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관한 기억

내가 처음 대기업…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 다닌 경험은 2번 정도.. 처음에는 <영프로덕션>이라고 해서 계몽사 계열의 애니메이션 회사에 다닌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지 모르지만, 당시 계몽사는 어린이 출판계의 베스트 셀러일 뿐만 아니라, 영실업과 같은 유명 장난감 회사도 거느리고 있었고, EMI와 같은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과도 자매결연을 가지고 있었는데, 1995년 당시 범국가적인 애니메이션에 대한 관심도 증가와 바야흐로 종합유선방송 시대가 되어 어린이 대상의 TV컨텐츠를 보유하기 위해 <영프로덕션>을 출범하였다. (하지만 이O형과 같은 사기꾼에게 말려서 “헝그리 베스트 5” 같은 뻘짓거리만 하고 망했지만) 나름대로 촉망받는 학생사원이었던 덕택에 <방위산업 근무>니 뭐니 하는 사탕발림도 듣긴했지만, 당시 나로서는 대기업 생활에 너무도 질력이 난 상태였고, 게다가 진정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평범한 경험을 거쳐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던 터라 1년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그리고 또 1년 후에 IMF 체제 하에서 방만한 2세 경영 때문에 그 큰 계몽사는 어이없이 망해버렸다. 만일 방위산업 근무를 했다면 회사가 망한 다음에 또 입대를 해야했을지도 … 하긴 26개월간 뺑이 치고 나온 다음 작가적 재능이 없음을 깨달은 나도 뭐 뾰족히 나은 게 없지만)

1년 가까운 대기업 생활에서 가장 한심했던 것은, 정말이지 별에 별 쓸데없는 짓거리들을 하느라고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잔업 한번 하려고 해도 3종류가 넘는 잔업신고서를 작성해야 하고, 아침에 출근하면 출근부도 찍어야 하고… 회식이나 단합대회 역시 허망하기 짝이없이 형식적인 것들 뿐이었으니.. 당연히 이렇게 형식과 절차를 밟아 일을 하자면 속도가 느려질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니 대기업을 공룡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가뜩이나 애니메이션 제작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걸로 악명이 높은데.. 이유는 ?? 딴 거 없다. 할 일 없는 보직들이, 일 안하고 제 밥통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할 일이 없으니까 관리, 감독만 하려 하고, 그것도 쉽게 하려고 문서 종류를 늘이는 것이다. 게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근본적으로 사태를 직면할 생각은 없고 어떻게든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만 하니.. 지금 한국에서의 삼성의 정치자금문제도 전혀 놀랍지 않다.

<영 프로덕션>을 나와 새로 들어 간 곳은 더 험악한 대기업인 <제일제당> 계열의 미디어 회사 이었는데, 당시 <제일제당>은 극장 체인을 건설하는 등 미디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한편 스타 TV연출자 – 작가 콤비였던 <송지나>와 <김종학>을 등용해서 각각 이름에 들어간 이니셜 J를 써서 을 만든 것이었다. 나름대로 <송지나>작가에 대한 호감이 있었던 지라, 다른 대기업과는 전혀 다르겠지..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고, 물론 조금이라도 귀찮게 하면 당장이라도 달아나기 위해 <계약직>이라는 단서를 붙혀서 일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회사의 실체를 알기 전에 나는 입대를 해버렸고, 역시 최민수 주연, 이민용 감독(개 같은 날의 오후)의 <인샬라>라는 영화의 참패 후 그 회사 역시 신속하게 정리 되었다.

아… 그러고 보니 대기업과 비슷한 경험을 한번 더 한 적이 있기는 하다. 바로 춘천시에서 근무한 경험인데, 오…. 정말 내 사회경력 중에서 최악의 경험이었다. 공무원 조직의 서류작업은 그 전에 다녔던 대기업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고, 군대 행정반보다 더 지겨웠다. 차라리 군대에서는 각 예하부대에 개별 지휘관이 있고, 따라서 갓 단 소위라고 소대장이 되면 자기만의 지휘권이나 직권이라는게 있었는데, 공무원들은 누구 하나 알아서 결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자기 몸 보신을 위해 보고에만 신경을 쓰는 것이다. 당연히 일보다 보고서 만드는 것에 시간이 2배 이상 걸리고, 결제 받기 위해서 서너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다. 무엇보다 끔찍했던 것은, 모든 일을 정치적으로 해결하려는 공무원들의 자세다. 일을 하나 발주하려고 해도 (지역표를 의식해서) 지역업체에 일을 줘야 하고, 무슨 선발 같은 것을 할라 치더라도 그 대상자의 배경을 최초로 검토를 한다. 왜냐구? 그 배경이 빠방하면 나중에 사고가 나더라도 “검증”을 거쳤다는 변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만일 무슨 잘못이 저질러 졌다고 하더라도 조인트를 까고 뒷통수를 후려칠 지언정, 사고 수습에 있어서는 눈 부신 단결력을 발휘해서 내 식구 감싸기에 나서는 점이었다. 기가 막힌 <우리가 남이가>이념은 사고의 원인을 밝히고 예방하기 보다는 언제나 없던 일인 것처럼 은폐하기 급급했다. 정말이지 30년 가까이 살면서 느꼈던 한국사회의 병폐를 미니시리즈로 보는 기분이었고, 나름대로 이민이라고 생각했던 춘천생활을 그렇게 접고 결국에는 해외이민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렇게도 악몽과 같았던 대기업 생활을 기껏 해외로 도망와서 다시 생각하고 있던 것은 나로서도 의외였다. 생리적인 부적응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 자신의 아이디어가 의외로 시장에 대해 선진적이라는 것을 발견한 후일지도 모른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3~4 년 후에 시장에서 현실화되는 것을 보고는, 만일 내가 자금력을 받쳐줄 수 있는 대기업에 있다면, 보다 쉽게 내 창의력으로 시장에 공헌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소박한 바램 때문이었지만.. 사실, 웃기는 얘기다.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창의력을 말살하는 대기업에 들어갈 생각을 하다니, 만일 대기업에서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그렇게 쉽게 받아주었다면, 벤처열풍이 불자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 직원들이 죄다들 자기가 몸 담던 안정된 회사에서 뛰쳐나올 일이 없지 않은가??

