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표

이민 10일차..(비행기에 있던 시간을 합치면 11일째다)

요즘의 일과는 일단 7~8시쯤 일어나서 책을 좀 읽고 TV를 좀 보다가 씻고 나서는, 빵을 구워 아침을 해결한다. 이러다 보면 이래저래 9시쯤 된다. 아침을 먹고 나서 딸기와 산책 한 바퀴 돌면서 딸기의 모든 화장실 문제를 해결한다. (이곳에는 개를 산책시킬 때 밤드시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게 되어 있다. 만일 개똥을 치우지 않다가 걸릴 경우 엄청난 벌금을 물게된다. 물론 이민자 사회다 보니까 여러가지 인간이 있고, 어느 동네에 가면 길목 길목마다 개똥이 점철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돌아와서 딸기를 대충 닦아주면, 나보다 훨씬 밥을 식사를 늦게하는 아내는 그제서야 식탁을 치우고 있다.

후식으로 오렌지를 먹거나 커피를 한잔하면서 아침에 나갈 일이 있으면 서둘러 준비해서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TV뉴스를 시청한다. (TV를 보는 것이 영어공부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글쎄.. 별로 재미없는 프로그램이 많고) 몸이 찌뿌둥하면 국민체조를 한판 했다가 다시 TV를 본다. 뉴스에서는 아랍 사람들과 북한이 얼마나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지 반복 연설하고(이곳의 TV 프로그램은 90% 이상이 미국 프로그램으로 채워져 있다), 아침 쇼프로그램은 ‘저질’이라고 할 수도 없고 ‘변태’에 가까운 희한한 광경들이 펼쳐진다.

<제리스프링어쇼>라는 프로그램은 한국에도 익히 알려져있지만.. 여기는 다양한 종류의 치정사건과 엽기 사건의 당사자들이 나와 자신의 사생활을 늘어놓는데, 예를 들어 “난 남자친구가 있지만.. 그 몰래 바람을 피웠는데 고백하고 싶다.” 이런 내용으로 신청을 하면 쇼에서 둘 다 초청을 한다. 먼저 주인공 여성이 나와 자기 사생활을 얘기하고 곧이어 남자가 나오면 그에게 고백을 한다. 그럼 멋지게 고개를 떨구는 남자가 있는 반면 다짜고짜 주먹이 날라가는 사람도 있다. 이러다보면 치고박고 싸움이 일어나기 일수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관객석에 앉아있던 건장한 보디가드들이 뛰쳐나와 뜯어 말린다. 관객들은 좋은 구경을 놓쳤다는 듯이 탄식을 내쉰다. 게스트들을 좀 진정시키면 쇼호스트인 제리가 게스트들에게 소감을 묻는다. 그럼 여자 주인공은 남자친구가 바람 피운줄 착각하고 홧김에 저질렀다고 하고, 남자는 저 여잔 원래 바람기가 많은 년이라고 한다.(정말이지 욕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미국 지상파 방송에서는 욕설이 나오면 “삐-“하는 경보음으로 대체하는데, 어떤 때는 대사는 하나도 없이 첨부터 끝까지 “삐——-“로 채워진다. ) 그런 논쟁이 이어지면 여자는 ‘그래 나 이런 년이다”하는 듯이 가슴을 훌러덩 드러내고 흔들어 댄다.(물론 모자이크 처리되었다. 이 ‘가슴 드러내고 흔들기’는 이제 이 쇼의 트레이드 마크라도 된 듯하다) 남자친구는 고개를 젖고 관객들은 환호한다. 제리가 다시금 진정을 시키고 이제 관객의 소감을 듣는다. 한 관객중 한 여자가 주인공 여성에게 “넌 그렇게 살면 안된다.. 넌 그냥 튀고 싶어서 여기에 나온 것 같다” 뭐 이런 식으로 깎아내린다. 그러다 보면 둘이서 또 싸움이 시작되고
여자주인공은 “그런 넌 이렇게 할 수 있냐”는 식의 제스츄어로 또 가슴을 까서 흔들어댄다. 여자 관객은 할 말을 잃는다. 다른 관객들은 환호하며 여자 관객에게 “Take it off!!”(벗어라!!)하며 입을 모아 외친다. 난처해 하며 그냥 자리에 앉는 여자관객이 있는가 하면, 에라 모르겠다 하며 가슴을 드러내는 관객도 있다.

