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Mexico All inclusive 후기 (Grand Sunset Princess) #3

사흘째,

느즈막히 일어난다. 그래도 9시 전에 눈이 떠진다. 밴쿠버 시간으로 6시인가? 차라리 이렇게 시차적응을 못 한 채로 돌아가는게 낫다 싶다. 이런 식이다. 일하는 동안엔 휴가 갈 생각으로 버티고, 막상 휴가 와서는 일상복귀 해서 시차적응할 걱정을 하고 있다.

밤에 비가 세차게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향인 발코니 창에서 햇빛이 새어나온다. 오.. 그러고 보니 이곳 연안은 카리브해를 동쪽으로 접하고 있다. 말하자면 일출을 볼 수 있다는 것. 내일 아침은 좀 일찍 움직여 볼까나.

남국의 과일들.. 우측 상단이 구아바, 그 아래가 파파야

오늘 아침은 룸서비스를 이용해 볼까 했는데, 막상 주문하려니 무슨 메뉴를 주문해야 할자 몰라 그냥 코 앞에 있는 조식 뷔페로 가기로 한다. 뭐 그 때 그 때 입맛대로 골라먹는 것도 괜찮겠지. 며칠간 고기류를 폭식을 해서 그런지 이번엔 주섬주섬 야채류를 접시에 담는다. 마침 여긴 다양한 남국의 과일과 그 과일을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있다. 예를 들자면 파파야 조림이나 바나나 조림, 사과 구이, 파인애플 구이 같은 거 말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얼굴이 부어 있어서 오늘 부턴 좀 적당히 먹기로 해놓곤 또 무진장 먹어버렸다. 음… 일단 좀 걷는걸로.

화창하다. 그런데 또 바람이 장난 아니다. 한국 같으면 이런 날씨는 바로 태풍 전날이라 마음이 싱숭생숭 해질텐데, 휴가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은 하하호호 여전히 즐겁다. 아침 10시가 채 안되었는데 벌써 칵테일 잔을 들고 풀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오전에는 해변가에 나가 구워 볼 생각. 숙소로 들어가 간단히 씻고 짐을 챙겨 나서려는데, 아내가 아침에 봤던 인터넷 (플래티넘 빌딩은 방마다 와이파이가 잡힌다) 리뷰 중 하나를 얘기한다. 진위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어떤 사람 말에 의하면 여기 직원들이 금고를 열 수 있다는 것, 그래서인지 금고 속 돈 봉투에서 지폐 한 장만 없어지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 이런 얘기가 돌면, 전혀 신뢰가 안가더라도 기분이 그리 좋지 않다. 물론 환전을 해온 돈은 어짜피 다 쓰고 가려고 한거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진않다. 에이..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지만 집을 나서기 전 금고 상황을 사진 찍어두는 나였다.

해변은 더 화창하다. 그리고 바람이 더 심하게 분다. 당연히 파도도 제법 거세다. 해변가에 보면 파도 거칠기에 따라서 깃발이 꽃혀 있는데, 오늘은 노란색 (파랑주의보)이다.  녹색(안전)과 적색(파랑경보)의 중간. 쭉 걸어가서 플래티넘 전용 비치체어 쪽으로 간다. 비치체어 두 개 마다 파라솔과 음료 테이블이 비치되어 있다. 버틀러에게 코코넛 필이 없는 마가리타와 진토닉을 주문한다. 그리고 한번 주문 마다 1불을 팁으로 준다. 아..  이런 호사를 다 누린다.

