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Mexico All inclusive 후기 (Grand Sunset Princess) #4


나흘째,

6시반에 눈이 떠졌다. 어릴 적부터 일요일에 더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아직도 여전히 남았다. 오늘 아침엔 여름 휴가 캠핑장 예약을 해야한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캐나다에서 주립공원이나 국립공원 캠핑장 예약은 매년 1월 몇째 주에 하는데, 콜드플레이 공연 예약하는 것 마냥 전투태세다. 모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예약 사이트 오픈 시간에 새로고침을 연신 눌러야 간신히 성공할까 말까하는데, 작년 BC 주립공원의 경우 예약 사이트 오픈 당일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기도 했다. 여기도 급격한 캠핑인구 증가에 대처를 제대로 못하는 거겠지. 암튼 사이트 오픈은 마운틴 표준시간으로 아침 8시. 이곳 현지 시간으로 10시니까 일단 아침을 먹고 오기로 한다.

식당에서는 오늘도 Omar가 우릴 환대한다. 어제 아침에 창가에 앉았더니 햇볕이 너무 심해서 다른 자리에 앉겠다고 했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다. 다른 서버가 와서 커피를 따라준다. 아항.. 여기 서버들도 담당 구역이 있었던 거구나. 뭐 좋다. 근데 새 서버가 설문용지도 내민다. 흔히 볼수 있는, 서비스 퀄리티를 1에서 5라고 봤을 때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설문지인데, 아아…. 그래서 Omar도 Alicia도 그렇고, 이곳에서 만났던 서비스 스텝들이 항상 자기 이름을 기억해주길 바랬었구나.

도대체 이런 식의 설문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나 역시 서비스 업에서 오래 일하면서, 고객들에게 이런 설문지 작성을 요청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가장 기분이 나빴던 점은 (내가 만난 대개의 고객은 이런 걸로 갑질을 한 적이 없고, 대부분 만점을 줘버린다)내가 절대 을의 위치에서 평가를 받고 있다는 상황보다, 왜 회사 매니저가 해야할 직원평가 일을 돈 주고 서비스를 구매한 고객들에게 전가하느냐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누군가에게 이런 설문작성을 부탁받으면 100%  만점을 주는 걸로 소소한 반항을 한다. 신자유주의가 심화되고 기업의 수익성 향상이 극대화 되면서, 현장관리자 / 중간관리자들을 모두 쳐내니 이런 일이 생긴다. 기업들은 고객과의 스킨쉽을 확대한다는 명목으로 고객들에게 칼자루를 던져줬는데, 이 때문에 서비스업 종사자들은 점점 더 슈퍼을의 위치에 처하게 된다. 다시 말해, 한국 사람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 모든 소비자들, 특히 양극화가 심한 사회의 소비자들이 갑질을 부리게 된 것 역시 기업의 구조조정 탓이 크다는 것이다.

보통 얘네들은 이렇게 해바라기를 하는 동안엔 꼼짝도 안한다. 눈알이 굴러가지 않으면 인형으로 착각할 지도

식사를 마치고 나서 리조트 주변을 한바퀴  걷는다. 아.. 이제 아침에 좀 다른 것도 먹었으면 좋겠다… 싶어 메인 빌딩에 있는 식당 구경을 해본다. 빵 종류가 더 많다는 걸 제외하곤, 또띠야 빵에 들어갈 토핑이 좀 더 다양한 걸 제외하곤, 근본적으로 동일한 메뉴라서 굳이 아침 먹으러 여기까지 올 필요는 없겠다. 여기까지 걸어오는 도중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갔는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까르르 까르르 즐거워한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다 보면 그곳 직원들이 너무 즐겁게 수다 떨고 웃고 하면서 일해서 참 재밌게 일하는구나 생각했었는데, 라틴 사람들의 성품이 인생을 즐기며 사는데 있는 것 같다. 한국도 자연적인 자원이 풍부했다면 좀 더 여유 있는 성격이 되었을까? 잘 모르겠다.. 하면서 걸어오는 도중.. 헐 이구아나가 있네. 정말 여긴 이런 동물들이 소소하게 마케팅을 잘 하는구나.

 

