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런 얘길 먼저 하면 마치 박정희가 보릿고개를 없앴다고 찬양하는 노인네들 같지만…… 예전에는 사실 몇몇 영화사, 아니 영화판에서 몇몇 인간들의 전횡이 더 심했더랬습니다. 특히 작년 대종상에서 공로상을 탄 곽정환씨의 합동영화사는 마치 천년제국 같았었죠. 당시만 해도 외화 수입을 하려면 쿼터를 받아야 했었는데, 합동영화사에 찍히면 영화를 받을 수가 없었거든요. 게다가 그 땐 영화 수익 중 하나가 “지방 판권”이라는 것이 있어서 지방 5대 배급업자의 구미에 맞춘 시나리오가 아니면 아예 제작이 안되었었죠. 합동영화사와 5대 배급사의 눈 밖에 나면 영화판에 발을 못 붙이던 때도 있었다는 거죠. 물론 곤장 맞던 조선 시대에 비해서 요즘 인권이 많이 나아졌다는 식의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구요. 그리고 그렇다고 대기업이 잘하고 있다는 얘길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몇몇 대기업이 영화판을 장악하면서 영화의 다양성이 실종되었다는 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러다가 우진 필름의 정진우씨가 UIP 직배를 앞장서서 들여오면서 판이 좀 바뀌나 싶었습니다. 올림픽 때문에 외화수입이 간신히 자유화되나 싶었는데 헐리우드 영화사에서 아예 직접 배급한다고 나섰으니 기존의 기득권 세력들이나 새로운 독립영화사나 맨붕에 빠진 거죠. <위험한 정사>개봉시 화재도 나고 뱀도 풀고.. 기억하시는 분들 많이 계실 겁니다. 암튼 사방에서 욕을 많이 먹던 정진우씨는 UIP직배사가 한국영화 발전에 기여도 한다는 걸 시위하기 위해 UIP의 자금으로 한국 영화를 만들어 씨네하우스에 걸었습니다. 바로 이세룡 감독의 <내 친구 제제>입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였던 <나의 라임 오랜지 나무>를 원작으로 구로공단과 달동네를 배경으로 한 정말이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그 떄 한국영화들은 <돌아이> 아류들과 <변강쇠> 아류로 점철되어 있었거든요. 오죽하면 “어.. 이 장면은 진짜 미국영화 같다..”라는 말이 한국 영화가 받던 최고의 찬사였으니까요.
암튼.. 이 <내 친구 제제>가 말이죠. 씨네하우스와 UIP 계열 몇 개 극장에서만 아침에만 상영했다가 슬그머니 사라졌는데, 제 기억으로는 서울 개봉관에서 행해진 최초의 교차 상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네하우스에서 어떤 날은 그나마 관객이 몇명 없다고 관객을 다른 상영관으로 내쫒은 적도 있었습니다. 무슨 직배영화인지 기억도 안나는데 그걸 대신 보라고 하더군요. 항의를 했더니 “이 정도 관객가지고 상영하면 전기료도 안나온다. 너도 재밌는 영화를 보는 게 더 좋은 거 아니냐”라고 하더군요. 정진우씨한테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역시 “옛날보다 좋아진 거 아니냐”라는 얘기가 아니라 대기업의 멀티플렉스 때문에 교차상영이 생긴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 오인환 공보처장의 그 유명한 “쥬라기 공원과 현대자동차” 보고가 회자가 되고, <신씨네>의 <결혼이야기> 류의 기획영화가 히트하면서 대기업의 일차 진입이 있었죠. 하지만 영화판의 자금유연성(?)에 적응못하고 많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대신 창투사가 들어왔고.. 영화판의 투기적 성격과 꽤 잘 맞나 싶더니 또 다시 망해서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CJ, 동양, 롯데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거죠.
