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인 ‘척’ 하기

사람이란.. 지극히 지극히 얍삽하고 비열한 존재이다. 자신이 아쉽지 않을 때는 한없이 게으르고 자신이 급할 때는 세상은 자신 중심으로 돌아야 한다고 착각하기 마련이다. 지금 현재 내가, 느닷없이 나라 걱정을 하게 되는 것은, 역시 비열하고 얍삽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나는, 무엇보다도, 도망친다는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다.

왜.. 지금에서야 현실에 대한 참여를 못하고 있는 것에 아쉬워하는가? 이제 막 떠나려고, 이 나라로부터 모든 미련을 버리려고 하고 있는 찰나에, 왜 아쉬워 하는 “척”하는지 모르겠다. 역시 얍삽하기 때문일까? 장갑차로 여중생들을 무참히 깔아뭉갠 미군들이 “당연스럽게도” 무죄석방된 것을 왜 이제와서 분개하는 “척”하는가? 미군의 엉터리 재판을 항의하는 시민들을 방패와 곤봉으로 짓이기는 대한민국 경찰들에게 왜 이제야 분노하는가? 대한민국 보수정치권들이 서민들의 생활이나 정의 같은 것에는 추호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을 어제 오늘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왜 이제와서 이렇게 울화통을 터뜨리는 것인가… 왜.. 이제야 사회에 관심있는 “척” 하느냔 말이지..

내가 이 나라를 버리겠다고 결심했을 때.. 몇몇은 실제로 비겁한 도피를 꾸짖었고, 나 스스로도 그런 부담감을 버릴 수 없었다. 이 나라가 조금이라도 상식이 통하고 불합리가 적은 나라만 했더라도.. 나의 탈한국은 도피가 아니라 출가.. 정도로 생각할 수 있었을테지만… , 그나마 나를 위로했던 것은 팀 로빈슨의 영화 <Deadman Walking>이었다.

이 영화에서 숀 펜은 어느 여성을 집단강간하고 살해한 사건의 용의자로 유죄선고를 받고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사형수로 나오고, 수잔 서랜든은 그의 무죄와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수녀로 나온다. 영화는 사회에서 받아들일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한 인간도 죽음은 두려워하고, 사형제도라는 것은 결국 죽음을 두려워하는 한 인간을 강제로 죽이는 사법살인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정작 감동받았던 부분은 다른 곳이었다. 결국 숀 펜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수잔 서랜든이 왜 그랬냐고 숀 펜에게 물어보는 장면에서, 숀 펜은 무서워서, 너무 무서워서 말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수잔 서랜든은 무섭더라도 그것이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을 했다면 도망치기라도 했어야 하는게 옳지 않았느냐고 따져 묻는다. 숀 펜은 무서워서 달아날 수도 없었다고 울먹인다.

그랬다. 적어도 나는 이 사회가 옳지못한 일을 하는 것에 동참할 수가 없었다. 한국 노동자들의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배격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지 말라고, 그건 잘못된 일이라고 얘기하는게 힘들거나 겁나거나 귀찮다면, 적어도 여기서 그걸 묵인하는 것은 공범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30년간 살았고 부모형제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이 나라를 떠나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하고 합리화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선택이 과연 옳았던 것인지.. 나에게 편하고 유리한 것을 떠나서, 내 양심에, 사회에 대한 내 책임에 올바른 일이었던 것인가는 역시 자신이 없다.

중학교때.. 한문 선생님이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오염된 강을 깨끗이 만드는 것은 결국 께끗한 물 뿐이라고… 다른 물길로 흘러들어가는 나는 … 역시 비겁한 도망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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