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계획

새해가 되면서 목표라고 세운 것이 있다면 하나는 한국에 꼭 갔다 오자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돈을 많이 벌자는 거였다. 돈 많이 벌겠다고 목표를 세운다고 해서 그렇게 다 이루어진다면 누가 로또를 사겠냐마는… 어찌되었건, 이민온지 3년… 좌충우돌해가면서 캐내디언 사회에 나름대로 안정되게 자리를 잡고 나니 왠지 모를 허무감이 생기면서, 결국 돈이 있어야 인간이 착하게 살 수 있다는 논리에 천착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은행을 털거나, 다른 누군가를 속여가면서 돈을 쓸어모을 재주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조금만 더 비겁하게 살고.. 조금만 덜 고집을 부리면 왠지 예전보다는 돈이 많이 모일 듯 싶었다. 그래서 멀쩡하게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는 선배가 하는 조기유학 / 영어학원 사업에 뛰어들어 볼까…도 생각했었고, 새로 바뀌는 대입전형에 맞추어 논술학원을 해볼까도 생각했었다. 물론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누가 건물 내주고 책상 사다 날라주고, 학생들 모아주진 않겠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로는 선배의 사업이 생각보다 너무 잘 되고 있고 또 더 잘 될 가능성도 충분히 보이기 때문도 있었지만,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슬슬 지겨워 진 이유도 있다. 하루종일 허무맹랑한 소비자 불평을 듣고, 말도 안되는 회사 방침을 따라 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치면서 ‘맞아!! 내가 이래서 대기업을 싫어했던 거여’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 일을 그만둬도 먹고 살 수 있을까..하는 계산도 동시에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성탄절, 연말 기간 등을 지나서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자 “한국에 다녀와야 하겠다!!”라는 나름대로의 다짐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 동안 한국에 가지 않았던 것은 워낙 바쁘고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아직 뭔가 해놓은 것이 없어서 가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마치, “엄니 지가 서울서 성공해서 돌아올 것이구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부모형제를 등지고 떠나왔으면, 벤츠나 그랜저는 몰고 돌아가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번듯한 직장 명함은 달고 가야겠다는 고집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명색이 직장인인게다!! 그리고 작년 한 해 동안 항상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태연자약하게 무시하고 줄기차게 보아 온 한국 드라마와 영화들이 가슴에 불을 질렀다. ‘저 인간들처럼 노래방에 가서 노래 부르고 싶고, 길거리에서 순대, 떡볶이도 사먹고 싶고, 포장마차에 가서 쏘주에 꼼장어도 먹고 싶고… 대형 서점에 가 눌러 앉아서 한글로 된 책들을 읽고 싶다는 바램이 가득해 있었다. 이런 향수병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덩치가 커져서 이젠 안가면 안될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가려고 하니까.. 겁이 덜컥 났다. 생각보다 휴가를 적게 얻은 탓도 있고, 고 며칠을 갔다 오려고 비싼 비행기 삯을 쓰기 싫은 이유도 있었지만, 또 한번 가족들과 이별을 해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아팠다. 다시 한번 공항에서 가족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군대에 갔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가면 못 돌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한국에서 35살인 내가 새로 직장을 구할 확률은 로또에 5주 연속 당첨될 확률보다 낮고, 35살에 여자인 아내가 직장을 구할 확률은 화성에서 별똥별이 떨어져 종로 한복판에 지나가던 시베리안 호랑이의 뒷통수를 때리는 것을 50m 전방에서 볼 확률 정도 밖에 되지 않지만, 그리고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왠지 한국에 지금 들어가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족들과 같이 살게 되지 않을까 겁이 났다. 그래서 나름대로 타협한 것이… 한국에는 캐나다 국적을 얻고 나서 가자(그럼 나오기 싫어도 6개월 비자 만료되면 나와야 할 테니).. 일단 이번 휴가에는 가까운 곳으로 가서 쉬었다가 오자..는 것이었다(가서 한 고생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안 하려고 함).

하지만 갔다 오고 나서도 마음이 휑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소주를 마시고 나도, 사실 내가 원했던 것은 소주가 아니라 친구들과 밤새 부어라 마셔라 놀던 그 시절이었고, 한국 노래를 따라 불러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 노래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 뿐이었다. 얼마 전 갑자기 회가 동해서 갈비찜을 했는데, 도무지 예전에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그 갈비찜 맛이 나질 않는 것이었다. 무슨 양념이 빠졌을까 곰곰이 따져보았는데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갈비찜이 아니라.. 가족들과 투닥거리며 보냈던 명절 분위기였던 것을 깨닫고 갑자기 서글퍼진 적이 있다.

어짜피… 내가 내 의사로 온 곳이고, 내가 싫어서 떠난 한국이다… 일단 온 이상 더 이상 후회는 없다. 누구든지 자신의 20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겠고, 지금 내가 한국에 간다고 해서 20대를 돌려받거나, 뭔가 지금과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뭔가를 돌려받고 싶다면)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

그런 저런 생각이 들어서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왠지 집을 사면 가족들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왠지 한인타운 근처에 집을 사면, 가족들이 이곳에 놀러오더라도 편하게 지내다 가면서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부모님들께서, “나이 들어도 캐나다에서 살만 하구나,,,” 라는 자신감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이곳 나이로 아직 33세. 유목생활을 아예 접은 것은 아니지만… 가족들이 보고 싶어서 정착을 해보려고 한다.

휴가를 갔다 오고 나니 월급을 올려준단다. 그것도 35%에 가까운 파격적인 인상이다. 시간당 만 오천원씩 받게 되었는데 같은 직급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좋은 대우란다. 내가 없는 동안 나의 필요성을 절감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한동안 내가 회사 나오는 것을 고통스러워 했던 것을 알고 당근을 던져 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올해 목표 중에서 하나는 벌써 이뤄진 셈이다. 에휴.. 한국엔 언제 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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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DOG Jr. (2006-02-14 13:37:46)
집 사게 되면 손님용 방을 하나 꾸미렵니다. 주저말고들 놀러오십쇼.. 숙식제공에 가이드 들어갑니다..

보영 (2006-02-15 09:37:10)
한국의 모든 식구들은 제나 언니부부를 응원하고 잇답니다. 화이팅하세요~

경수 (2006-02-15 15:47:38)
대기업이 나름대로 장점도 많지

석진 (2006-02-15 18:37:54)
축하한다 35%인상이라… 집사면 함 가마^^

두성 (2006-02-20 20:06:23)
나도 축하해~ 글고 네가 그렇게 싫어했던 대기업 생활을 나도 이제 정리하려구 생각중이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위하여 ^^;

MADDOG Jr. (2006-02-21 07:36:25)
메라구??? 어찌… 2세를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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