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캐나다에 산다는 것

“아니, 이런 것도 안 할 거면 왜 캐나다 살아요?”

이곳에서 교민 지인들을 만나고 어떤 취미 생활을 권유 받을 때 종종 듣는 말이야. “이렇게 넓고 멋진 잔디가 넘쳐나는 땅에서 골프도 안칠 거면 왜 캐나다 살아요?”, “이렇게 자연환경이 멋진 곳에서 캠핑도 안 할 거면 왜 캐나다 살아요?”…… 그냥 농담으로, 혹은 약간 과장이 섞인 표현으로 흘러 넘길 수도 있는 이런 얘길 들을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불편한 건, 물론 아직 내가 성숙하지 못한 탓이겠지. 그래도 각자의 취향을 인정하지 못하고, 캐나다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점을 다른 사람도 당연히 좋아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조금 폭력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리고 왠지 한 편으로는… 아마도 저 사람 마음 깊은 속으로는 오래 전부터 이민에 대해 후회가 계속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저런 식으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세뇌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듣기 안쓰럽기도 했었어. ‘아.. 이렇게 멋진 자연이 있는 캐나다에 오길 정말 잘했지……’하는 식으로 말이야.

모든 이민자들은 저마다의 사연이라 할지, 이유라 할지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을 거야. 그게 한국이 싫어서든 아니면 캐나다 좋아서든 간에, 결국 자신의 기준으로 봤을 때, 이민을 선택한 순간만큼은, 캐나다 사회가 자신의 삶, 혹은 삶의 목적에 한국보다 더 잘 맞는 점이 있다고 생각해서였겠지. 어떤 이는 자녀교육을 위해서, 어떤 이는 자신의 삶의 질을 위해서, 어떤 이는 자신에게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찾아서, 또 어떤 이는 더 많은 금융소득의 기회를 좇아서 왔을 거야..

또, 캐나다 사회에서 살다가 결국 염증을 느껴서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해. 그 염증이라는 것이 꼭 자신이 선망했던 점으로부터 배신당해서만 그런 것은 아니라고 봐. 오히려 예상치 않았던 단점들이 보디블로우처럼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다리가 풀려 버리는 경우도 많을 거야.

어떤 이는 구조적인 인종차별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이민생활을 포기하기도 하지. 또 한국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유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게 되어 결국 비즈니스를 접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고, 캐나다의 의료시스템이 예상과는 달리 너무 열악해서 한국 행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어. 중국계 이민자들의 경우, 지난번 캐나다의 코로나 방역정책이 중국에 비해 너무 유순하다는 이유로 다시 중국으로 돌아간 경우도 있었어.

그리고, 이민생활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풍파를 겪고도 그냥 저냥 사는 사람들도 많을 거야. 그냥 살다 보니 살게 된 것이겠지. 나처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보려 하기엔 너무 게을러서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운이 좋거나 다른 사람들의 많은 도움 덕택에, 진짜로 심각한 문제에 아직 봉착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 뭐 거창한 목표가 있거나 성과를 냈다기보다는, 일상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순간들로부터 감동을 받아서 하루하루 살아갈 힘을 얻는 경우도 많거든. 사실 대부분의 경우, 그 작은 순간들의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지. 마치 공기의 고마움을 잊고 살 듯이 말이야. 뭐 이런 건 비단 이민 생활에만 국한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서, 혹시 네가 나한테 캐나다에 왜 사는지, 캐나다에 살아서 뭐가 좋은지를 묻는다면, 나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심드렁하게 ‘사람 사는데 다 똑같지 뭐..’ 하고 말 뿐일 거야. 날 때부터 뒤끝 작렬인 체질이어서 뭐가 싫은 지에 대해선 입에서 줄줄 나올 수 있을지 몰라도, 좋은 건 쉽게 쉽게 기억이 나지 않더라구. 그래도 좋은 점이 있으니까 아직 여기 이대로 사는 걸 텐데… 자신이 받은 걸 하나하나 기뻐하고, 감사하고, 기억하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것 같아.

