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오해 혹은 진실 – 이주 11일차

몇 가지 오해 혹은 진실 – 이주 11일차

1. 뱅쿠버의 겨울은 비가 계속 오는 우기이다.
– 우리가 오고 나서 부슬비를 맞아 본 적은 단 2번 밖에 없다. 그것도 얼마 오지 않아 그쳤다. 약간 흐리거나 햇빛 찬란한 나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쌀쌀한 바람은 조금 부는 듯. 알고보니 이곳도 엘리뇨에 의한 이상기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아침은 일어나 보니 여기저기 눈이 소복히 쌓여 있었다. 뱅쿠버에 눈이라니.. 여기도 캐나다는 캐나다란 말인가? 뉴스에도 추위경보가 내렸다고 한다. (그래봤자 영하 2도지만..). 또 햇빛이 얼굴을 드러내고 날이 많이 따뜻해지고 있다.

2. 뱅쿠버는 일회용품이나 플라스틱을 쓰지 않거나 비싸다.
– 하! 여기 마트에서 물건을 사면 엄청나게 큰 비닐봉지에 반에 반만 채워서 담아준다. (그래서 한번 쇼핑을 하면 비닐봉지 두 세 개를 들고 나오는 것은 보통이다.) 푸드코트에서도 접시에서 포크까지 모두 일회용품을 사용한다. 마트에 가도 각종 일회용품을 아주 값싸고 품질 좋은 것으로 구할 수가 있다. 기본적으로 각종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즉석요리 같은 것이 풍성하게 깔려있는 나라인 것이다.

3. 뱅쿠버의 거리는 꺠끗하다
– NO!!! 일단 우리가 변두리 주택가가 아닌 도시중심가에 주로 생활해서 그런지 몰라도, 여기 길거리는 모든 종류의 쓰레기로 가득차있다. 앞서말한 모든 종류의 일회용품들이 굴러다니고, 그밖의 비닐봉지나 과자봉지, 음료수 깡통들도 염치없이 놓여져있다. 가장 많은 것은 역시 담배꽁초.. 실내에서 금연이라는 것을 엄격하게 정하고 있는 나라라서 그럴까? 왜 이리 거리에 담배꽁초가 많은 것일까? 그것도 뱅쿠버 시민의 단 11%만이 흡연을 한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그나마 개스타운 등 다운타운 관광지에서는 30분 단위로 청소를 하는 것 같은데, 써리나.. 이런 주변 도심지는 저녁쯤 되면 아주아주 더럽기 짝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저 나무들과 하늘이 푸르름을 유지하는 것이 신기하다.

4. 뱅쿠버 사람들은 규칙을 아주 잘 지킨다
– 이건 글쎄… 어느정도는 맞는 것 같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길거리에 개똥이 아무렇게나 널려져 있기도 하고(이건 쓰레기 버리는 것 보다 더 엄격하게 처벌한다), 스카이 트레인 플랫폼에서 담배를 피우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여기에 대해 뭐라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일단 다른 사람의 행동에 별로 터치를 안하고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니면 공권력이 해결해줄 거라고 굳게 믿는 것일까?), 버스 탈 때 줄을 무시하고 새치기하는 사람들도, 정지선을 지나 차를 정차하는 사람들도 있다. 상점에서도 크레디트 카드를 안받는 곳도 많고, 액수가 적으면 직불카드도 안받는 곳도 많다. 핫도그 가게의 경우 무조건 현금 박치기다. 결국 어디나 사람 사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단 고무적인 부분이라면 위에서 예를 들었던 부분은 극히 드문 예라는 것이다.(정말이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보편적으로 질서를 잘 지키고 있고, 또한 그것에 대한 감시체계도 철저하다. 오히려 좀 너무하다 싶을 때도 있다. 예를들어, 여기 버스는 30분에 한 대 꼴로 다니는데 버스가 정차시간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데다가, 정차지점도 정확하고, 일단 문을 닫고 나면 밖에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는 법이 없다. 말하자면 이제 문 닫고 출발하려고 바퀴가 5센티정도 움직이는데, 저 멀리서부터 30분에 한 대 있는 버스를 타기 위해 어떤 아줌마가 전력으로 달려와 버스 문을 두드린다. 그래도 짤없이 그냥 버스는 가버리는 것이다. 이런 건.. 뭐 규칙을 잘 지킨다고 하기 보다는, 그냥 원칙대로 해야 자신들도 편하다는 편의주의가 아닌가 싶다.

5. 뱅쿠버에서 모든 규칙은 사람우선 / 안전우선이다.
– 이건 맞는 말인 것 같다. 일단 왕복 6차선 이내 도로에서는 모든 차들이 절대 서행을 하고 사람이 횡단하려고 하면 무조건 서야한다. (정말이다. 첨엔 적응이 안되서 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우리가 건너려고 하는 걸 저 멀리서 본 차량은 금새 속도를 줄이고 정지선 앞에 서고 만다. 우리가 먼저 건너야 차가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모든 건물에는 비상구들이 거미줄처럼 뚫려있고, 버스나 전철 벽에 가득 붙어있는 것은 광고보다 안전 지시사항이 더 많다. (사고가 났을 때 창을 뜯고 나가는 법이라든지, 비상벨 누르는 법이라든지..) 전철 플랫폼에는 <권장대기석>이 있는데, 양쪽에서 다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지정해 두었다. 무엇보다 감동했던 일은 지난번시각장애여성에 대한 버스 운전사의 친절이었다. 버스가 정차하자, 기사가 운전대를 내팽개친채, 그 여성의 팔을 잡고 버스에서 내려서 전철 타는 계단에 올라가는 것 까지 도와주었다. 둘이서 재미있게 얘기도 나누면서 말이다.

6. 뱅쿠버는 속도보다 품질이 우선이다.
– 이것도 부분적으로는 맞다. 처음 우리가 TD TRUST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러 갔을 때, 한국에서는 10분이면 떡을 치는 일을 1시간이 넘도록 처리했다. 뭐.. 워낙 느릿느릿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여기 계좌의 종류와 특성, 그리고 직불카드 사용시 주의점 등을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사용법도 하나하나 가르쳐주느라고 시간이 그렇게 가는 것이다. 지난번 여행 때도 느꼈던 것인데.. 항공사에서도 수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다고 하더라도, 결코 상담자는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건 차례가 되어 상담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일단 자기 차례가 되었으면 충분히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상담자 역시 그 차례가 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물론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 퇴근시간이 되면 뒤에 줄 선 사람이 있거나 말거나 내일 다시 오라고 하고는 문을 닫아버린다. 그래도 이렇게 시간을 들여 꼼꼼히 하는 것이 결국 나중에 대형사고를 방지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어제도 집계약을 하는데 계약서가 4장에 뺵뺵히 조건들이 써있었다. 1시간 30분 가깝게 둘이서 꼼꼼히 읽고 있는데, 아파트 매니저는 시간을 들여하라고 하면서 자기는 답답하다는 내색도 안하고 딸과 놀고 있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꼼꼼히 검토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계약서를 다 읽고나서 10개 정도 되는 질문을 매니저에게 하자 다시 성의껏 대답해준다. 이 나라에는 온라인 홈쇼핑도, 다른 원스톱 서비스도 없다. 하지만.. 속도보다도 하나하나 순서를 제대로 밟아 나가는 것이 결국 서로에게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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