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Archives: June 7, 2011

IT 생태계

몇 년 전 부터 많이들 쓰고 있는  “생태계” 라는 표현. 영어권 국가에서 IT ecosystem 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그건 내가 워낙 문약해서일 수도 있고……  어쨌건, 그 본래의 의미가 어떤지는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대기업”에서 개발한 주력 상품이나 원천기술과 관계된 파생상품을 개발하며 형성되는 시장구조나 산업구조를 말하는 듯 하다. 말하자면, 애플이 아이폰을 새로 만들어내면, 그에 관련된 앱을 개발한다든지, 부품을 제공한다든지, 아이폰 스킨이나 케이스를 만든다든지 해서 파생 산업이 먹고 살아가는 구조가 되는데, 지금 현재 IT산업 구조를 보면 이렇게 몇몇 대지주 땅을 빌려서 사는 소작농의 형태가 지배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 지주와 소작농의 관계가 그랬듯이, 대기업이 중소기업이나 개발자들의 사정을 배려해줄리가 없다. 오히려 한 사람이 모든 결정을 내리던 지주 시대와는 달리, 여러 주주들의 이해가 걸려있는 주식회사 시대에서는 그런 일은 더더욱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단지 삼성과 같은 국내 대기업의 비도덕적인 횡포 뿐만 아니라, 아무리 애플이 개발자들이나 협력업체들에게 공정한 거래를 한다고는 하지만, 마치 지주와 소작농의 처지가 바뀔 수 없는 것처럼, 이런 생태계에서 대기업은 절대 포식자일 수 밖에 없다. 
엊그제 본 뉴스.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어 본 사람들은 모두 알겠지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한 손으로 기기를 잡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 촛점 잡고 줌 들어가거나 한 후, 화면을 탭 해야지만 찍히는 식인데, 특히 겨울에는 장갑을 벗어야만 쓸 수가 있어서 더 번거롭다. 그런데, 어느 신생 벤처업체에서 기발한 상품을 개발했다
저렇게 작은 스위치 악세서리를 30pin 단자에 연결-부착해서 한 손으로도 간단히 촬영을 할 수 있게 하였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실제 어떻게 작동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편리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불편을 감내해온 많은 아이폰 사용자들이 환호하며 구입해 줄 것만 같았다. 이 상품을 개발한 회사에서 대량 양산을 할 자금 모집을 한다고 하길래, 음.. 저 정도 아이디어면 투자자들이 꽤 모이겠는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정확히 이틀 후,
2011년 6월 6일 WWDC에서 IOS5 의 새로운 기능이 소개되었는데,
이제 저 볼륨 버튼을 누르면 촬영이 된단다. 줌 들어가는 것도 간단히 핀치로 조절할 수 있단다. 
내 참…  마치 모자이크나 넷스케이프를 만들며 웹브라우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려는 순간 MS에서 윈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별안간 탑재를 한 것과 비슷한 시추에이션인데, 이렇게 되면 Red Pop이란는 회사에서 저 상품을 대량 생산하기 전에 애플이 이렇게 미리 발표해준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뭐 빚더미에 오를 뻔 한 순간에서 기적적으로 회생한 것일 수도.. 그에 비하면 새롭게 추가된 iMessage 기능은 통신사 문자 서비스나 한국내 벤처인 카카오톡과 정면 승부하게 되지 않는가.
  
여하튼, 이 사건은 잠시나마 앱 개발자로 살아보면 어떨까… 하던 생각을 송두리채 흔들어놓았다. 그렇지.. 소작농은 소작농일 뿐이다. 뭐 애플 입장에서 봤을 때는 고객들의 불편을 해소하는 차원으로 업데이트를 한 것이니 당연 비난 받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렇게 대기업 제품의 작은 업데이트 하나가 중소기업의 생존을 결정하게 하는 시스템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 이런 일방적인 종속 관계를 생태계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당장이라도 악순환을 끊고 작은 회사들의 자생성을 만들지 않는다면, 또 한번의 참사가 이어질 지도 모른다. 애플이나 지금 잘나가는 대기업들이 예전 현대나 대우처럼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