해변에 즐비하게 놓여진 비치체어와 파라솔

그 옆엔 코코넛이 주렁주렁 매달린 야자수.. 그리고 아담한 이곳 갈매기

그건 그렇고.. 바람이 너무 세다. 가만 누워 있자니 모랫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아내는 좋단다. 열심하 돈 벌어서 또 오잔다. 간단한 스낵 삼아 해변가 스낵바에서 햄버거와 나초칩을 집어 온다. 음료를 주문, 픽업 하려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플래티넘 비치에서도 전담 버틀러가 음료만 배달이 가능하고, 스낵은 직접 가지러 가야 하는 건 마찬가지이다. 어이구. 갈수록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일단 라운지 풀장으로 후퇴한다

해변에서 리조트 단지내로 들어서기만 해도 바람은 잦아든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주변에 깔린 망고 나무와 코코넛 나무 덕택이다. 영화나 TV에서 보면 코코넛 열매를 따기 위해 나무를 한참 타야 하던데, 이놈의 코코넛 열매는 정말로 거의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다. 밤처럼 가지가지마다 열려 있는 것이 아니고, 5미터가 넘는 높이의 길다란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있다. 와.. 도대체 뭔 생각으로 저렇게 채집이 힘든 과일이 이렇게나 대중적이 된걸까…

여긴 Gin만 해도 봄베이 사파이어나 탱커리 등 여러가지가 있다.  어제도 만났던 Alicia가 오늘도 근무를 한다. 풀장 선베드에 자리를 잡고, 아내는 Dos Equis를, 나는 조니워커 언더락을 주문한 후 다리를 굽기 시작한다. 오늘은 의외로 사람들이 북적댄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쉽게 친해진다. 두번 다시 안 볼 사이라서 그런지 자기 가족 얘기, 개인적인 생각 등을 스스럼없이 드러낸다. 그렇더라 해도 둘이서만 희한한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다른 인종 커플에게 쉽게 말을 거는 경우는 없다. 사실 저들에게도 독특한 액센트의  영어, 그것도 매우 낮은 수준의 영어회화를 무례하지 않게 알아듣는 척 하는 것도 나름 스트레스일테니, 굳이 말을 걸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고 나 역시 자기 자식들이 얼마나 잘나서 어떤 좋은 직업을 갖게 되었다고 자랑을 해 대는 저 사람들의 대화에 끼고 싶지 않다. 아.. 참.. 난 멕시코에 와서 까지도 이렇게 어정쩡하게 즐긴다. 어느새 첫 잔을 비우고 모히토와 진토닉을 주문한다. 낮에 해변에서 간단하게 칩과 과카몰, 미니 햄버거를 먹긴 했어도 조금 출출해져서 라운지 바에 가서 샌드위치와 나초를 조금 집어왔더니, 그걸 어떻게 알고 고양이가 다가와 애걸을 한다. 미안하다 다 묵었다. 의자에 뛰어 올라와 애걸을 해도 소용이 없다. 얼마간 북적대던 사람들도 4시쯤 되자 모두 잠에 든다. 씨에스타라고 봐야 하나. 아님 단지 취한 건가. 한 잔을 더 할까하다가 저녁 예약이 6시니까 슬슬 일어나서 준비해야겠다 생각한다. 해변에서 모랫바람을 하도 얻어 맞아서 좀 씻어야겠다.

오늘 저녁은 La Fleur라는 인터내셔널 식당이라는데, 메뉴를 보면 남부 프랑스쪽, 스페인쪽 요리를 하는 것 같다. Miso가 처음에는 일식당이라더니 요즘 와서 아시안 퓨전 식당이라는 걸 보면, Le Fleur도 처음엔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개점을 했을지 모를 이야기이다. 암튼 이 식당은 리조트에 있는 정식 식당 중에서도 가장 팬시한 식당이란다. 슬슬 걸어서 메인 빌딩 2충으로 갔더니, 멕시칸 식당과 거의 딱 붙어 위치해있다.

