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에 대한 명상

어렸을 적 우리 동네 아파트 입구에는 핫도그와 호떡을 팔던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그런 포장마차가 많았다. 주거지나 학교 앞, 공공장소에는 꼭 두 메뉴를 갖춘 포장마차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유행처럼.. 마치 한 때의 부산오뎅 포장마차들 처럼..) 그 때 살던 아파트 단지의 구조상 시장으로 보러 갈 양이면, 아파트 뒤쪽으로 나가 지하수 펌프가 있는 뒷편 철조망 쪽문을 통해서 시장입구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지름길 이었었는데, 그렇게 시장 구석구석을 돌다가 다시 아파트 입구 쪽으로 오면 항상 예의 포장마차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주부들이 시장을 보는 시간은 저녁준비를 시작하는 오후3시경.. 엄마들이나 애들이 모두 배가 고파질 즈음인지라,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시장구경을 하는 애들에게 있어서 참새가 방앗간에 출석체크를 하듯이 꼬박꼬박 들르게 되는 곳이 바로 그 포장마차였다. 엄마들도 마찬가지로 애들 핑계를 대면서 호덕을 사먹곤 했으니 우리 집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난 어릴적부터 호떡보다는 핫도그를 좋아했었는데, 일단 호떡은 성급하게 덥썩 물다간 속에 들어있는 꿀물(?)이 터져나와 입 안에 잔뜩 화상을 입힐 가능성이 많았는데다가(실제로 그런 경험을 많이 했었고), 얇은 종이한장에 의지한 채 먹어야 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손이 더러워지거나 옷이 더러워질 가능성도 있었고, 결정적으로 어릴 적부터 단 것을 싫어했었던지라.. 호떡보다는 항상 핫도그를 선호했었다.

그 핫도그.. 전형적인 한국식 핫도그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이 기억된다. 일단 생선 찌끄러기와 밀가루를 빚어서 만든 분홍색 소시지가 있다. 돼지뼈도 같이 섞어 만들기 떄문에 가끔 씹다보면 덜 분쇄된 뼈가루가 씹히기도 한다. 그게 흔히 <프랑크 소시지>라고 하는 형태로 시장에 출시되었었는데, 그게 업소용으로 별도로 많이 포장되어 나오기도 했었다. 일단 그걸 나무젓가락 반쪽에 끼워 놓는다.(아마도 이 작업은 집에서 해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후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 소금 등을 섞어 만든 반죽을 따로 만든 후, 나무젓가락에 끼운 소시지에 반죽을 한겹 입힌 후 초벌로 튀겨낸다. 그럼 얄팍한 핫도그 몸통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 다시 한번 반죽을 입힌 후 빵가루를 한번 두르고 재벌 튀겨내는 것이다. 이 당시에는 워낙 핫도그 집이 많아서 그런지 핫도그 튀김남비에는 나무젓가락을 꽂을 수 있도록 가장자리에 물림쇠가 있어서 그곳에 끼운 후 1분정도 튀겨내면 바삭한 핫도그가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기름을 툭툭 털어낸 후 빨간 케첩을 휘두르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앞에서 지켜보고 있노라면 입에 침이 안 고일 수가 없고, 시선은 핫도그에 고정된 채 화석처럼 서있게 된다.

