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이민가방 네 개를 들고 밴쿠버 공항에 도착한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꿈꿔온 일을 20대 내내 하다가, 모두 접고 캐나다로 오게 된 거였어요. 이민 초기엔 그나마 경력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지만, 한국이나 캐나다나 모두, 영화판 일이라는 게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내 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가족의 생계를 방치할 배짱도, 이기심도 저에겐 없었죠.
돌아보니 20년간 살면서, 성인으로서, 내 밥벌이를 해보겠다고 한 번의 비즈니스와 7번의 파트타임 일, 6번의 정규직 일을 전전했었네요. 그러다가, 비록 박봉 이지만 비교적 여유로운 현 직장의 업무환경 덕택에 이렇게 지나간 시간들을 돌이켜 볼 기회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복권에 소액 당첨되어 캐나다 와서 처음으로 레스토랑에 가서 외식을 했던 기억’, ‘애견미용실 한 구석에 강아지 옷 제작소를 차려 재봉틀을 돌리던 기억’ 등을 기록 하면서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네요.
처음 와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캐나다에는 신규 이민자들을 위한 매뉴얼이라고 할 만한 걸 찾기 힘들다는 거였습니다. 해마다 각국에서 나름 전문가라 하는 사람들을 수십만 명씩 받아들여 놓고, 그들의 전문성을 사회에 녹여내지 못하는 건 단지 영어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 나라의 이민자 정착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었던 거죠. 예를 들어, 제대로 된 공개 채용 시스템이 정착되지 못한 채, 내부정보와 인맥에 기댄 채용 관행이 신규 이민자의 정착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제 이민기록이 단순히 제 넋두리나 자뻑 만이 아니라, 이후에 밴쿠버 땅으로 새로 자리를 잡으려고 하는 분들에게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이 지난 20년간 우리 부부가 밴쿠버에서 먹고 사는 데 도와주시고 살펴주신 모든 분들에게, 제 감사를 전하는 방법이 되겠습니다.
글을 읽고 제 생각에 공감해 주시는 분들, 아니면 “아니. 회사에 놀러 왔어? 나이 값도 못하게 그런 거 하나 못 참나!” 하며 이견을 말씀해 주실 분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 개인적인 생각에 구체적인 정황도 함께 담아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한정적인 경험과 개인적인 인상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그것도 길게는 20년 전 이야기니까 지금 현 상황과는 달라진 점들, 혹은 있을지도 모를 소소한 오류 들에 대해선 미리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랍니다.
비록 이 글을 쓰면서, 여전히 이민생활의 괴로움에 대해 캐나다 정부 기관과 사회 시스템, 기업 탓을 하고는 있지만, 이 글이 “이민 생활 똑바로 하는 교훈집”이거나, “나 때는 이민 생활이 이렇게 힘들었어”와 같은 꼰대짓으로 보였다면 늦게라도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전 그냥 이 모양으로 살게 되더라구요……” 정도의 이야기를 쓰려고 계획했지만, 필력이 모자라서 오해를 유발한 것으로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참 캐나다 뽕에 맞아서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을 때, 혹은 절망에 빠져 ‘이 눔의 나라’와 ‘얘네들’이란 단어를 반복하던 때에 캐나다 소식이나 이민 생활에 대해서 써보려고 했다면, 자칫 특정 사회나 문화를 찬양하거나 조롱하는 걸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을 지도 모르겠습 니다. 하지만, 지금은 뭐… “그 놈이 그 놈이고 이곳도 지옥, 저곳도 지옥, 하지만 열탕 지옥과 바늘 지옥 중 각자 취향에 맞는 지옥을 고른 것뿐…” 이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나름 건조하게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에도 비교급이 없듯이 불행에도 비교급은 존재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