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20대 때에는 정말이지 뭐든지 될 수 있고 할 수도 있다고 자신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를 열심히 하면 그걸 통해 성취감을 얻고 “자이실현” 뭐 그런 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였는지.., 20대 때 가졌던 고민의 대부분은 불안함이었다. 뭐든지 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열심히 사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영화감독이 되려면 남들보다 더 영화를 많이 봐야한다고 믿었고, 더 많은 영화지식, trivia  지식 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많이 술을 마시고, 세상에 더 많이 절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왔던 평범한 오류였다. 
뭐든지 할 수 있었지만.. 아무 선례도 메뉴얼도 없이 뭐든지 맨 땅에 헤딩식으로 처음부터 시작해야했다. 시간이 술술 손에서 빠져 나갈 수록, 나의 남은 20대가 여위어 질 수록.. 더욱 불안해졌다. 결국 그냥 그렇게, 한 여자의 남편 외에는 아무것도 된 것 없이 20대가 훌쩍 가버렸고, 새로운 땅에서 인생 새 출발을 다짐했다.
아무리 맨땅에 헤딩하는 것에 이력이 낫다고 하더라도, 이민생활은 쉽지가 않았다. 맨몸으로 물에 던져진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떠 있는 것 밖에 없듯이, 어쩌다 보니 살아남는 것만이 매일매일 하는 일의 전부가 되었고, 주변에는 아무것도,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도 보이지 않았다. 
40대를 바라 보고 있는 시점에서.. 여전히 나는 불안하다. 여전히 나는 내가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뭐가 될지 잘 모르겠다. 어느 휴일 오후.. 무척이나 공부가 하기 싫어진 나로서는, 내가 하려는 공부가 내가 정말 원하는 일이 맞는지도 불안해졌다. 인생의 반을 살았지만, 난 아직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건지도, 어떻게 사는 것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건지도.. 그리고 어떻게 사는 일이 날 즐겁게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40대로 건너가고 있는 나이가, 묵직해진 뱃살과 쳐진 엉덩이가, 비실비실해지기 시작한 오줌줄기가, 무엇보다 걷잡을 수 없이 거대해진 나의 게으름이, 이 떨어지지 않는 불안함을 더욱 부채질 하고 있다.
친구들이 있어서, 만나고, 서로 사는 넋두리를 늘어놓고 듣게 되면 마음이 진정이 좀 되려나.. 그들 역시 나 못지 않게 찌질대면서 헤매고 있다고 반가워할 지 모르겠다. (뭐 그러다 보면 또 그렇게 넋두리나 늘어놓다가 70 되는 걸 테고)
연초에 제법 시간을 들여서 삶의 방향과 일년 계획을 잡았지만, 올해 반을 지나가는 이 시점에 와서 다시 처음부터 고민하기 시작하니 차라리 스스로에게 민망스럽기 까지 하다. 도대체 뭘 해야 하나. 그리고 이 불안이 ” 이 몸이 여기서 이 깟 일이나 하고 있을 몸이 아닌데…” 하는 자가당착과 얼마나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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