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질 넘치는 부부캠핑

차박을 시작한 2016년, 처음 포트코브 주립공원부터 시작해서 밴쿠버섬에서 2주간 캠핑한 후, 그 뒤로도 근처 골든이어즈에 몇 번 가고, 좀 더 나가서 사스콰치에서 또 4박 5일 캠핑을 하는 등, 아무래도 준비가 수월해지니 많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2016년 캠핑의 정점은, 한국에서 놀러 온 처제와 아내 둘이서만 간 2주간의 ‘걸프 군도 (Gulf Islands : 밴쿠버섬 근처에 모여 있는 여러 섬들)’ 캠핑 여행이었다. 차박 덕택에 텐트 펙을 박아야 하는 중노동이 없어지고, 1분 만에 설치가 가능한 스크린 하우스로 모기들을 피할 수 있는 셸터가 쉽게 생기고, 게다가 아내에게 모닥불 장작 도끼질하는 것까지 가르쳐 주고 나니 이제 나는 캠핑을 좀 편하게 할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결과는 ‘남편이 필요 없는 캠핑 시스템’이 된 것이었다.

마치 아기 새를 떠나보내는 어미 새의 심정이었지만, 냉동/공조 기술자로서 한여름철에는 꼼짝없이 일에 붙들려 있어야 했어서, 나도 좀 데려가 달라고 조르기도 좀 뭐한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너무 섭섭하고 아쉽고 그랬던 건 아니었지만…) 연초에 해외여행을 포기하고 차박을 시작하자는 아내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보통 광역 밴쿠버에 있는 주립공원 캠핑장은 몇몇 (골드크릭, 포트코브 등)을 제외하고는, 겨울 동안 폐장을 하다가 4월 부활절 연휴나 5월 빅토리아 데이 연휴에 맞춰서 개장한 후, 여름을 거쳐 9월 노동절 연휴나 10월 추수감사절 연휴까지 운영하는데, 밴쿠버의 4월은 뭔가 어정쩡해서 한낮 기온은 5월보다 높은 경우도 많지만, 밤이 되면 여지없이 한 자릿수 기온으로 뚝 떨어지곤 한다. 그래서 매년 4월 첫 캠핑은 (여차하면 전기장판을 쓸 수 있도록) 전기가 들어오는 포트코브나 앨리스 레이크로 가곤 했다.

포트코브의 경우 그 수려한 경관 덕에 언제 가더라도 정말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지만, 한 가지 단점으로는 캠핑장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놀 거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2017년, 한창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있던 아내에게는, 반짝이는 노을과 쏟아지는 별빛을 캠핑 의자에 앉아서 감상하는 것보다 당장 뛰어오르고 걸어 다닐 산책로가 더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2017년 첫 캠핑은 포트코브가 아니라 선샤인코스트로 가게 되었고, 이번 캠핑에서는 캠핑장에서 죽치고 놀기보다는 선샤인코스트 주변의 트레일 탐색을 해보기로 했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서 체력에 자신감을 얻고 있었던 아내는 좀 더 멀리 많이 걷고 싶어 했고, 일주일간 혹독한 육체노동으로 체력을 소모했던 나로서는 주말에는 좀 푹 쉬면서 회복하고 싶어서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아내의 바람대로 선샤인코스트 깊숙이 들어가 보기로 했다.


텐트 없이 차 한 대만 가지고 이동하는 간편한 시스템이 되다 보니까, 덩달아서 음식 준비도 더욱 간소화되어갔다. 전반적으로 미니멀 해지는 분위기여서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식자재나 요리 도구 등 짐을 많이 싣고 다니면 우리가 잘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질 않았다. 그래서 차박을 하는 동안에는 가능하면 요리는 하지 말고 식당 음식을 포장해서 먹기로 했다. 선샤인코스트에서는 심지어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사서 반은 잘라서 점심으로 먹고, 반은 남겨두었다가 트레일 하이킹을 마치고 간식으로 먹기도 했다.

처음 가본 것은 스쿠쿰척 협류 주립공원 (Skookumchuck Narrows Provincial Park)이라는 곳으로 시셸트 시내로부터 차로 한 시간 정도 북쪽에 위치한 공원인데, 8Km의 쉬운 트레일이 바다로 연결되어 있다. 조수간만의 차 때문에 해류가 한 군데서 합쳐지면서 소용돌이치는 곳으로 유명해서(Skookumchuck이 원주민 언어로 ‘강한 물’이라는 뜻), 종종 급류에서 카약을 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바위에 별생각 없이 앉아 있으면서 조류가 바뀌기를 기다렸지만, 딱히 엄청난 구경거리가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어두워지기 전에 돌아왔다.