이런 얘기말고도.. 알고보니 난 동성애자였다며 아내에게 고백하는 남자, 자신은 노출증 환자라며 애인에게 고백하는 할머니 등이 나오는 TV프로그램이다. (글쎼.. 영어공부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Take it off..는 확실히 기억한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제니..쇼”와 “모리Maury”가 이어지는데 둘 다 사생아의 친부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이다. 이것도 엽기적이다. 한 여자가 나와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아빠로 추측되는 남자는 3명이다. 그럼 방송에서 3명의 남자를 다 인터뷰하는데, 당연하게도(여긴 친부가 의무적으로 양육비를 대게 되어있다. ) 3명 모두 난 아빠일 수 없다며 저마다 근거를 들이민다. 그럼 DNA 검사를 해서 결국 아이의 친부를 밝혀내고… 당사자 아빠는 머리를 쥐어뜯고, 여자와 다른 2명의 남자는 환호한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13살 때 아이를 가져서 낳았는데, 남자친구가 자기를 버렸다는 얘기다. 남자친구의 얘길 들어보면 쟨 그 당시 내 형과 가장 친한 친구랑 같이 잤기 때문에 헤어졌고, 또 자신의 아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여자는 당시 남자가 다른 여자랑 바람을 피운 걸로 알고 홧김에 저질렀다고 한다. DNA테스트 결과를 열면 아이의 친부임이 밝혀진다. 그럼 남자는 여자에게 과거를 잊고 아이를 잘 키워보자고 한다. 둘은 포옹하고 관객들은 감동한다.

이것들만 봐서는 사실 이 나라..(엄격히 얘기하면 미국)의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스트 출연진들도 모두 (자신의 몸관리에는 전혀 신경을 안써서)뚱뚱하거나 대개 흑인들이다. 이런 사생아 출산과 그에 따른 가정파괴들이라는 잠재적인 문제를 껴안고 사회가 굴러간다. 더욱이 그런 문제를 TV의 구경거리로 만든다. 그리고 이런 문제들을 애써 무시한다. 미국이나 이 나라의 지성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본다는 사실을 밝히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낮이 되고 서쪽으로 난 창쪽으로 이미 볕이 들기 시작한다. 요 며칠간은 렌트 아파트를 구하느라고 이 즈음에 많이 나갔었다. 내가 일하게 되고 아내가 공부하게 될 써리 길포드 근처에 방 하나짜리 아파트를 구했고 서류심사(여긴 입주자들을 심사를 해서 받는다)가 통과되어 오늘 계약금을 걸러간다. 많은 사람들이 이 나라의 주거환경은 한국에 비교해 너무너무 좋기 때문에, 몇 군데 둘러보고 너무 좋다고 덜컥 계약하지 말고 최대한 많이 둘러보고 결정하라고 조언하지만, 우린 그냥 편하게 만족하면서 살기로 했다. (그리고 위치적 조건으로 볼 때, 우리에게 있어서 당장 차량을 구입하지 않아도 되는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 나라의 자동차 보험료는 꽤 비싼 편이다)

이 나라의 주거시설은 여러가지 시스템이 있는데, 일단 모텔이나 민박과 같이 서비스가 동반되는 시설을 제외하고, 먼저 아파트먼트(아파트)는 임대를 목적으로 단지를 구성해서 지어놓은 건물들이다. 형태는 과천의 아파트와 비슷하게 3층 정도의 높이의 건물들이고 침실 1, 2개와 주거시설이 있는 suite(집)로 구성되어 있다. 주로 저소득층이나 독신자들, 은퇴한 노인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대료도 저렴한 편이고 애완동물을 허락하는 곳은, 허락하지 않는 곳보다 좀 지저분하다. 세탁시설은 대개 공동세탁장을 사용하고 오븐이나, 냉장고는 주거시설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콘도미니엄… 이건 구매도 가능하고 임대도 가능한 아파트이다(이 나라에서의 임대는 월세밖에 없다). 대형 고층건물에 있으며 아파트먼트보다 고급시설로 볼 수 있다. 침실 1~3개와 주거설이 포함되어 있고 세탁기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전체적으로 이 나라의 주거시설은 한국보다 엄청 넓은 편인데.. 우리가 계약한 아파트의 경우도 20평정도되는 넓이를 가지고 있지만 침실 1개 짜리이다. 침실 2개짜리 콘도미니엄의 경우 널찍한 거실과 벽난로, 그리고 DEN(사무실로 쓸 수 있는 다용도 공간)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타운하우스… 이곳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공공주택이긴 하지만 우리에겐 생소한 공간이다. 주로 판매를 목적으로 지어진 집들이다. 관리실과 공동주차장이 있고, 지하실과 2층으로 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지하실 없이 3층건물로 되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주택 8개 정도가 나란히 횡으로 붙어있는 구조이다. 외부로 노출된 입구는 집집마다 있고 건물 3개층을 한 집에서 다 쓴다. 쉽게 말하면 과천의 빌라촌처럼 한 세대가 3층 건물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침실 2개짜리 도 있고 침실 3개짜리도 있다. 이런 경우, 1층은 거실 또는 가족방으로 쓰고, 2층에 부엌과 식당, 다용도실, 3층이 침실로 되어있다.

