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캠핑

2011년 내내, 그야말로 새로 산 캠핑 장비의 뽕을 뽑으면서 놀고 나니까, 그 뒤로는 아내나 나나 약간 자제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나는 그 당시 다니던 회사에 한참 진력을 내고 있던 터라, 이력서를 쓰고 다른 직장에 지원하느라 주말마다 바빴고, 아내는 아내대로 주말농장 한 켠을 분양받아서 텃밭 가꾸기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리고.. 역시 밴쿠버라는 도시 자체가 워낙에 관광도시인지라, 굳이 힘들게 짐 싸 가지고 밖으로 노숙을 하러 다니지 않아도 볼 거리, 놀 거리가 수두룩했다. 그래서 한동안 여름 주말에는 야외 콘서트를 가거나, 또 밴쿠버 여름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PNE 놀이공원 카니발 (The FAIR)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캠핑을 아예 놓아버렸냐 하면 그건 또 아니어서, 한국에서 가족들이 놀러 올 때마다 오래간만에 캠핑 장비에 콧바람을 쐬우기도 했는데, 주로 가까운 ‘골든 이어즈’ 주립공원에 가서 모닥불을 피고, 고기를 구워 먹고, 텐트 안에서 낮잠을 자거나 주변 트레일을 걷다가 오는 그런 일정이었다. 또는, 자전거를 새로 마련하거나, 새 카메라 렌즈를 테스트하러 캠핑을 가기도 했었다. (물론 캠핑을 위해서랍시고 렌즈를 사기도 했지만…)

밴쿠버가 관광도시라고는 했지만, 화창한 여름 날씨와 자연환경,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먹거리를 빼고 나면… 참 겸손해지는 건 사실이다. 유럽처럼 오래된 유적이나 문화재, 건축물 등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이나 한국의 위락시설 등과 비교하자면 캐나다 / 밴쿠버의 놀이 시설들은 저렴하기 짝이 없다, 쇼핑 시설도 그렇고… 전 세계의 다양한 외식 경험이 그나마 좀 손꼽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주머니 사정이 허락해야 가능한 일이지,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먹거리라곤 결국 햄버거 아니면 스파게티에 머무르게 된다. 

그래서 결국, 한국에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놀러 오게 되면, 가성비를 고려했을 때, 가장 손쉽게 재미난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캠핑’이었다. 마침, 한국에도 2010년 초반부터 아웃도어 라이프와 캠핑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던 터라서, 한국에서 캠핑을 이미 즐기던 사람들이나, 캠핑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사람 모두에게, 통신이 두절된 빽빽한 침엽수림 속에서 즐기는 밴쿠버의 캠핑은 색다름을 제공하기 충분했다 (그리고 비용도 적게 들었다).

2013년 여름에는 한국에서 온 가족들과 함께 ‘선샤인 코스트’라고 불리는 외곽지역으로 캠핑을 가게 되었다. ‘선샤인 코스트’는 어떤 도시명이라기보다는, ‘광역 밴쿠버’나 ‘프레이저 밸리’처럼 지역명으로 봐야 할 텐데, 밴쿠버와는 기다란 해협을 따라서 같은 육지로 연결이 되어 있지만, 딱히 길이 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중간에 놓인 바다를 가로지르는 거리가 훨씬 짧기 때문에 40분 조금 넘게 걸리는 페리 편을 이용해서 가게 된다. 

밴쿠버와 연결되는 페리 항구가 있는 ‘랭데일 (Langdale)’ – ‘깁슨 (Gibsons)’부터 시작해서, 선샤인 코스트 중심 시가지인 ‘시셸트 (Sechelt)’와 같은 남쪽 해변과, 또 다른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설터리베이 (Saltery Bay)’와 ‘파월리버 (Powell River)’까지 선샤인 코스트 고속도로 127km에 걸친 모든 마을, 그리고 키츠 섬 (Keats Island)을 포함한 주변 여러 섬들까지 포함해서 선샤인 코스트라고 보통 얘기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민 초창기에 취업을 위해 건너가 살았던 B 섬 역시, 행정구역상으로는 선샤인 코스트에 속한다.

2008년 즈음에 아내와 처음 당일치기 여행으로 갔을 때엔 주로 페리 터미널 근처에 있는 도시, 깁슨에서 구경을 하고 다녔었다. 아마 8월 연휴 때 갔던 걸로 기억하는데, 행락객 인파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페리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더 멀리 나가 여유 있게 놀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셸트까지는 갔었고, 유명한 시셸트의 해변 산책로를 주욱 걷다가 그 근처 식당에서 피시엔칩스로 점심을 해결하고, 깁슨으로 돌아와서 페리 시간까지 좀 더 동네 구경을 하는 일정이었다.

시셸트가 주거지와 편의시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도시라고 한다면, 깁슨은 그야말로 항구도시에서 관광 도시로 탈바꿈한 셈이다. 아직도 고기잡이배들이 정박하기도 하는 등 항구로서 기능을 하고는 있지만, 그보다, 페리가 들어오는 랭데일과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마을이 되었고, 또 그러다 보니 맥주 양조장, 기념품 가게, 개인 미술품 가게, 수제 식초 판매 등 관광지에 걸맞은 비즈니스들이 활기차게 들어서고 있다. 1970 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캐나다 TV 드라마 ‘비치커머 (Beachcomber : 해변에서 물건을 줍는 사람)’의 주 촬영지였다고 하는데, 그 방송에 실제 나왔던 식당 (Pub)이 아직도 운영을 하고 있었다.