한국에서 비일비재한 일이지만, 쓰던 기름을 몇 번씩 재탕하는 동안 기름이 변질되거나 반죽이 상하기도 해서, 이걸 사먹은 아이들이 식중독에 걸리기도 했고.. 덩달아 핫도그라는 것 자체가 불량식품으로 오도되기도 했었다. 뭐.. 그렇지만 출국하기 얼마 전에도 종로통 거리나 초등학교 주변에서 300원 ~ 500원 가격으로 판매되는 걸 보고 왔으니, 진정으로 맛이 있는 건 몇 세대를 거치면서도 꾸준히 인기를 얻는 법인가 보다(떡볶이나 짜장면으로 보라!). 최근에 와서는 빵가루 대신에 감자 덩어리를 두른다거나 다른 음식과 퓨전도 되기도 하는 걸 보면, 여하튼 한국에서의 핫도그는 그 나름대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어쩄든, 당시에는 엄마 손을 붙들고 핫도그 하나를 얻어 먹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었다. 당시 핫도그 가격이 하나에 50원.. 게다가 집에 손님이 오셔서 용돈하라고 100원짜리 하나를 받게 되거나,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신 날이면(이를테면 빨래를 하시다가 아버지 바지 주머니에서 돈이 나왔을 때라든가), 핫도그 두 개를 사서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집으로 오게 된다. 그 땐 정말… 온 세상이 내 것이 된 것마냥, 내 남은 인생에서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으랴..하는 표정을 짓게 된다. 살아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마웠고, 총총 뛰어다니는 참새들에게, 길 가의 이름모를 돌들에게 조차 친절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하나는 한 손에 굳게 잡아 두고, 비교적 못생긴 놈을 먼저 먹게 된다. (나는 전형적으로 맛없는 걸 먼저 먹는 타입이다) 먼저 몸통에 둘러진 케첩을 혓바닥으로 조심스럽게 핥아 먹다가 튀김 빵 부분을 소시지가 다칠세라 조심스럽게 뜯어 먹는다. 이 대목에선 어른들은 항상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을 짓거나 한마디를 한다. 지금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긴 한다. 소스와 빵, 소시지를 따로 먼저 먹다니!! 마치 햄버거를 먹을 때 캐첩과 야채와 빵과 패티를 따로 먹는 격 아닌가.. 하지만, 어린 시절일수록 자기만의 원칙을 지키고 싶어하는 법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원칙이 있었다. 길을 걸을 때 보도 블록의 금을 밟지 않는다든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반드시 허리를 숙인채 잔디밭으로 뛰어가야 한다든지, 인도 가장자리로 조심스럽게 걸어간다든지, 요구르트를 마실 때는 반드시 플라스틱 병 아랫쪽을 이빨로 물어뜯어서 먹어야 한다든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하나를 조심스럽게 먹으면서도 항상 온전한 다른 하나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온전한 핫도그가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이미 케첩은 말라 붙게되고 핫도그 역시 식어서 김이 빠져 버리지만.. 옆에서 어른들은 따뜻할 때 빨리 먹으라고 성화를 부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멀쩡한 핫도그를 손에 들고 있는 순간이 먹을 때보다 더 기쁜 것이다. 어쩌면 먹는 순간에도 핫도그 맛에 대한 만족함보다는 한 입씩 베어낼 때마다 줄어드는 핫도그가 아쉬웠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항상 못생기고 맛없는 것부터 먹고, 알맹이보다는 껍데기부터 먹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불우한 어린시절 들추기로 빠지는 걸까?) 어쨌건 이렇게 먹다보면 나무젓가락에 끼워진 볼품없는 소시지 하나가 달랑 남게 된다. 아무런 양념도 없고 식어빠진 소시지에 불과하다. 하지만, 실제 먹고있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쫄다구들을 죄다 물리친 후 나쁜놈 대장과 맞장 뜨기 직전의 긴장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 역시 천천히.. 꼭꼭 씹어서… 합성 조미료의 풍미를 입안 가득히 느끼면서 목구멍 속으로 삼켜버린다. 여기까지가 한국식 핫도그를 먹는 방법이다.(사족을 달자면.. 그 한 손에 고이 모셔두었던 핫도그는, 대개의 경우 불의의 사고에 의해 땅에 떨어지고 만다.. 정말이지..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든다.)