그리고 하우스… 뭐.. 외화에서 많이 봤을 것 같은.. 그림 같은 집들이다. 전체적인 구조는 타운하우스와 같지만.. 독채로 구성되어 있고, 독립적인 앞 뜰과 뒷 뜰, 주차장이 있고 따라서 집 관리 전체를 알아서 해야한다는 복잡함이 있다. 그리고 타운하우스가 도심이나 다운타운에 포진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하우스는 변두리에 널찍히 분포되어 있어서 대중교통이불편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용한 환경을 좋아하고 아이들 교육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가용을 이용하더라도 변두리에 산다) 가격도 천차만별이지만..

어쩄건.. 우린 당분간 살 집을 구했다. 어느모로 보아 현재 우리에게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다. 아내가 학교를 졸업해서 직장에 다니게 되고.. 나 역시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차도 생기고 그렇다면.. 타운하우스.. 정도 생각해 보겠지만…

일을 마치고 나면 마트에 가거나 시장에 가서 약간의 쇼핑을 한다. 뭔가 신기한 먹거리나 마실 술을 사는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 살고 있는 모텔의 주변환경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곳 뉴웨스트민스터는 그 옛날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주도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골동품가게며, 오래된 교회, 오래된 무대 등이 많은 것 같다. 항구의 크루즈는 카지노로 사용되고 있고, 그 옆에 “퍼블릭마켓”이라고 해서 자그마한 시장이 있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채소가게며 잡화점이 있다.

그 외의 마트(라고 흔히 불리우는 상점)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우리가 이사갈 아파트 근처의 대형몰에는 시어스, 런던드럭, 월마트 등.. 세 개의 대형마트가 입주해있다. 가격경쟁력은 물론 월마트가 가장 강력하다 . 그 외에 반대편으로 4블록정도 가면 “(리얼 카나디안)슈퍼스토어”라는 마트가 있는데, 가격 경쟁력이나 물품의 다양성, 전시상태등 모든 면에 있어서 가장 경쟁력있는 마트다. 여긴 청과물 등 식료품도 판매하기 떄문에 애완동물은 출입금지되고, 큰 가방들도 못 들고 들어간다. 우리네 하나로 마트 정도로 보면 되겠다. 그밖에도 코스트코가 있고 각 전문분야별로 홈디포(주택용품, 공구류), 이케아(주택용품, 인테리어 소품), 페세트라(애완동물 용품) 등이 있다.

쇼핑을 마치고 나면 어두워지기 전에 보통 숙소로 돌아온다. 저녁을 준비하고, TV를 보거나 한다. 아침점심은 부실하게 먹어도 저녁엔 필수영양소를 다 갖춰 먹으려고 한다. 마침 오븐이 있어서 그간 못해 본 요리를 해보고 있다. 최근 가장 감명깊었던 요리는 오븐에서 익힌 삼겹살과 감자 통구이에 간장소스…. 아.. 정말 눈물나는 감자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이런 정찬을 마치면(여기 거실에는 커다란 등이 없다. 샹들리에라도 달아야 하는 걸까? 항상 어둑한 환경에서 저녁을 먹으려니 식탁에 촛불이라도 켜놓고 싶다.) 샤워나 목욕을 한다. 이곳 모텔은 숙박비에 수도요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목욕을 해댄다. (목욕용 라벤다 항료도 샀다) 욕실에서 나오면.. 몸을 좀 말리고 나서 소파에 기댄 채 또 다시 TV를 틀고 맥주나 잭다니엘을 마신다. 정말이지 꿈 같은 생활의 연속인 것 같다. 4월 첫출근 전까지는 좀 게을러도 되겠지..

침대에 들어가서는 침대등을 켜서 책을 좀 보다가 12시 좀 넘어서 잠에 든다. 창밖으로 차소리가 좀 들리는 걸 제외하곤 조용한 밤이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