숙소로 돌아와 성공적으로 캠핑장 예약을 마치고 나서 다시 해변으로 향한다. 오늘은 햇볕이 그리 강하지 않고 바람 역시 심하지 않다. 그래도 어제 해변에서 살짝 익은 다리가 아직 따끔거린다. 자리에 눕자마자 버틀러가 와서 음료를 권하는데 시간도 이르고 그리 크게 땡기는게 없다. 이럴수가.. 그러고 보니 숙소 미니바에 있는 양주에 아직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구나. 역시 풍족한 자원. 차고 넘치는 자원이 있다보면 오히려 요구나 관심도는 떨어지게 되어있구나. 역시 마리화나 합법화는 똑똑한 일이었다. 물만 훌쩍 마시고, 책을 읽다가 다시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오늘 아침 역시 햇볕이 강한 곳에 앉아 식사를 하느라 좀 고생을 해서인지, 조심스럽게 테이블을 골랐다. 그리고 나서 뷔페를 돌았는데 닭가슴살과 Sea Bass를 즉석으로  철판에 구워 주는 곳에 줄을 일단 선다. 그러다 보니 아내가 다른 테이블로 옮기자고 한다. 알고 보니 Omar가 담당하는 구역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던 것. 따지고 보면 어짜피 이곳 고객들은 죄다 올인클루시브 손님이고, 거의 모든 음식과 음료를 무료로 무제한 제공받도록 되어 있는데, 어떤 서버는 테이블에 누가 앉든 신경도 안쓰고, Omar같은 서버는 우리가 엊그제 주문했던 것 까지 기억한다. 그리고 꾸준히 새 음료를 권하거나 갖다 주고 편의를 봐주기 위해 노력하는데, 어짜피 음료가 한 잔 더 나가도 자기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순전히 개인의 직업정신 / 적극성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당연히 좋은 서비스를 받고 나면 더 많은 팁을 남기고 싶은 것도 인지상정이다.

올인클루시브 여행의 좋은 점은 예전부터 몇몇 친구들로 부터 익히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 신경 안쓰고.. 아니 모든 걸 신경 안쓰고 푹 쉴 수 있다라는 것에서, 양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다 등등.  고객 서비스 업종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때 마다 따뜻한 남국의 바다에서 늘어져 있는 걸 상상했지만, 딸기를 키우는 입장에서 엄두를 낼 수는 없었다.

보통 우리처럼 애완동물이 먼저 떠나고 나서야, 올인클루시브 여행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러다가 배앓이를 하거나 다른 사건이 생기면 먼저 떠난 애완동물의 ‘저주’라고 하기도 한다. 우리같은 경우 어떤 이유든 간에 여기서 아프게 되면 ‘딸기의 저주’라고 딸기 탓을 하게 되겠지.

예전에 결혼 하고 나서 같이 떠난 세계일주를 기억하면… 왜 그리 궁핍하게 다녔는지, 왜 그리 본전 생각을 끊임없이 했었는지 아쉽기 짝이 없다. 생전 써 본 적이 없었던 큰 돈을 써서 세계일주 항공권을 끊었고, 여행을 하면서 줄기차게 돈을 써대서 더 마음이 조급해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세계일주를 다닐 수 있는 건강한 몸뚱이가 있는 것 만으로도 부러운 나이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 당시엔 좀 더 금전적 여유가 생기면 또 와서 보자… 하고 체코의 오페라를 포기했다면,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렇게 또 세계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체력적인 여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 결론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말은 저렇게 해도, 사실 그런 본전 생각과 근검절약하는 여행이라는 건,  아직도 쉽게 버릴 수 없는, 마치 버릇같은 것이다. 요즘도 어디든 여행을 가면 돈 걱정을 안할 수가 없다. 여행이라는 것도 사실 경험을 쇼핑하는 것이고, 어짜피 돈 쓰는 건데 좀 넉넉하게 마음을 먹자.. 싶어도 태생이 돈 걱정을 하게끔 태어난 지라.. 고기도 먹던 사람이 먹는다고, 그렇게 여행이라는 쇼핑을 100% 즐기기 어렵다.  암튼 그런 이유에서, 나는 이 올인클루시브 여행의 미덕을 찾는다. 돈 걱정 없이 100%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적당량의 팁으로 1불짜리만 좀 넉넉하게 준비하고 오면 된다는 점. 돈 걱정 없이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쉬고 싶은 거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때 되면 절제하게 된다는 점이 가장 큰 미덕으로 보인다.

점심을 먹고 나서 또 한 바퀴 돌아본다. 여기저기 한인 가족들도 많이 보인다. 친구 부부끼리 같이 왔나보다. 부럽다. 작년 봄에, 대학 때 친구가 놀러와서 같이 갔던 캠핑 여행도 재미있었다. 우리 부부는 대부분의 시간을 둘이서만 같이 보내는 경우가 많아서, 친구들이 우리의 놀이 영역에 들어오는 걸 우리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걱정을 했는데, 생각 외로 너무 재미있었고 우리가 잊고있었던 우리 자신의 모습도 재발견하고 그랬다. 우리 부부처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기회가 적으면, 사람이 성장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인생의 즐거움을 갖는 것에도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좀 덜 까칠해져야겠다.. 다시 다짐을 한다. 느닷없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걸음을 재촉한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쉬고 있는데 방 청소를 하러 왔다. 찬스다 싶어서 배쓰 로브를 바꿔달라고 한다. 그러곤 간단하게 짐을 챙겨 다시 플래티넘 라운지 풀장으로 나왔다. 아내가 누워 쉬고 싶어했던 침대에 누가 비치타월만 남겨두고 어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공공 기물에 꼭 저렇게 영역표시를 해두고 싶을까? 재화가 한정되어 있으면 사람이 탐욕스러워지는 건 어쩔 수 없나. Alicia한테 누가 자리를 맡아둔 건지 물어봤더니 좀 난처해한다. 뭐.. 괜찮다. 건너편 선베드에 누워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속이 안좋은 아내는 카모마일차를 난 또 진토닉을 주문하고 자리에 드러 눕는다. 이렇게 물가에 술을 마시면서 누워있다보면 휴가다 싶다. 한참을 누워서 책을 읽고 눈을 감고 글을 쓰고를 반복한다. 건너편 풀장에서는 청춘들이 깔깔대고 욕을 하면서 물놀이에 열중하는 것이 들린다. 아니, 사실은 아주 시끄러웠다. 이어폰을 가지고 올 것을.. 하며 아쉬워한다. 여기도 풀장이 있건만, 분위기가 죄다 주질러 눕는 분위기라 수영을 하는 사람이 없다. 풀에 들어가도 수영을 하진 않고 재활운동 분위기..