뭐 딱히, 감사하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사는 게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언제까지 캐나다를 ‘이 눔의 나라’, 한국을 ‘우리나라’, 캐나다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을 ‘얘네들’, 한국계 이민자들을 ‘우리들’이라고 칭하면서, ‘이 눔의 나라’와 ‘우리나라’의 차이점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불평하면서 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더라. 이 눔의 나라가 좋은 나라인지 나쁜 나라인지보다, 자신한테 적합한 나라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이민생활을 그만둘지, 아니면 지속할지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겸연쩍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나다에서) 살면서 받은 작은 감동들, 그리고 ‘음… 이건 나랑 좀 맞는 것 같아’라고 생각 드는 점을 조금 적어보려 한다. (아..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야)

USE YOUR COMMON SENSE

캐나다 사회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종차별 보다)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고 아직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이거였어. “문서화된 규칙의 부재” 혹은 “규칙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 이렇다 할 원칙이 없다 보니까 “어? 나한테만 이러는 건 인종차별 아닌가?” 하면서 오해하는 상황이 왕왕 생기기도 했었어.

물론 캐나다 사회 자체가 ‘성문법’ 사회가 아닌 ‘관습법’ 사회다 보니까 이렇게 분방한 상황이 오게 되었겠지만, 그래도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마다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 없이 “Use your common sense (재량껏 판단하세요)” 를 내세운다든지, 회사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든지 (도대체, 선배들은 무슨 죄냐고… 자기 일을 해야 할 시간에 후배 돌보기까지 떠맡겨진다면) 하는 것만 반복되는 거야.

물론 아주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판단까지 맡기는 건 아니야. 단지, 아주 자잘한 일들.. 그러니까 나의 오판으로 조직에 커다란 위해를 끼칠 수 없는 것들, 오히려 그 사람의 판단력을 테스트해보기 만만한 일들만 각 개인의 재량에 의존하는 거더라구. 예를 들어 버스 기사들이 자기 판단 하에 요금을 받지 않는다든지, 컴퓨터를 팔 때에도 재량껏 깎아 준다든지, 교통경찰도 자기 판단 하에 범칙금 티켓 발부를 유예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거지. 북미 레스토랑에서의 팁 문화는 바로 이 “Use your common sense”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보기에만 허우대 멀쩡한 성인일 뿐, 사실 캐나다 문화에 대해서는 완전 갓난아기 수준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사실 너무너무 곤혹스러웠어. ‘아니… 내가 뭘 안다고.. 그런 판단은 나보다 월급 몇 배로 받는 매니저가 할 일 아닌가? 나 보고 어쩌라고……’ 하면서 짜증을 낸 적도 있었지만, 결국 주변 직장동료에게 그들의 판단을 빌려서 문제를 해결하곤 했었지.

하지만, 나중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회사의 시각으로 생각해보니, 성별이나 문화, 인종의 다양성을 고려해서 채용한 입장에서는 당연히 다양한 시점으로 판단을 내리는 걸 보고 싶었을 것 같아. 다시 말해서, (단순히 윗대가리들이 귀찮아서 그러는 것도 있겠지만) 다문화 사회 특성상 하나의 강한 원칙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괄 적용하기보다는, 개별 이민자들의 문화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 거지.

실수에 대한 관용

또 다르게 보자면, 개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해서, 보험이 이미 들어져 있어서인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해. 그렇기 때문에, 커다랗고 굵직한 원칙 – 개인의 자유, 인권, 차별반대 등 – 에 위배되지 않는다면, 개인이 뭔가 비생산적인 결정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그 일로 치명적인 처벌을 받거나 하지는 않는 것 같더라.

