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모처럼의 긴 휴식시간..
느즈막히 일어나서 한참을 빈둥빈둥대다가 빵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TV가 있으니까 거실에 나와서도 또 드러눕는다. 70개 되는 채널에 홈쇼핑 광고가 반이상이고.. 나머지도 뭐가뭔지 비슷비슷한 것 같다. 엊그제 학원에 가서 원장이 말하는 걸 알아듣고는 스스로 감동받았었는데.. 역시 언어의 세계는 심오한 부분이 있다. 인터넷 서핑을 하며 한국 뉴스를 좀 보다가 책을 좀 읽어보고.. 그간 밀린 빨래를 하기로 결심한다. 지하 빨래방에 아직 코인 시스템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지금은 무료로 할 수 있다. 겨울 옷을 죄다 빨고 딸기 가방까지 빨아댄다. 다시 올라와서
빨래를 마치고.. 엠에쎈으로 사람들과 수다를 좀 더 떨다가.. 근처 퍼블릭 마켓에 가보기로 한다. 저녁엔.. 와인과 랍스터를 먹어볼까 하고… 수산물 코너에 갔다가.. 의외로 랍스터가 엄청 큰 걸 보고 우리에게 알맞은 냄비가 없다는 걸 알고 포기하기로 한다. (냄비 탓을 하긴 했지만… 저걸 무슨 수로 삶아낸단 말인가?? 저렇게 큰 덩치가 발악하는 걸 뭔 수로 막아낸단 말인가? 아 정말 무섭다. <애니홀>에서 우디알렌이 생각이 난다. ) 시장을 돌아다니면서 올리브 기름과 아내가 좋아하는 스파게티용 크림소스, 감자, 통 후추.. 등을 사고 맥주 6병을 사가지고 온다. 참.. 감자를 산 청과물 코너의 캐셔가 한국인이냐고 물어보면서 상냥하게 대해준다. 확실히 2년 전과 달라진 것을 느낀다.
돌아오는 길에 드럭스토어에 들러서 통후추 그라인더와 소시지, 콜라를 사려고 했으나 이런! 일요일에는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흐음.. 일이 안풀린다. 별 수 없이 집 근처의 잡화점에 가서 콜라와 또띠야를 골랐다. 계산대에 가는데 백인 커플 하나가 들어와서 인도인 주인 아저씨한테 뭐라뭐라 하더니 나에게 혹시 스카이 트레인 안타고 다니냐고 묻는다. 갑자기 황망해진.. 나는 더듬더듬거리고 있었는데 자기들한테 세이브페어 북(10장)이 남는데 27불짜리를 20불에 사라고 졸라댄다. 난 원래 이런 거를 절대 사는 일이 없는 편이지만, 일단 우리가 세이브 페어 티켓을 구하려고 여기 저기 알아 봤었던데다가, 이 커플들이 첨부터 우릴 노린게 아니라 잡화점 주인에게 팔려고 왔으니, 만약 위조라고 할지라도 그만큼 정교한 위조가 아닐까.. 생각하고 덜컥 사버린다. 뭐.. 사실 살 때는 기분이 좋았으나, 그걸 사믐 모습을 보고 인도인 주인의 입가가 씨익 올라가는 걸 보니까.. 음.. 왠지 찝찝하다. 낼 당장 확인해야 겠다.
집으로 돌아와 간만에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담궜다. 지난 여름 포천에 가서 몸을 담근 이후 처음이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다리의 긴장이 풀린다. TV를 틀어놓고 또 비슷비슷한 방송들을 좀 검색하다가 아내와 함께 Shaftbury Cream Ale 을 한 잔 들이킨다. 세금 포함해서 우리나라 돈으로 한 병에 2000원 꼴이니, 맛에 비교한다면 결코 비싼 것은 아니다. 아함… 소파에 길게 기대어 TV를 보며 차가운 맥주라니.. 푹 쉬고 있는 것에 감동하면서 나머지 시간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