스크쿰척 주립공원 (좌)과 근처 펜더 항구 (Pender Harbour, 우)

딸랑 하룻밤만 있었던 캠핑이었고, 딱히 무슨 거창한 캠핑 요리를 했던 것도 아니어서 그런지, 캠핑장 내 풍경에 대해서는 그다지 기억이 많이 나지 않는데, 단지, 시셸트 시내에 있는 해변 산책로를 따라서 자전거 산책이 좋았고, 첫날 캠핑장으로 돌아오던 도중 우연하게 발견한 K 베트남 식당으로 부터 깊은 감명을 받은 것 정도가 성과라면 성과였다. 아… 그리고.. 또 한 가지, 연휴가 끝나는 일요일의 페리 선착장 대기 줄이 엄청났다. 아마 3시간 정도는 기다린 듯.


그리고 5월에 갔던 두 번째 캠핑은 ‘스쿼미시 (Squamish)’에 있는 ‘앨리스 호수 주립공원 캠핑장 (Alice Lake Provincial Park Campground)’이었는데, 4월의 선샤인 코스트 캠핑처럼 미리 예약을 하지 않고 그냥 길을 나서보았다. 2020년, 2021년처럼 코로나 사태로 해외여행이 제한되는 바람에 전체 BC주민의 여흥 거리가 캠핑으로 몰려있는 때에는 꿈도 못 꿀일이겠지만, 2017년만 해도, 날씨가 아직 쌀쌀한 4~5월 하룻밤 캠핑에는 이렇게 예약 없이 캠핑장에 들어가 곧바로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이 당시엔 일요일, 월요일을 쉬었기 때문에 더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사실 앨리스 호수 캠핑장에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몇 번이나 온 적이 있었다. 캠핑장 절반에 해당하는 사이트들에서는 전기를 제공하기 때문에, 밤 날씨가 아직 쌀쌀한 매년 첫 캠핑장소로는 여러 가지로 적당했다. 특히 앨리스 호수 캠핑장은 (골든이어즈처럼)나름 고지대에 위치해 있고 사이트마다 빽빽한 침엽수로 둘러싸여 있어서 사시사철 추운 걸로 유명한데, 그만큼이나 겨울 내내 그러웠던 모닥불 온기의 진가를 (그리고 샤워실 난방의 온기의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캠핑장으로 오기 전에 스쿼미시 시내에서 간단히 (딱히 요리를 안 해도 되는 거로) 먹거리 쇼핑을 한 다음 자리를 폈다. 자리를 편다고 해도 텐트 없이 차 안에서 자는 시스템인지라 ‘주차’라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간단하게 빵과 샐러드로 점심을 먹은 후, 자전거를 끌고 산책로를 돌아보기로 했다.

앨리스 호수 주립공원 주변에는 앨리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1.5km 정도 길이의 산책로가 있지만, 아무래도 앨리스 호수와 함께 그 주변의 스텀프 호수 (Stump Lake), 포운 호수 (Fawn Lake), 에디쓰 호수 (Edith Lake) 등, 네 개 호수를 다 돌고 오는 6km 정도 길이의 ‘네 호수 산책로 (Four lakes Trail)’가 더 유명한데, 특히 5~6월이 되면 에디쓰 호수와 포운 호수를 잇는 자갈밭 길을 가로질러, 두꺼비 무리가 호수로부터 숲으로 이동하는 진귀한 광경을 볼 수가 있다. 그래서 이 자갈밭 길을 ‘두꺼비길 (Toad Alley)’라고 부른다. 예전에 왔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사람들을 봤었는데, 이때 가보니 자전거로 ‘네 호수 산책로’에 진입하는 건 5월부터 금지된다고 되어 있었다. 게다가 산속 깊이 위치한 앨리스 캠핑장은 잦은 곰 출현으로도 유명한데, 마침 우리가 캠핑을 시작한 5월 일요일에는 동반할 만한 이웃 등산객이 없었기 때문에, 걸어서 간단하게 2km만 돌고 돌아왔다.

앨리스 호수 호숫가 산책로 (좌) 와 네 호수 산책로 지도 (우)

4월의 선샤인코스트 캠핑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언젠가부터 아내와 둘이서 캠핑을 가고, 또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결국 쌈질로 번지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세계여행을 하던 친구들이 우리 캠핑 여행에 합류했을 때는, 둘만 있었을 때 쉽사리 벌어졌던 논쟁이 압도적인 다수결로 쉽게 쉽게 해결되어 생각보다 즐거웠던 기억이 있었다. 이날도,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쓸데없이 감정 소모를 하면서, 캠핑의 오후 반나절을 다 날려버리게 되었다. 아직 젊어서 그런 건지, 싸운 이유도, 절차도 생각나지 않지만 기분 나쁜 것만 마음에 남는.. 그런 시간 낭비 같은 일이 잦았었다. 그래도 모닥불이 피우고 거기에 소시지를 같이 구워 먹긴 했지만…

‘스쿼미시’ 라는 도시는 2010년대 들어와서, 산악 스포츠를 중심으로 하는 젊은 도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게 되었는데, (마치 ‘롱비치’를 가진 토피노가 전 세계 써퍼들의 성지가 된 것처럼) 특히 ‘치프산 (Stawamus Chief Mountain)’을 중심으로 도시 앞에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 절벽산들이 세계적인 암벽등반의 메카로 선전되고 있었고, 동시에 산악자전거 주행으로도 위슬러만큼이나 유명해져 있었다.