어느새 4시 반이 넘었고, 저녁식사 갈 준비를 하러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방청소를 해준 사람이 다른 사람이던데, 왠지 숙소가 더 깔끔해진 느낌이다. 밖으로 나서자 비가 왔어서 그런지 들숨 속에 습기가 확 올라온다. 뭐, 이곳 기후도 기후지만, 건물 사이로 주변이 죄다 풀장 아니면 분수니 공기가 습하지 않을 수 없겠지.

오늘 저녁은 멕시칸. 멕시코에 와서 멕시코에서 나는 재료로 멕시코 요리사가 만드는 오리지널 멕시코 요리인 셈이라 잔뜩 기대를 하고 갔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나초칩과 과콰몰, 피코데갈로 등 살사들이 나온다, 다른 정식 식당에서 빵과 버터가 나오는 것처럼. 데킬라 베이스의 칵테일 들이 메뉴에 그득한데.. 과일향 리큐르들이 잔뜩 있는 것이 모두 너무  달 것만 같다. 일단 나는 맥주, 아내는 데킬라 샷에 클럽 소다와 라임을 추가해서 만들어 달라고 한다.

참치 세비체 전채

새우타코 전채

아즈테카 스프(?)

매운 초콜렛 소스 (mole) 와 닭 가슴살

피시 필레 스테이크

전채로 나온 새우 타코나 참치 토스트 모두 훌륭해서 메인 요리에 더더욱 기대감이 높아졌고, 마침 술이 비어서 가장 덜 달아보이는 데킬라 칵테일도 주문했는데 … 아.. El Rey .. 왕이라는 이름의 이 칵테일은 이름값도 못하고 들큰하기 짝이 없다. 데킬라 향도 전혀 나지 않는다. 아.. 어째 근데 술기운이 빨리 오른다. 이것도 거의 레이디킬러구만. 메인으로 나온 닭가슴요리 역시 너무 퍽퍽했다. 초코-칠리 소스는 매우 새로웠지만, 고기 자체가 입금 후 배우들이 먹는 다이어트 식단이어서 감흥이 덜했다. 닭가슴을 굵은 청크로 고기 요리를 하는 경우 부드럽게 만들기는 정말 쉽지 않다. 낮에 먹었던 닭가슴 철판 요리는 얇은 필레로 뜬 후 구운 거라서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함이 남았었는데, 이 정도 두께의 통 닭가슴 요리에서 고기에 촉촉함이 남게 하려면, 겉을 미리 튀겨서 육즙을 가두든지, 아니면 요리시간을 어떻게든 단축하든지, 것도 아니면 아예 저온으로 장시간..암튼, 이렇게 어려운 요리는 주문하지 말자고 다시 다짐을 한다. 근데, 어젯밤 문어는 어떻게 그렇게 부드럽게 한 거지, 도대체? 피시 필레 스테이크를 주문한 아내 역시 그리 감동을 못받은 듯했다. 뭐.. 너무 기대를 많이 한 걸지도.

오늘밤 극장 이벤트는 무슨 댄스파티인듯 한데, 아내나 나나 댄스엔 크게 관심이 없다. . 아.. 난 왜 고딩때 친구들이 소방차 노래를 들으며 춤연습을 할 때 송창식과 산울림을 들어버린 걸까? 밤바다 구경을 해 보자던 아내는, 막상 가보니 해변에 아무 사람도 안남아있자 무섭다고 돌아가자고 한다. 한국 서해안이든, 동해안이든.. 아니 밴쿠버 아일랜드의 바닷가가 되었든 간에.. 밤바다 파도 소리는 어디든 청승맞다. 크르릉 크르릉.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다음, 호스트 혼자 흐느끼는 소리같다.  보름달 아래 밤바다 사진을 몇 장 찍고는 일찍 들어와 쉬기로 한다.

Laguna Villa 단지의 야경

밤 바다 해변

씻고 나서 냉장고를 부탁해를 본다. 아내는 아직도 속이 안좋은지 자리에 누워 버리고, 난 숙소에 있던 럼을 결국 따서 소다와 섞어 마신다. ㅋㅋㅋ 유병재는 왤케 웃기냐.. 하면서.. 이렇게 4일차도 지난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