자라면서 어느 순간부터 핫도그를 먹는 일이 없어졌다. 진학을 위한 공부가 힘들어지면서 삶이 피곤해지면서 그렇게 된건지.. 아니면 핫도그 집이 점점 사라진 것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실제로 불량식품 파동 후 핫도그 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대신 전철 플랫폼에 커피자판기 마냥 핫도그 자판기가 생겼다. 웩! 그 말도 안되는 맛이라니.. 핫도그의 모습만 하고 있으면 무조건 숭배하던 어린 시절조차도 도무지 그걸 먹을 수는 없었다. 핫도그 튀김빵이 습기로 축축해진 것을 전기로 뜨뜻하게 데워서 먹는다고 상상하면 될 듯..). 그것도 아니면, 한창 빨리 어른이 되고 싶던 시절에, 더 이상 핫도그를 먹으면 왠지 남들에게 유치해보일 수 있다고 스스로 판단을 내려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빵집에 가더라도 이제 더 이상 고로깨를 집어들지 않게 되었고, 신발이나 옷도 브랜드를 외우기 시작할 나이였다. 간혹 핫도그를 먹을 일이 있어도 여지없이 소스와 튀김 빵과 소시지를 한 입에 넣어 씩씩하게 먹게 되었다. 더 이상 핫도그는 나의 보물이 아니었고, 먹고 싶다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간식에 불과하게 되었다. 삶이 풍요해져서 그렇게 된 걸까? 아니면 이제 여간해서는 쉽게 감동을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걸까..

내가 다시 핫도그에 열중하게 된 것은 아내와 같이 세계 여행을 하던 때부터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체스판이나 몇 가지 기념품 들을 사지말고 밥이나 꼬박꼬박 번듯하게 챙겨먹고 다닐걸.. 싶을 정도로 당시에는 배고픈 배낭여행자 흉내를 내고 다녔는데, 빠리에서 프라하로 가던 도중 프랑크푸르트를 잠시 경유할 기회가 있었다. 오랜 기차여행으로 출출하던 차에 역 대합실 작은 부스에서 핫도그를 팔고 있었는데, 그 때의 감동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쫄깃하고 담백한 하드롤 빵에 역시나 쫄깃하고 짭짜름한 <크라카우어>라는 독일식 소시지가 머스타드와 달콤한 피클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너무도 훌륭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한국 핫도그나 맥도날드에서 파는 미국식 핫도그 모두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 때 이후로 핫도그라는 음식 자체에 다시금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 애초에 소시지를 먹기 위해서, 구운 소시지를 쉽게 집기 위해서 빵을 사용했을테고, 여기에 각종 렐리쉬나 채소, 소스를 넣어 같이 먹는 것으로 점차 발전했을텐데, 이런 단순한 음식일수록 다양한 변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더욱 매력있게 느껴졌다. 프라하에서도 핫도그가 대단히 보편적인 음식인데, 여기서 핫도그를 주문하면 제법 바삭하게 구운 핫도그 빵을 느닷없이 꼬챙이에 세로로 푹 꽂아서 구멍을 낸다. 그런 후 이 구멍에 자신이 원하는 소스를 담은 후 미리 익혀진 소시지를 꽂아서 먹게된다. 절대 손에 소스가 묻을 일이 없고,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아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나름대로 편리한 방법이었지만, 일단 소시지 자체가 <크라카우어>에 비해 인상적이지 못했고, 지나친 편의성이 핫도그를 먹는 풍미를 죽이고 있는 것 같아 나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여기와서도 핫도그를 많이 먹게 된다. 우선 소시지 가격은 한국에 비해 그리 싼 편이 아니지만, 일단 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라서 그런지 다양한 소시지를 맛볼 수 있어서 좋고, 무엇보다 거창하게 요리할 필요없이 식사준비 및 뒷처리가 간단한 것이 나에겐 매력적이다. 게다가 보기보다는 렐리쉬와 주스와 같이 먹으면 나름대로 필요한 영양소를 두루두루 섭취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 이렇게 먹다 보니까.. 어릴 적 생각도 나고 그런다. 그 때, 핫도그 하나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떄가 생각이 난다. 그 때에 비추어 보면, 이렇게 핫도그 빵과 소시지를 냉장고에 챙겨두고,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지금 내 생활에 대해 웃음짓게 된다. 그래.. 나를 감동시킬 수 있는 건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주변에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찾을 때마다, 잊지말고 꼬박꼬박, 감동해줘야겠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