그렇게 스포츠 / 건강에 진심인 동네가 되어서인지, 시내에 있는 작은 빵집에서도 건강을 고려한 저탄/고단백 음식들을 팔고 있어서, 다음 날 아침에는 캠핑장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시내에 나가서 그 식당에 들러보기로 했다. 편도 8Km면 체크아웃 시간 전에 (주립공원 캠핑장의 체크아웃 시간은 오전 11시이다) 가뿐히 다녀올 수 있겠다 싶었는데, 출발하자마자 캠핑장 입구에서 큰길 나올 때까지 매우 가파른 내리막이어서 멘붕이 왔었다. 아니 이렇게 내려가면…. 어떻게 올라오지??

게다가 마침 당시 스쿼미시 시내로 들어가는 99번 고속도로 (Sea to Sky Highway)에서 확장공사를 하던 중이라, 약간 뒤쪽 우회로를 이용했었는데.. 어라? 이게 갑자기 무슨… 왜.. 억새밭으로 가고 있지? 가다 보니 곰 똥도 보이고, 그걸 벗어나니 완전 자갈밭이라 자전거가 힘들어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구글맵에 의하면 캠핑장에서 시내까지 늦어도 30분 안에 도착하는 거로 되어 있었는데, 이래저래 돌아가다 보니 한 시간이 넘어서야 빵집에 도착하게 되었다.

눈 덮인 산을 보면서 간단하게 파니니와 랩 등을 사서 커피와 함께 먹었지만, 그 오르막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낭만은 커녕 목이 꽉 메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끌바를 하자니, 체크아웃 시간에 못 맞출 것 같았고… 결국 택시를 부르기로 했다.

소형차 트렁크에 자전거 두 대가 다 들어가는 걸 보니 접는 자전거를 산 보람을 느꼈다. 차로 올라가니 10분도 안 걸리는구나. 캠핑장 정리를 하고, 어제 일부만 돌았던 산책로를 다시 걷고, 호숫가에 캠핑 의자를 놓고 앉아서 노닥노닥, 그리고 투닥투닥거리면서 2017년 캠핑의 스타트를 끊었다.


앨리스 호수 주립공원 (Alice Lake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alice_lk/) : 스쿼미시 시내로부터 99번 고속도로를 타고 위슬러 방향으로 13km 정도 북쪽에 위치한 주립공원으로, 96개의 자동차 캠핑 사이트와 12개의 워크인 사이트를 가지고 있다. 잠자리 날개처럼 양쪽으로 펼쳐진 모양으로 캠프 사이트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호수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오른쪽 날개 50여 사이트가 A 캠핑장 (Campground A)으로 전기가 공급되고, 왼쪽 날개 40여 사이트인 B 캠핑장 (Campground B)에는 전기 공급이 없다. 당연히 전기가 공급되는 캠프 사이트는 하룻밤에 8불씩 전기 사용료를 더 내야 한다.

전기가 공급되기 때문에, 포트코브에 이어서 광역 밴쿠버 사람들이 사랑하는 주립공원 캠핑장 순위 2위에 자리한다. 하지만, 사이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때때로 미션의 ‘롤리 호수 (Rolley Lake) 캠핑장보다 늦게 예약이 동나곤 한다.

앨리스 호수 자체도 캠핑 휴양지로, 피크닉 장소로도 유명한 터라 광역 밴쿠버나 스쿼미시 지역 주민들이 주말마다 잘 찾게 되는 곳이어서, 여름 주말에는 호수 앞 주차장에 차를 대기 위해선 아침 일찍 오지 않으면 자릴 잡을 수 없다. 딱히 캠퍼들만을 위한 해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호숫가와 호수 주변 공원은 캠퍼들과 피크닉 관광객 모두 공용으로 사용하고, 때때로 매우 혼잡하다. 앨리스 호수와 주변에 다른 세 호수를 모두 관통하는 ‘네 호수 산책로 (Four Lakes Trail)’가 가장 유명하다.

워낙에 사시사철 항상 추운 곳이어서, 캠핑을 하려면 날씨와 상관없이 난방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와야 한다. 캠핑 음식 역시, 스테이크를 구운 후 잘라서 서빙한다든지, 돼지 수육을 삶은 후 썰어서 서빙한다는 생각하고 있었다면, 서빙한 지 5분 만에 차갑게 굳어있는 고깃기름 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가까운 시내 : 스쿼미시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4/5

이동통신 / 데이터 : 비교적 잘됨. 부분적으로 불통

프라이버시 : 4/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4/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좋은 수압

캠핑 사이트 크기 : 3/5 ~ 4/5

나무 우거짐 : 4/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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