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여행 – 2일차

4월 20일

아니나 다를까 닭 울음 소리에 잠이 깨버렸다. 저 자식은 무슨  5시부터 저렇게 난리냐 했더니 아내의 말로는 훨씬 전부터 저러고 있다고 한다. 좀 더 있으니 딱따구리가 지붕에 망치질을 하고 난리다.  젠장… 잠을 더 자야 할텐데.. 뒤척 뒤척 하다가 1시간을 훌쩍 보내고 나서야 단념하고 그냥 인터넷 뉴스 검색을 시작한다. 여러 탭을 동시에 열고 검색을 하던 중, 인터넷 신호가 가물가물하더니 결국 픽하고 사라져버리고 만다. 뭔일이래… 하며 이것 저것 체크 해보는 도중 무선신호 연장기기기가 IP를 잘 못 받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차라리 WAN 문제였으면 시도나 안했을텐데.. 결국 그 때부터 “일 “시작
계속 이렇게 울어 제끼는데 어떻게 자냐고
건물주한테 연락을 안하고 네트워크 문제를 해결하려니 한계가 있다. 분명 그 집 라우터의 신호를 연장하는 걸텐데 그 쪽에서 무슨 보안 설정을 해놨는지 모를 일이다. 그 동안 아내는 아침 먹고 딸기 산책까지 다 마쳤다. .. 아.. 휴가까지 와서 이러고 있다니..  결국 포기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저 놈의 닭은 (아내 말대로라면 ) 새벽 4시부터 아직도 열심히 울고 있다ㅡ. 그냥 무시해버리기로 결정.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다보니 닭 울음소리가 자장가로 들리는 경지에 올랐다.
자다가 추워서 눈이 떠졌다. 밤새 난방을 하고 잤는데,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줄인 모양. 일단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있자니 아내도 일어난다. 뭐 인터넷도 안되는데 이 참에 포틀랜드 시내에 가 볼 결심을 한다. 아내가 준비를 하는 동안 밖에서 이런 저런 집주변 사진을 찍고 나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섰다. 

포틀랜드는 북미 도시 중 가장 대중교통이 선진화되어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도심에선 모든 대중교통이 무료라고.. 그리고 왠만한 경전철역 주변으로는 Park & Ride라고 해서 무료 혹은 저가의 주차장이 설비되어있다. 이왕에 여기까지 왔으니 역 주변에 차를 세우고 MAX 경전철을 이용해서 시내로 가보려고 한다. 하지만 (당연스럽게도) 방법을 잘 몰라 허둥지둥, 일단 주차장을 찾는 것도 오래걸리고, 차표를 끊는 것도 뭘로 끊어야 될지 몰라서 .. 쩝.. 결국 차 한 대를 놓치고 나서야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최장 구간의 일일권이 4.75불. 매우 싼편 아닌가? 하지만 이 열차 .. 정말로 느리게 간다. 게다가 무슨 두 블럭 마다 한 번씩 서서 사람들을 태운다. 바쁘면 이게 좋은 방법인지 아닌자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주택가 주변을 가로 질러 운행하기 때문에 이미 시끄러운 이유도 있겠지만 더 빨리 갈 생각을 못하는 것 같다. 

Max 일일승차권
MAX 경전철은 이렇게 주택가를 달린다. 

