장을 날려버리는 불상사까지 있었다. 뭐 어쩌겠어. 살다보면 그런 일도 있는 거지. 뭐 그래도 이런 저런 일을 감안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볼 만한 영화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인상이 짙었다, 이번에는. 특히 아시아권 영화들은 죄다 비슷비슷한 것 같은 인상.

마더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봉준호 영화 중 가장 센 영화가 아닌가 싶다. 역시 이런 소규모 스릴러 장르에서 그의 진가가 발휘되는데, 기본적으로 스릴러의 코드나 클리셰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상태에서 그걸 역으로 지치지 않고 뒷통수를 치는게 놀라왔다.
예를 들어, 스릴러 장르에서는 관객과 등장인물이 둘다 모르는 상황이 갑자기 닥칠 때 더 가슴을 졸일 떄도 있고, 관객은 알고 있지만 등장인물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파국을 향해 접근해 갈 때 더 가슴을 졸이는 경우가 있는데, 봉준호는 이 두 가지 경우를 능수능란하게 조절해서 적재적소에 써먹는 기지를 발휘한다. 특히 원빈이 연행될 때 느닷없이 닥친 추돌사고라던지, 원빈이 갑자기 엄마의 자살기도를 기억해낼 때는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웃음이 다 나왔다.
뭐.. 국민 어머니 김혜자의 연기는 (마치 안성기의 연기처럼) 너무나도 기대를 정확하게 충족하는 것이어서 놀랍다라는가.. 하는 찬탄을 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김혜자 만세, 봉준호 만세.
회오리 바람
역시 자전적 스토리는 그다지 재미가 없어. 이런 걸 보면 <500 DAYS OF SUMMER>가 얼마나 잘 만든 영화였는지를 알 수 있다. 대게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때 생기는 초보적인 실수는
1. 디테일한 에피소드에 너무 치중하다보니까 전체적인 맥락이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고,
2. 자기 스스로만 몇 백만번 곱씹은 장면 장면들에 풍부한 의미를 담아 두었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도통 뭔 얘긴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그래도 이런 장면이 예쁘면 용서가 되기도 한다),
3. 에피소드에 치중하다보니 러닝타임을 제대로 못맞추는 단점이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세 가지를 죄다 겸비하고 있다.
특히 뜬금없는 철가방 에피소드의 디테일함은 보는 사람을 좀 지치게 했다. 이곳 현지 북미 관객들은 주인공이 처한 일상 적인 물리적 폭력들 – 교사에 의한 폭력, 부모에 의한 폭력, 그리고 동네 깡패 등 한국 중고생이라면 항상 겪는 일들 – 에 관심을 보이면서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는 것 같은데, 뭐.. 그야 관객 나름의 입장인 거고.
어쨌건 (핸드폰 카메라까지 동원한) 카메라 워크는 참신해 보였고, 사실감 넘치는 메이크업도 다른 영화에서는 좀처럼 보지 못했던 것이었으며, 주인공 역을 한 서준영은 아주 다양한 얼굴을 한 친구였다. 연기 경력이 그리 길지 않아 보이던데.. 왠지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그리고 Dragon and Tiger award 수상을 축하..
At the end of day break
부산 영화제에서 아시아 필름 지원작으로 선발되었다는 이 영화는, 딱히 새롭지도, 그렇다고 재밌지도 않은 청춘 드라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왠지 금지된 연애를 하다가 결국 여자 친구에게 버림 받는 아들과 그 아들을 “끔찍”히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마더> + <회오리 바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홍콩 영화들은 어떻게 저렇게 답답한 느낌이 들게 잘도 찍는지 모르겠다. 꽉 막힌 로케이션이나 오픈세트, 그리고 땀방울 송글 송글나는 피부 같은 것들이 별로 같잖은 이야기임에도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게 한다. 
Yellow kid
뭐 딱히 그래서 예매를 했다기 보다는, 그래도 구로사와 기요시와 기타노 타케시가 지도 교수로 있는 동경 예술 학교 졸업작품이라서 어느 정도 기대를 한 건 사실인데,  생각보다 그저 그런 영화. 도입부의 체육관에서 스파링 같은 게 실감나서 좀 기대를 했는데, 그야말로 밋밋한 스토리에 평면적인 인물의 캐릭터가 너무 따분했다. 그러고 보니 어쩌다 우울한 영화들만 고르게 되었네.
My Dog Tulip
BBC에 근무하는 노년의 독신남과 말썽꾸러기 셰퍼드의 일상을 담은 자전적인 동명 소설(1956)을 바탕으로 만든 독립 애니메이션.. 여기 까지만 읽고 우와… 재밌겠다 싶어서 덜컥 예매를 했으나.. 이런 제길. 워낙에 원작가가 현란한 어휘를 자랑하는 잡지 편집장 출신이라서 그런지 (가뜩이나 영국식 액센트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정말이지 줄거리 쫓아가는 것도 버거웠던 영화다. 같이 보던 관객들은 냉소적인 내레이션 한 구절 한 구절 마다 낄낄대면서 즐거워 했는데, 우린 그저 … 묵묵부답. 제길 이렇게 의사소통이 안되서 괜찮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으려나… 남들은 웃지만 우린 서글픈 생각만 하염없이 들었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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