예전에 ‘선샤인코스트 (Sunshine Coast)’라는 외곽 지역으로 출장을 가려고 페리 탑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차량 대기를 안내하는 유도요원의 실수로 배를 한 대 놓친 적이 있었어. 근데 다음 배는 2시간 후에 있어서, 그걸 타고 업무를 보고 나면, 마지막 배 시간을 못 맞추겠더라구. 당일 안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없게 된 거지. 회사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숙박 경비를 지불하게 되어 좀 짜증스러울 만도 한데, 사정을 얘기하니… “어, 그래? 너 괜찮겠어? 그럼 오늘 호텔에서 자고 내일 와.” 라고 선선히 말하는 거야.

어째서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걸까? 물론 회사가 그냥 부담할 수도 있고, 결국 고객에게 비용을 청구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상황을 살펴보면 누구 한 명의 실수로 다른 누군가가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되는 상황이 아닌가? 근데 누구 잘못으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일일이 분석하려 하지 않더라구. 가수 양희은 씨의 철학대로 “음~ 그럴 수 있어~”라는 마인드가 깊숙이 자리 잡은 걸지도 모르겠다.

BC 주에서는 자동차 보험을 주정부가 독점해서 관리하는데, 그러다 보니 가해자 차량과 피해자 차량을 한 회사가 동시에 대리하는 얼토당토않은 상황이 생기는 거야. 미국식 표현에 의하면 ‘Conflict of interest (이해 충돌)’ 라고도 볼 수도 있는 상황인 거지. 그래서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거든. 아무튼 이렇다 보니, 당연히 사고 낸 사람이 음료수 사들고 병문안을 안 왔다고 해서 예의가 없다며 공분하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는 거야.

물론 경찰 조사를 통해 사고를 유도한 사람의 다음해 보험금이 올라간다든지 하는 경우는 있지만, 아무래도 BC에서는 교통사고란 대개 과실로 일어나는 것이지 명백한 가해자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도 운전미숙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그동안 숙련된 운전자에게 제공했었던 할인이 없어지는 의미거든. 마찬가지로 극장에서 영사사고가 난다고 하더라도 그냥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낄낄거릴 뿐, 단체로 일어나서 환불 소동 벌이는 일도 없어.

이렇게 잘못을 추적해서 단죄하지 않는 문화가 처음에는 나도 무척 답답했었지.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거든. 하지만, 누구 하나 나서지 않더라구. (귀찮아서 그러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여기선 기본적으로 타인의 잘못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건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이런 식으로, 자잘한 분쟁을 회피하게 되니까, 왠지 사람들이 무척 너그러워지게 되는 것 같기도 해.

물론 차를 몰고 나가면, 상대의 실수에 꼬박꼬박 보복운전으로 혼쭐(!)을 내줘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그냥 그냥 좋게 좋게 넘어가는 분위기야. 처음에는 정의감에 불타던 나 역시도, 점점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지니까 나 스스로의 정신 건강에도 무척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

COMPASSION

한편으로는, 상대의 어려운 사정에 맞춰 규정의 예외를 제공하는 이런 걸, 캐네디언들은 ‘컴패션 (Compassion 타인의 불행이나 슬픔에 공감하는 것. 한국의 ‘측은지심’과 유사)’ 이라고 자칭하면서,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 자질 중 하나라고 여기는 것 같아. 그렇다 보니, 불문법, 관습법 사회에서 어떤 규정 / 규칙이 컴패션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 종종 일어나는 거야.

뭐, 이게 제대로 쓰이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렇게 예외 상황이 많아지면 당연히 규칙이 엉망이 되고, 예외를 자기 편의에 맞춰서 해석, 악용하는 경우도 많아지는 것 아닌가? 심지어 어느 취업 전문가는, 캐나다 사회에서 일단 면접 단계까지 올라갔으면,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왜 이 직업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말하면서 면접관의 컴패션에 호소하는 것이 승산이 높다고 얘기하기도 하더라구.