우리가 묵는 숙소는 다마스커스라고 포틀랜드 동쪽으로 40K 정도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시내로 나가는 경전철을 타려면 좀 더 포틀랜드 쪽으로 위치한 그래샴이라는 동네까지는 적어도 차를 타고 나가야 정류장이 있다. 광역밴쿠버로 말하자면, 랭리나 포트 코퀴틀람 정도로 말할 수 있고, 시내로 나가는 스카이트레인을 타려면 써리까지는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여기서 보편적 복지로서 공공 서비스의 한 쪽 모습을 보게된다. 적은 비용으로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곳 공공교통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다. 쉽게 말해 빤짝거리는 옷을 걸친 사모님이나 두 달은 안씻은 게 틀림없는 노숙자에게도 평등하게 제공된다는 것이다. 당연스럽게도 그런 노숙자나 혹은 다른 불쾌한 냄새가 나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갇혀 출퇴근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역시 자가용을 이용한다. 아무리 공공서비스 인프라가 좋아도 결과적으로는 같아지는 현실이다. 실제로 우리가 타고 갔던 경전철의 승객들의 대부분은 학생 혹은 한 눈에 봐도 경제적으로 불편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포틀랜드 시내에서 주차요금을 내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매끈한 여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것이 결국 보편적 복지에 대한 거부감일 것이다. 말하자면, 학교 전체급식을 한다고 했을때 일부 보수 언론에서 “부자급식” 운운하면서 복지비용을 낭비해서 부자들을 걷어 먹이는 것처럼 매도 했지만, 사실 그들이 두려운 것은 자신의 고귀한 자식들이 천한 아랫 것들과 고약한 냄새가 나는  좁은 공간에서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그런 거부감이 있는 것일 게다. 

이런 말을 늘어 놓는 나 역시 딱히 그런 속물주의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당장 내가 다니는 동네 병원에 마약환자나 에이즈 환자 등이 같은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다면, 그리 유쾌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 생각에  한국에서도 민간 보험 고급 병원을 원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겠지. 지금 나는 머리로는 민영화를 철폐하고 모든 인프라를 공공재로 평등하게 소유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지만, 당장 가슴으로 거리에서 손 벌리고 있는 사람들을 껴안을 수 없을 것만 같은데 그건 결국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가장 혁명적 사상가였던 예수를 보라. 그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을 인격적으로 대했고, 매춘부들과 친하게 지냈으며, 나병환자들의 고름을 직접 짜내셨다. 그렇게까지 하진 않더라도 나병환자들과 같은 버스를 타기 싫어한다면, 저 부자 놈들이 가난한 서민들과 같은 병원을 이용하기 싫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나. 역시 사회주의 Socialism과 사회화Socializing은 결국 한 뿌리이다. 

포틀랜드 시내 도착. 뭔가 썰렁하다. 그리고 춥다. 아니 날씨 뿐만 아니라 .. 썰렁하다. 기본적으로 걸인들이 많고, 동네가 지저분하다. 근처 대학교 공원까지 걸어가보지만.. 여전히 썰렁하다. 나중에서야 이 썰렁함의 근원이 소매업이나 서비스업 건물과 같이 쇼윈도우가 없이 많은 건물이 회사 건물처럼 삭막하게 생겨서 그렇다는 것을 깨닫았다. 밴쿠버처럼 회사는 없고 죄다 리테일만 있는 동네에서 와서 더 적응이 안되는 것일지도 

아내의 의견대로 먼저 포장마차들이 즐비해있는 먹거리 블럭부터 가보기로 한다. 공공교통과 함께 포틀랜드에서 또 하나 더 유명한 것이 바로 Food Cart 포장마차인데, 전 세계의 다양한 먹거리들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파이오니아 법원 앞 광장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위치를 물어 물어 간신히 찾아가게 되었는데, 아.. 이 때부터  이 도시가 조금 좋아지기 시작했다. 

파이어니아 광장의 명물, 동상분수

전 세계 도시 이정표, 좌측에서 울산을 찾을 수가 있다. 


워싱톤가에 있는 먹거리 광장


밴쿠버에서는 타이 음식이라하면 대부분 방콕요리를 말하며, 북서쪽에 있는 이산 지역의 태국 음식을 하는 타이식당을 찾기가 힘들었는데, 이곳 먹거리 블럭에 있는 한 포장마차에서 발견한다. 최근 읽은 “대사 각하의 요리사”에서 보고 몇 가지 음식을 기억해 두었는데, 이번에 그중 하나인 “팟 가 프라우”라는 야채 볶음을 시켜 먹었다. 아내는 “Whole Bowl”이라고 하는 한 눈에 보기에도 영양가 있는 곡물들로 가득 채운 무슨 단학선원 음식 같은 것을 골랐다.  (각각 $5) 그리고는 입가심으로 프로즌 요구르트 한 그릇 ($2.5).  웃긴 것은 이 아이스크림 가게에선 질문을 하거나 추천을 받을떈 몇 백원씩 추가 요금을 내야 하는 것을 되어있었다. 그래서 순식간에 아이스 크림만 사서 나와 “Powell’s Book Store”로 향한다.  