A 영화 감독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그의 재능을 인정했지만 매번 뭔가가 부족해서 데뷔작과 두번째 모두 말아먹었죠. 그래서 한동안 영화를 못만들고 있었는데 어느 기획사의 시나리오에 CJ가 투자한 작품을 제대로 만들어서 일약 스타 감독이 되었습니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그의 탁월한 각색 및 연출능력이 돋보였던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를 입봉시켜줬던 B영화사에서(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한 편 같이 만들자는 제의를 하게 됩니다. 니가 하고 싶은 얘길 니 맘대로 만들어 보라구요. 니가 만들면 CJ에서 무조건 배급하기로 한 거 아니냐면서. 그러다 “원래는 칼라로 시작해서 점점 색깔이 빠지면서 흑백으로 끝나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제작비가 많이 들겠지?” “뭐 그럼.. 감독판 DVD 낼 때 그렇게 만들자” 하며 의기투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정말 주류영화판에서는 볼 수 없는 괴물덩어리를 하나 만들어 내고 맙니다. 게다가 결말은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황당했죠. 맨붕에 빠진 B영화사 대표는 결말을 수정하라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는데, A 감독이 거절하자 오리지널 네가를 들고 직접 편집실로 향합니다. 조감독에게 이 소식을 들은 A감독은 CJ에 곧바로 연락을 했다죠. 너희가 배급할 영화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이죠. 결국 CJ 쪽에서 B영화사 대표를 설득해 온전한 상태로 개봉을 하게 되었답니다. 뭐… 영화는 철저하게 망했고, 한국에서는 감독판 DVD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역시 대기업이 잘할 때도 있다라는 걸 얘기하는건 아니구요. 정말 거지같은 인간들의 패악질은 대기업과 상관없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걸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예전에 같이 공부하고 일하던 사람들을 만났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CJ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뭐.. 회사 욕 많이 하죠. 자기들도 많이 답답해 하더라구요. CJ의 헛발질도 쪽팔리지만, 기본적으로 회사 자체가 뭔가 너무 틀에 박혀있고, 전체 사업기조가 컨텐츠의 안정된 생산구조를 만드는데 집중이 되어있어서 개개인의 재능이나 노력이 눈에 안 보인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저로서는 진심으로 그들이 CJ에 딱 붙어있기를 바랬습니다. 적어도 생활이 되는 것같아 보였거든요. 그 중 한 후배는 예전에 어느 기획사에서 일을 할 때 연봉 500만원을 받았었더랬습니다. 뭐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서도 그 때도 쌩신인이 아니었거든요. 홍보일 10년 넘게 했을 때도 2천 못받았었고요. 단지 밥을 먹여주는 한국 영화계의 좋은 풍습 덕택에 좋아하는 일 하면서 20대를 날릴 수 있었던 거죠. 그러고 보니 저도 <제이콤>에서 일했을 때만 “잔금”이란 걸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아 봤었네요.
한 나라에서 영화를 보는데 몇몇 대기업이 정해주는 영화만을 그들이 정해주는 극장에서만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등요금제, 독립영화 쿼터, 스크린 제한 등등.. 사실 정책적으로 해볼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사실 영화가 국가 기간산업도 아니고.. 자국의 농업도 앞장서서 파괴하는 정부가 영화를 위해 뭔가를 알아서 해주길 기대하는 건 좀 염치 없는 일이죠. 우리나 영화 좋아하고 청춘을 날리고 하지.. 많은 사람들에게 영화는 컨텐츠 사업이자 여흥수단인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서 결론은… 좀 뜬금없지만 전체 최저임금과 최저 생계지원금이나 좀 올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시나리오를 쓰거나 부업으로 연기를 해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정말이지 생계가 보장만 되면 대기업과 상관없이 영화할 수 있지 않겠어요? 그깟 아이패드 신제품 좀 안사면 어때요. 예전에 <파업전야>처럼 끼리끼리 뭉쳐서 자기들이 좋아하는 작품 만든다음 직접 배급해도 되구요. 국가 컨텐츠 지원 사업 등등으로 <디 워> 같은 영화에 세금 낭비하지 말구요. 그냥 전체 국민들이 적게 일하고 적게 쓰면서 하고 싶은 취미활동 하면서 살아도 생활이 되는 나라였으면 좋겠어요.
(사족) 최근 인터넷 서점들과 출판사들 가의 도서정가제 분쟁을 보고 생각이 들었는데, 왜 출판사나 오프라인 서점, 아니 전체 오프라인 시장에서 단체로 택배기사 급여를 인상하자는 주장을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사회적으로 좋은 일도 하면서 간단하게 온라인 시장과 비교해서 가격우위에 설 수 있을 탠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