푸와그라 전채요리

연어 세비체

크노르 콘소메 맛이 났던 콘소메 수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던 문어 요리

파이 스타일의 라따뚜이

세상에.. 전채요리로 푸와그라가 있더만. 멕시코에 와서 난생 처음 푸와그라를 먹어본다. 동물 학대 논란으로 조만간 지구상에서 사라질 지도 모르니, 이게 내 인생 마지막 푸와그라일지도 모르겠다. 인상은.. 음 좀 콤콤하고 비릿한 whipped butter 같았다. 뭐 물론 비싼 식자재라 그렇겠지만, 무지 조금 나온다. 비스킷 질감의 얇은 빵 사이에 넣어 망고향의 소스에 찍어 먹는 것 같은데.. 미안하지만 좀 색다른 웨하스 같았다. 곧이어 나온 메인 요리는 .. 문어… 크하하핫. 내가 알기로는 Octopus를 먹는 서구권 나라가 프렌치 리비에라, 이태리 남부, 스페인 남부 정도라던데.. 이민와서 이 정도 수준의 문어 요리는 처음 먹어본다. 아니 이제껏 먹었던 문어 요리 중에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했다. 타우린이 폭발해서 불끈불끈 힘이 난다. 이민 와서 현지 음식을 먹으며 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정말 초고추장이 땡긴다. 완전 고향의 맛이었다.

아내가 주문한 가지, 애호박 조림 요리도.. 완전 라따뚜이를 좀 팬시하게 담아낸 것으로 토마토 소스가 아주 훌륭했다. 와.. 어제 저녁 그릴 식당과 너무 수준 차이가 심하다. 역시 다음에 또 올 일이 있더라도 이 식당엔 꼭 다시..

아주 만족스러운 저녁식사.. 양은 좀 적었지만.. 그래도 훌륭한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향하다가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잠깐 둘러보았더니, 마침 30분 정도 후에 불쇼를 한단다. ㅋㅋㅋ 불쇼라. 그것도 스테이지가 식당 아래에 바 맞은 편에 있어서 얼른 명당 자리를 잡고 마티니와 모히토를 주문하고 기다린다.. 근데.. 어라.. 여기 음료는 거의 무알콜에 가깝다. 마티니는 베르무트 맛 밖에 안나고, 모히토 역시 클럽 소다 맛만 난다. 이 리조트 리뷰 중 음료가 너무 약해서 주문시 ‘후에르떼 fuerte’를 강조해야 한다고 하더니, 음료 맛이 영 별로네. 그래도 불쇼는 제법 재미있었다.(입으로 불을 뿜거나 하는 건 없었다) 30분 정도 보다가 윗층 극장에서 뮤지컬 ‘그리스’를 한다고 하길래, 웅성거리는 인파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ㅋㅋㅋㅋㅋ 아니 Greese 주인공들이 왜 이리 늙었나. 깜짝 놀랐다. 이건 나의 올리비아 뉴튼 존과 존 트라볼타가 아니야. 왠 로라 던처럼 차려 입은 나브라 틸로바와 엘비스 코스프레를하는 죠 페시가 나와서 저러는지.. 김지미씨가 ‘명자, 아키코, 소냐’에서 여고생 연기를 하던 게 생각났다. 김호선 감독이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그래도 아무리 소박한 뮤지컬 공연을 보더라도 재밌는건, 열심히 하는 연기자는 눈에 확 띈다는 점이다. 무대 위 군중 속에서 반짝반짝 거린다. 그/그녀가 조연을 맡던 단역을 맡던, 심지어 핀조명이 주인공들에게 떨어져 그/그녀가 암전 속에 있더라도 열심히 연기를 하는 걸 보면 왠지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엔터테인먼트 거물들이 이렇게 휴양지의 공연을 우연히 보다가 숨어있던 진주를 발견하는 일이 왕왕 있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연기자들이 좋은 제작자를 만나 빨리 빛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좀 전의 바에서 마신 술이 입맛을 버려 놔서, 숙소로 가기 전에 라운지에 가서   한잔씩 더 받아서 들어가기로 한다. 아내는 지난 밤 좋았다던 블랙러시안, 난 짐빔 더블샷을 언더락으로 마시면서, 이경규옹이 출연했다던 무한도전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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