것보다 더 정확한 이유는 바로 이민 생활이라는 점에 있다. 한국에서야 재야에서 은둔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도 느끼고 자족하며 살 수 있었지만, 여기와서 그렇게 살려니 스스로에게 “능력이 부족해서 주류사회에 못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사실, 이 나라의 주류 사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장애요소가 너무나 많다. 일단 의사소통 능력이 첫번째다. 내가 아무리 발악을 하더라도 영어권자와 같이 살면서 연습하지 않는 한 어느 한계 이상으로는 성장을 못할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이곳에서의 인맥이 있다. 이곳에서는 의대에서 학생을 새로 뽑을 때에도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야 갈 수가 있다. 다시 말해 지들끼리 그냥 계속 해먹는 것이다. 이런 어이없는 신분의 세습은 한국보다 더 심각하지만, 그 알량한 사회안전장치 때문에 그래도 사회가 불만없이 굴러간다. 이렇듯 주류로의 진출에 대한 벽이 두텁기 때문에 그 누구도 도전해볼 생각을 하지 못한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더더욱 그런 모험을 할 수가 없다. 그냥 어렵게 돈을 구해서 소박하게라도 장사를 시작하거나, 것도 아니면 적응을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이곳의 현지 회사에서 일을 하는 한국 사람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그러다 보니까 나와 같은 돈 없는 한국계 신규 이민자가 현지 회사에 들어가기가 더더욱 힘들어진다.

어쩌면, 땡전 한 푼없이 맨손만 가지고 뛰어든 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우리 둘 다 돈을 빌리거나 하는 일을 질색을 하니 ,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 없이 머리가 부서져라 구직활동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한인 비즈니스에 취직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그렇게 되면 이렇게 가족과 친구를 등지고 여기까지 온 이유에 대해 회의가 들 것 같았다. 언젠가… 정말 인생이 피곤해지면 그 때가서 좀 더 쉬운 길을 찾더라도, 일단은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최대한 시험해 보고 싶었다.

월요일부터 나름대로 대기업스러운 곳에서 연수를 시작한다. <런던드럭 London Drugs>(http://www.londondrugs.com)이라고 .. 까르푸와 좀 비슷한 개념인데, 일단 그렇게 세계적인 규모의 대기업은 아니고 캐나다에만 있는 기업이다. 게다가 농산물은 취급하지 않으니 <하이마트> 규모의 슈퍼마켓 체인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80년대 초반 슈퍼의 전성기때, 럭키 슈퍼나 미도파 슈퍼 체인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런 곳에서 컴퓨터 수리 기사로 일하게 된다. 지난번 미국 컴퓨터 기사 자격증(A+ Certification)을 취득한 것이 이렇게 신속하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뭐 사실… 어쩌면 들어가는 것은 별 문제가 아닐지 모르겠다. 동료들과 영어로 농담 한마디 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민 1세대로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보다 관건이 아닐까?? 어찌 되었건… 나에게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일단 나중에 어떤 다른 일을 하게 될지라도, 이곳에서의 경력은 동네 컴퓨터 가게에서 일한 경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신이 나기 보다는 좀 막막하고 두렵다. 과연 잘 적응 할 수 있을지… 그것도 내 인생 최초로 넥타이 매는 직장에서 버틸 수 있을지.. 그래도 뭐… 맨손으로 이민와서 2년을 어떻게 어떻게 살아왔는데, 지금은 처음 보다 이 사회에 대해 더 많이 아는데, 뭐… 좀 낫겠지.

보영 (2005-08-07 06:10:06)
축하할 일이 또 생겻네요~ 히히히

정명 (2005-08-07 21:12:53)
도전!!! 잘 될꺼야. 예감이 좋다.

한솔 (2005-08-09 06:41:39)
1년만 잘 버티게나…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