깁슨 항구 주변 산책로

캐나다 시골 마을  구제품 가게에선 종종 저런 구세대 영상기기들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만날 수 있다 

폴퍼스 베이 주립공원 (Porpoise Bay Provincial Park) 캠핑장은 시셸트 시내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서 여러 가지 편리한 점이 많았다. 물론 캠핑장에도 해변이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산책하기 좋았지만, 바로 5km도 안 되는 거리에 시셸트 쇼핑몰이나 식당가들이 있어서, (심지어 자전거를 타고 나와서) 매일매일 신선한 식자재를 사 가지고 들어가 캠핑장에서 식사를 준비할 수도 있었고, 그것도 아니면 가벼운 외식을 하고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중에 발견한 곳이지만) 특히 쇼핑몰이 있는 중심가 바깥쪽 골목에 있는 K 베트남 식당은, 동네 순댓국집처럼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깜짝 놀랄 정도로 맛이 있어서, 그 뒤로도 시셸트에 갈 때마다 잊지 않고 꼭 들러주는 단골집이 되었다. 쇼핑이나 외식뿐 아니라, 시셸트의 가장 큰 명소로는 해안 따라서 길게 늘어진 해변 산책로 (Seawall)가 있는데, (대체로 항상 거센 바람이 불고 있지만)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멋진 풍경을 줄기차게 보면서, 그리고 가끔은 바다에 뛰어들며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3km 정도 거리를 자전거나 도보로 즐길 수 있다.

시셸트 남쪽 해변 산책로 자전거 길 (좌)과 북쪽 해변 (우)

가는 길에 선샤인 코스트 행 페리 안에 클래식 자동차들이 가득 차 있는 걸 보고 이게 뭔 일인가 의아해했는데, 알고 보니 그 주말에 시셸트에서 클래식 자동차 전시회가 있었다. 빤질빤질 광이 나는 클래식 자동차들이 나란히 서서 쇼핑몰 뒤쪽 거리를 가득 채웠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보닛을 열어 두어 엔진룸도 구경할 수 있도록 전시해 두었다. 

아마도 저 사람들은 일 년 내내 이 날을 기다리며 오래된 부품을 사 모으고, 차를 정비하고, 엔진룸을 청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니, 왠지 전시된 차 하나하나가 숭고해 보였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클래식 자동차들은 하나같이 시끄러운 엔진소리에 뿌연 매연을 뿜어내고 있기는 했다). 다양한 클래식 자동차들로 눈을 즐겁게 하고 난 후, 전시장 거리 뒤쪽으로 열린 여름 주말 장터 (Farmers Market)에서 싱싱한 과일과 스낵들을 사서 간단한 요기를 할 수 있어서 또 좋았다.  쇼핑몰에서 와인 한 병을 사 들고 느지막이 캠핑장으로 돌아와 기타를 치면서 별이 빛나는 밤을 즐겼다.코로나 시대 이전의 여름 주말 장터 풍경


폴퍼스 베이 주립공원 (Porpoise Bay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porpoise/) : 선샤인 코스트의 중심 도시 시셸트에 위치한 주립공원으로 여러 가지 편의시설이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80여 개의 사이트를 가진 캠핑장은 그다지 크다고도 작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애초에 페리를 타고 와야지만 하는 지리적 특성상 (특히 RV를 가지고 페리를 타면 운임이 말도 못 하게 치솟는다!!) 비교적 인기가 없는 편이라, 연휴 주말에도 다른 주립공원에 비해 예약이 늦게 차는 편이고 예약 없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FCFS 사이트도 항시 운영하고 있다. 또한, 근처에 많은 수의 민영 캠핑장도 같이 있어서, 예약 없이 왔다가 자리를 못 찾는다고 해도, 다시 배 타고 돌아가야 하는 최악의 상황은 모면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근처에는 100% FCFS로 운영하는 로버츠 크릭 주립공원 (Roberts Creek Provincial Park)도 있다!!).

공원의 해변이 서쪽으로 향해서 펼쳐져 있기 때문에, 날씨만 도와주면 환상적인 석양을 즐길 수가 있다. 비교적 널찍한 캠프 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 캠핑장의 장점이지만, 캠프 사이트에 모닥불 화로가 없고, 개별적인 캠프 파이어가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해질녁의 폴퍼스베이 캠핑장 해변

공원에 있는 해변은 (다른 주립공원들과 달리) 캠퍼들 만을 위한 것이 아니어서 주말이 되면 그야말로 빠글빠글하다, 해변 맞은 편으로 자전거 라이더들은 위한 소규모 캠프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2021년 현재 일박에 $15 불로 자동차 사이트의 절반 가격밖에 안 하지만, 해변과 접해있어서인지 (규칙상으로는) 음주를 금지하고 있다.

랭데일(Langdale) – 깁슨(Gibsons)으로 가는 페리는 웨스트 밴쿠버 서쪽 끝에 있는 ‘호슈베이 (Horseshoe Bay)’ 페리 터미널에서 탑승하는데, 2021년 9월 현재로는 (B 섬으로 가는 페리처럼) 티켓 가격이 왕복운임을 포함하고 있지만 조만간 편도 운임으로 바뀔 거라는 소문이 있다. 관광객도 관광객이지만, 깁슨이나 시셸트에서 밴쿠버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많아서인지, 미리 선불예약하거나 선불카드 (Fare Saver)를 구입하면 거의 반 가격에 이용할 수가 있다

가까운 시내 : 시셸트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서비스 업체에 따라 제한

프라이버시 : 3/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3/5

RV 정화조 : 없음

RV 급수 시설 : 없음

캠핑 사이트 크기 : 4/5

나무 우거짐 : 2/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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