이산 식당과 팟가프라우


Whole Bowl 식당과 아내가 고른 영양밥


Powell’s book store는 자칭 세계에서 가장 큰 independent book store라고 하는데, 그게 딱히 별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주식회사가 아닌 개인 소유의 회사라는 뜻일 듯. 뭐.. 물론 그렇기 때문에 주주의 이익에 휘둘리지 않고 소유자의 의지대로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크기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옛날 종로서점이 퍽 생각이 나서  이곳 저곳을 꼼꼼하게 둘러보게 되었지만, 딱히 이제는 책을 사서 소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여기서 아내는 대체의학 동종요법에 관한 책을 몇 권 사들고 왔다. 

Powell Book Store


책방을 나서고 포틀랜드 시내에 무료로 운행이 되는 Street Car 경전철을 타고 이동하면서 몇 군데 더 쇼핑을 했다. 오레곤 주는 소비세가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딱 보니 이 동네는 뭐 산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광물자원이 충부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주정부는  뭘로 먹고 사는 걸까? 의외로 군산복합체가 있다든지 아니면 외국 침략전쟁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버티는 건가? 나이키 본사가 있던데, 나이키가 도시를 먹여살리는 건가? 어쨌든 캐나다에 비교해봐서 너무도 싼 몇 가지 공산품 들을 사고 나니 걷잡을 수 없이 목이 말라 왔다. 최근 뉴욕 맨해튼에 진출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는 포틀랜드 지역의 유명 커피샵인  Stumptown Coffee Roaster에 잠시 들르기로 한다. 이 곳은 세계 각자의 커피농가와 공정 계약하는 걸로도 유명한 것 같지만.. 난 딱히… 그냥 음료수나 먹기로 하고.. 

포틀랜드 시내 중심에선 무료로 운행하는  경전철 Street Car

Stumptown Coffee Roaster 실내외 전경



커피샵을 나서서 강변을 산책하는 도중 딸기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겅중겅중 뛰기 시작했다. 오.. 저 연로한 몸을 이끌고  어찌. 사실 여행 일주일 전 쯤 소파에서 굴러 떨어지는 낙상사고를 당해 갈비뼈가 부러진 것 같았는데, 며칠 골골대더니 이제 완전히 회복한 듯 싶다. 그 때는 여행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었는데…

Morrison St을 따라 올라가 보니 제법 가게들이 보인다. 뭐 여기까지 와서 가게 타령하고 있나 싶기도 하지만, 역시 쇼윈도우들이 있고 그걸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거리가 활기차 보이기는 하다. 파이오니아 법원 광장 근처에 있던 몰에 들어가보기로 한다. 

아내가 옷가게들을 구경하고 있는 동안, 애플 스토어의 공용 인터넷에 접속해서 숙소에 설치되어 있는 신호연장기기의 설치 소프트웨어를 다운 받았다. 집에 가자마자 이걸 이용해서 한번 연결 해 봐야겠다. 

MAX 경전철 정류소에 다 갔을 즈음 집으로 가는 전철 하나가 막 오고 있는 것을 발견 했다. 저 차가 지나가도 다음 차가 항상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왜 항상 뛰게 되는 걸까? 게다가 저 전철은 워낙 느릿느릿 가는데다가 다음 정료소도 막 바로 있어서 열심히 뛰면 (영화에서 처럼) 다음 정류소에서는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허술한 주머니에 너무도 떨어질 것이 많이 들어있음을 깨닫고.. 다음 차를 타기로

그레샴으로 돌아오니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일단 저녁 거리를 사러 세이프웨이로 고고씽. 칩과 빵, Humus Dip, 스프 등을 사서 간단히 떼우기로 한다. 마침 주변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맥주들이 잔뜩 있어서 한박스 골라 사왔다.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을 고친 후, 동네 양조장의 봄철 기간 한정 메뉴인, Spring Slingshot Pale Ale 과 함께 칩을 먹으면서  서태지 이혼설 기사를 보게되었다. 음..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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