마트에서 일하다 보면 환불 규정에 벗어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 동정을 요구하며 환불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에도 고지식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인간이다 보니까) 나로서는 규정대로 환불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거든. 물론 캐나다 사회다 보니까 말단 직원들도 그 정도는 직권으로 예외를 적용해서 환불을 해줄 수도 있었지. 하지만, 내 나름대로 철학으로는 “이렇게 되면 항상 진상 고객들만이 이익을 얻고, 규정을 따르는 좋은 고객들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 아닌가” 해서 고집을 부린 거였어.

결국 나중에 가서는, 상황은 이제 환불이 문제가 아니라 왠지 고객과 나의 유치 찬란한 승부로 발전하고, 결국 덜컥 난입한 매니저가 냅다 환불을 해줘서 고객을 달래게 되는 거야. 이렇게 되면 난 왠지 원칙을 지키면서 일하려 했는 데도 진상고객에게 (정의가!!) 패배했다는 분노가 오랫동안 스트레스로 남아있었던 적도 있었어. 컴패션은 개뿔, 귀찮아서 그러는 거라고, 그래서 컴패션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지만, 굳이 일을 크게 벌이고 싶지 않아서 컴패션 이라고 넘어가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었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컴패션 덕분에 나도 봉변을 모면하는 상황 (뭐, 환불이라든지 기한 지난 쿠폰을 사용한다든지 하는 자잘한 것이지만)을 몇 차례 겪으면서, 생각이 좀 바뀌게 되었는데, 물론 거짓으로 컴패션을 악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 거지. 단지 귀찮거나, 나 스스로가 자비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자뻑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사람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지…’ 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상대의 태도와 상관없이 그 사람의 진술에 귀를 기울이고 거기에 공감하는 것이 규칙보다 앞서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지.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내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단지 완장을 차고 있는 것뿐이었고)

리셋의 자유로움

어찌 되었든, 이렇게 실수에 대한 관용, 실수에 대한 보험, 컴패션 등이 있다 보니까, 이 사회에서는 비생산적인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것에도 좀 더 자유로운 것 같아. 어쩌면 이 점이 내가 캐나다 사회를 미워할 수 없는 가장 치명적인 요인일지도 모르겠어.

어릴 적부터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토익점수가 인생을 결정한다고, 영어실력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20대 때부터 재테크를 시작하는 것이 노후생활을 결정한다는 식으로 자발적 규제가 넘치는 강압적인 사회에서 살다가 와서 그런지, 이렇게 쓸데없는 짓에 진심인 사회 문화가 너무 황홀해 보이는 거야.

북미, 서구사회에서 취미문화가 더 발전하고, 인문학 이나 자연과학이 발전해 있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아닐까? 비록 돈이 안되더라도, 당장 굶어 죽지 않는 한 자신이 재미를 느끼는 것에 진심일 수 있는 건, 이러다가 실패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어서겠지.

한국에서 영상관련 일을 하는 동안, ‘정말이지 사회에 손톱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자위행위를 하고 있구나… 그렇다고 나 스스로가 만족하는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하면서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 다행히 마지막에 일하던 회사가 4대 보험이 있던 회사이었기 때문에, 퇴직하고 고용보험을 받으면서 전자기기 수리 학원에 다닐 수 있었어. 내가 당장 의료인이 되어 사회에 공헌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고장난 컴퓨터나 가전제품이라도 고쳐서 이웃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학원을 수료한 후 여기저기 수리기사 직종에 구직 활동을 해보았었는데, 한결같이 서른 살이 넘었다는 이유로 거절하더라. 공고를 졸업하고 방위산업체를 마친 주임기사들보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다는 사정이었어. 한참 이민병에 빠져있을 때였는데 마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예전에, 이민자들 대상으로 하는 구직 교육을 들을 때, 북미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일생에 7번 직종 (Career)을 바꾼다는 얘길 들었었다. 뭐.. 캐나다 정부 입장에서야 이민자들이 모국에서의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느라 시간과 세금만 허비하고 끝내 정착을 못하는 상황을 막고 싶어서 저런 통계를 강조했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여기서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한번의 실수가, 혹은 한때의 방만함이 자신의 인생을 돌이키지 못하게 만드는 실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다는 거지. 이러한 문화는 캐나다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 보다, 자신이 달려온 궤도에서 스스로 이탈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온 이민자들에게 특히 도움을 주는 것 같더라. 이미 한번 엄청난 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뭔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더 자신이 있는 것이겠지.

