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전

이번 기회를 빌어 18년전 실수에 대해 밝히려 합니다. ,
정말 당시는 아무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누군가 저작권 운운하면 자연스럽게 지적재산권으로 연결이 되어 왠지 사유재산을 지키려는 심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건을 서술하자면, 92년 가을에 학교에서 다른 학교와 연계해서 하는 체육제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그 때 맞춰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어 거리 상영을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시간도 달랑 2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던 데다가, 당시 큰 이슈였던 전농동 철거민 투쟁 장면을 찍어놓은 게 우리 영화써클에는 없었기 때문에 시의성있는 화면을 다른 곳에서 빌려 오고 싶었던 것이지요. 
짱돌과 꽃병이 넘나드는, 그보다 백골단의 살기가 팽팽한 현장에서 촬영을 한다는 것은 사실 보통 겁나는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이바를 쓰고 (몇몇은 “Press”라는 완장까지 차고) 촬영을 하지만, 언제든지 얻어맞거나 연행을 당할 경우가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카메라와 테이프까지 뺏기는 경우도 있었구요. 그렇게 각오를 단단히 하고, 열심히 도망쳐 가면서 찍어놓은 화면을 “빌려서 쓰겠다”라는 생각이 근데, 당시 저에겐 그렇게 뻔뻔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영상단체나 선전단체들끼리 화면을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무슨 행사가 있거나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촬단이 꾸려지고 영상 POOL을 만드는 일도 흔했구요. 특히 좋은 화면이나 사진 같은 경우 저작자 명시 없이 여기 저기 쓰여지곤 했었습니다. 당시 생각으로는 내가 찍은 화면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쓰여지고 있다는 게 (내세우진 않더라도) 괜히 뿌듯하기도 했었구요. 
그러다 보니, 선배들을 통해서 서영집에서 찍은 몇몇 영상을 빌려서 같이 편집하게 되었습니다. 근사하게 음악 붙혀 편집해 놓으면, 그래서 나중에 감사의 의미로 한 카피 드리면 서영집에서도 좋아할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근데, 막상 서영집의 반응은 예상외로 험악했었더랬죠. 아무 허락도 없이 저작물을 갖다 쓰고는 크레딧도 안달았다는 거였던가.. 그랬습니다. 
애초에 그 다큐에는 아무 크레딧이 없었습니다. 편집자나 연출자 크레딧도 일부러 안넣었죠. 그렇게 되면 작품에 소유권이 생기는 것 같아서 싫었고, 또한 어느 곳에서든 필요에 의해서 갖다 쓰기 쉽게하려는 의도였죠. 그래서 서영집 뿐만 아니라 학교 이름도 안넣었었죠.  그래서, 서영집에서 불쾌해했다는 얘기를 전해듣고는 나름 심통이 났었습니다. 왜 저 선배들은.. 저렇게 자신의 크레딧에 집착을 하는가.. 하고 말이죠.
어려서 그랬다는 것이 모든 실수를 정당화 할 수는 없겠지만, 그 때 그 생각에 대해선 더 이상의 변명할 여지가 없네요. 선배 입장에서는 단지 창작물에 대해 예의를 갖춰주기를 바랬을 터인데, 당시 저에게는 그게, 차후 주류 영화계로 진출할 때에 포트폴리오로 사용하기 위해 저작권을 확립해두려는 선배들의 이중성으로만 생각되었으니까요. 
암튼 그 전에는 사무실에 놀러 가서 빅터만 편집기술도 배우고 그랬는데, 그 일이 있은 후 왠지 서먹해져서 아는 체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세월이 흘러 참 답답한 생각을 했었구나.. 라고 깨닫고 나서는.. 게으르다보니 사과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구요.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타인의 창작과 그 결과물에 대해 존경하는 표시를 했을 겁니다. 그게 꼭 엔딩 크레딧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그러다보니 저로서는 김예슬씨 입장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그 분 입장에서는 ““보수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고 진보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는다.” “보수 부모는 아이가 일류대학생이 되길 소망한다. 진보 부모는 아이가 진보적인 일류대학생이 되길 소망한다.”“가 너무나 명약관화한 사실이었던 것이죠. 그래서 인용출처를 밝히는 것이 그냥 새삼스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말을 더 사용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 원저작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소한 ‘우리’끼리는 기본을 지켜나가자라는 선생님의 걱정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사실 그 ‘기본’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체득해 나가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인생의 ‘기본’이라고 배웠던 모든 것들의 실체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한 나이 때에선 더욱 그렇죠. 선생님의 넉넉한 여유를 부탁드립니다.

5 thoughts on “18년 전

  1. 취몽

    넉넉한 여유는 아마 가지고 계실듯….
    덕분에 저도 김예슬씨 책을 사서 보았으니….
    이면의 목적도 달성하신듯….
    ^^;;

    Reply
  2. gyuhang

    그럼요. ^^

    그런데 18년 전이면 제가 서영집 나간 직후 일인 듯 합니다.
    빅터만 편집기, 라는 말이 향수를 불러일으키네요.

    Reply
  3. 조병구

    결국 그거슨 ‘소유’에 대한 집착. 누구나 동의할만한 ‘기본’이나 ‘상식’은 없으니깐…

    Reply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