보수성

사실 캐나다 사회의 보수성은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해. 이제껏 별문제 없이 잘 굴러간 시스템이 있다면 구태여 바꿀 생각을 안 하더라. 하지만 그 시스템이 문제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판단이라는 게, 자기 시점에서 보기에만 그런 것이고, 아주 느린 속도로 천천히 변화해 가고 있는 걸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지.

그러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는 거야. ‘엥, 우리 캐나다가 왜 이렇게 됐지? 옛날에는 안 이랬었는데?’ 이러다 보면 자기 불만의 화살은 새롭게 주류사회에 편입한 어린 놈들, 혹은 이민자 놈들에게 향하게 되는 거지. 또는 여자들이 예전처럼 조신하지 않아서라고도 생각하고 말이야. 캐네디언의 컴패션은 보통 자기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 (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에게 향하는 것이라서, 자기보다 시대 변화를 잘 조응해 나가는 젊은이나 여성, 혹은 이민자들은 그저 자기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드는 원흉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

반면에, 사회 통합과 안정이라는 보수의 미덕을 충실하게 지켜나가기 위해서, 캐나다 사회에서는 이런 사회불안 요인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여. 캐네디언의 컴패션을 이용해서 뒤쳐진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사회적 지원과 관용을 유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각종 차별행위를 강력하게 처벌하려고 하는 거야. 아직도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은 종이로 되어 있고 간혹 팩스를 이용해서 약국에 보내기도 하는데, 이는 의료처럼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서만큼은 변화에 뒤쳐진 사람이 겪는 충격을 최대한 줄여보려는 노력으로 보이기도 해 (너무 좋게 해석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팬데믹이 터지고 나서도, BC 주에서는 ‘마스크 착용 의무화’와 같은 규제행위를 최대한 늦춰온 것도, 여러 가지 이유로 변화에 즉각 조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되었던 것 같아. 아무래도 팬데믹처럼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에서는 조그마한 규제를 새로 만드는 것 만으로도 사회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 이후에 실내 및 지하철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지만, 한동안 이곳의 경찰들은 그냥 마스크를 들고 다니면서 착용을 안 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등, 단속보다 계도에 더 중점을 둔 활동을 했었어.

그리고 BC 주의 경우, 초기 코로나 확산 때 공립 초중고 학교를 한차례 닫았다가 다시 열고나서부터, 2차, 3차, 4차 유행 동안에는 학교를 계속 열어두었는데, 이는 전염병보다 집에 갇힌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더 위험 하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또 학생들 간의 학력 격차로 인한 미래 사회의 불안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공립학교의 의무교육이 더 지체되다가는,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은 개인교습으로 학력을 계속 키워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의 학생들의 경우에는 배움의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얘기이고, 이로 인해 사회 양극화가 더 극대화될 수 있다는 거지. 이 역시 사회 통합과 안정이라는 보수의 미덕을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책이라고 볼 수 있는 것 같아.

세계 경제와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한 나라가 막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변화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내미는 것 정도는 정부가 납세자에게 당연히 해줘야 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

PLAY AT YOUR OWN RISK

이민 초기에, 동네 공원을 다니다가 재미있는 장소를 발견했는데, 축구장 정도 크기 공간에 콘크리트로 오르막 내리막 구조물을 잔뜩 만들어둔, 말하자면 스케이트 보드 및 산악자전거 놀이터였어. 여기서 정말 대여섯 살로 보이는 아기들부터 십대 아이들까지 죄다 모여 콘크리트 구조물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처음 보는 입장에서는 ‘저러다가 자칫 미끄러지면 머리가 깨지지 않더라도 최소 전치 4주인데…’ 하는 걱정이 들었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이렇게 위험한 공간을 방치하고 있나 싶어서 주변을 살펴보니 시립공원이라고 쓰여있는 간판이 있더라구. 그리고 그 밑에는 “Play at your own risk”라는 말도 덧붙여 있었다. “재량껏 조심해서 놀아라 (다쳐도 우리 책임 아님)”라는 뜻이야.

아마도, 당시에 겪었던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이 아니었었나 싶은데, 만일 서울 아파트 촌에 저런 걸 만들어 두고, 저렇게 무책임하게 써놓으면 아파트 입주자 회의에서 뭐라고 하겠어? 어쩌면 무상의료 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르게 보자면, 맨 처음 적었던 “Use your common sense”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바로 개인의 자유와 판단에 대한 존중인 거지. “납세자의 돈을 이용해서 우리가 최선의 공간을 제공해주겠다. 여기서 놀든, 아니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다. 본인의 판단 하에 본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놀아라” 라고 하는 것 같더라구.

한국에 있을 때, 지방도시 축제를 기획하는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선 행사 기획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 민원을 최소화하는 것이더라. 그러다 보니, 어떤 프로그램 하나를 구상하더라도 번번이 민원 방지 차원에서 반박을 듣고 접게 되더라구. 물론 화재나 범죄 예방과 같은 개인의 노력과 상관없이 생기는 일에 대해서는 정부차원에서 방지 노력이 있어야겠지만, “만일 거기서 십대 애들이 술 싸가지고 들어가 놀다가 사고 치면 어떡할 건데?”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불만까지 공권력이 책임을 지기를 바라는 건 좀 억지가 아니지 않나 싶더라.

지난 20년간 밴쿠버에서 살면서 지극히 한정된 공간에서 한정된 사람들과만 교류를 가졌지만, 비록 그 한정된 경험 안에서 만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이곳의 중장년층들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 조국의 민주화나 근대화를 위해 일해 온 것이 아니라, 일 마치고 마실 맥주 한 잔, 가족들과 같이 누릴 휴가를 위해서 일해와서 그런지, 자신들이 만들어낸 사회에, 혹은 사회를 만들어낸 자신 세대에 자부심이 넘쳐나지도 않고 말이야. 당연히 ‘요즘 애들은…’ 운운하면서 개탄하는 일도 비교적 적은 편이긴 해.

욕심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일도 부끄러워해서 “자본 주의 사회에서 돈 좀 벌겠다는 게 어디 죄입니까?” 라며 스웩을 보이는 일도 거의 없었어. 한국 전통 문화인 ‘음식 나눠 먹기’를 처음 접할 때에는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아주 수줍어하기도 하고.

이 모든 건 어쩌면 개인주의 문화의 미덕일지도 모르겠어. 집단의 알파독이 되려고 하지도 않고, 나는 나, 저 사람은 저 사람, 이렇게 각자의 인생을 사는 거지. 내 인생에 관심이 더 많다 보니까, ‘요즘 애들’의 태도에 대해서 걱정할 일도 없고, 집단을 이끌기 위해 나 자신을 굳이 크게 보이려 노력할 이유도 없어.

저마다 각자의 삶의 스타일이 있고, 타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아. 돈을 쓰는 성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서, 그 사람이 입은 옷이나 몰고 다니는 자동차에 따라 그 사람의 소득 수준을 판단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아니… 굳이 타인의 소득 수준을 알려고 하지 않는 편이지. B 섬에서 만났던 사람들, L 마트에서 만났던 여러 손님들, 그리고 그 이후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느꼈던 점이야. 부끄러운 행동을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것. 부끄러웠던 일들을 잊지 않는 것. 그걸 보면서 나도 그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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