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도리

사실 승진… 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고..

한 달 전쯤, 좀 더 편하게 출근하고 싶어서 집 근처의 지점으로 옮기려고 사전 공작을 했었는데, 그게 어이없이 들키는 바람에 한참동안 이러저리 시달린 적이 있었다. 결국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더 좋은 대우를 약속 받고 ‘대문 앞 직장’의 꿈을 접었었는데.. 어쨌건 승진이라기 보다는, 나간다고 깽판을 치는 못된 깡패같은 직원을 달래기 위한 당근이라고나 할까.. 뭐 다른 직종의 회사라면 이런 협박성 떙깡이 통할리 없겠지만, 소매업이라서 그런지 회사 전체에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라는 철학이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왜.. 손님들 중에서도 깎아달라고 깎아달라고 하는 사람이 결국 몇 푼이라도 이득 보면서 물건을 살 수 있는 나라니까..

이민 오기 전에.. 뭐 애니메이션 일에 남은 미련을 없애는 방안의 하나로, 나름 사업이랍시고 한 적이 있었다. 여기 저기 투자 받을 곳을 알아보러 다니기 위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기획안을 꾸미는 일부터 시작했었는데, 마침 전부터 이런 저런 인연으로 알게 된 뉴욕대 출신 음악 감독과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유학시절부터 한국의 몇몇 잡지에 문화 관련 기고를 해서 나름 그 판에서는 유명했던 양반이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동안 현지 녹음실에 취업을 해서는 나름 좋은 평판을 받으면서 일을 해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고, 자신이 승진에서 누락되는 원인이 백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걸 직접 전해듣고는,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는 것을 택하게 되었다.

이민 온 후에도… 한참 취직이 마음 먹은 대로 안되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동안에, 과연 이민 1세대 한국인 중에서 현지 회사에 취직해서 일 잘 하고 있는 인간들이 과연 있는가?? 라는 의문을 진지하게 가진 적이 있었다. 이곳 저곳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물어봤지만, 밴쿠버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찾기가 힘들었고, 취직이 되더라도 오래 다니기 힘들다라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친구들과 바닥부터 같이 시작해서 경쟁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고, 어찌어찌해서 높은 지위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세금으로 도둑맞는 돈이 장난이 아닌지라(나도 작년에 천만원돈을 세금으로 내야했다), 조금이라도 자기 재능을 (혹은 재산을) 믿는다면 당연히 사업을 시작하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몇 차례에 걸쳐 지적한 바 있다)

그렇게 따지고 보니… 참 내가 아무 대책없이 취직이 되어 가지고.. 1년 넘게 다니고 있고, 1년 반만에 정규직(아주 빠른 케이스라고는 하던데) 자리를 얻었으니.. 것도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던 자리를 땡깡을 부려 얻어냈으니, 참 억세게도 재수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그 사기꾼 같은 이란 컴퓨터 가게를 그만둔 것도 정말 잘한 일이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소매업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남아 있게 된 것도 오히려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워낙에 미친 손님들과 상대하는 일이 잦다 보니, 오히려 내부 결속력이 커지면서 (이런 후진 발음과 엉터리 영어 실력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에게 왕따 안당한 채 잘 다니고 있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다시 한번 하느님, 부처님, 12지신,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관운장, 올림푸스의 제우스 휘하의 신들, 알라신, 그리고 머나먼 행성에서 우릴 지켜보고 있을 외계인 모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정규직이 되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사실 없다. 아직 월급이나 연봉이 아니라 시간당 급여로 받는 것은 여전하지만, 최소 연소득을 보장한다는 점이 다르고, 그 외에 복지혜택이 좀 더 생긴다. 예전처럼 아파서 쉬면 그 날 공치는 것이 아니라 병가로 처리 받을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인간이 워낙에 간사한지라.. 아무리 ‘초지일관’을 다짐해도 참.. 마음먹은 대로 되지가 않는다. 갓 승진을 했다고 윗대가리 들이 잔소리 하는 게 슬슬 같잖게 느껴져 틱틱 개기기 시작하는데, 그럴 때 마다 스스로도 흠칫 놀라기도 한다. 아무리 땡깡과 강짜가 통하는 보직에 있지만.. 좀 더 많이 얻어 가는 직책일 수록 그 만큼 내쳐지기도 쉽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좀 덜 버는 보직이면.. 싼 맛에 달래가며 쓰는 경우라도 있을테니)

아직은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잘 확신이 서지 않는다. 또래나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을 찾기가 쉽지 않아서 그런지.. 그렇다고 모범사례라고 배울 수 있는 케이스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10년 후의 우리 모습이 어떻게 되어 있을 지 전혀 예상이 안간다. 어쩌면 그때도 지금처럼 한국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보면서 포장마차에 쏘주 한잔 빠는 것을 그리워 하고 있을지도..

하지만, 지금의 우리 모습이 3년 전에 우리가 그렇게 가지길 원했던 모습인 것은 맞는 것 같다. 아내는 원하는 직업을 찾아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나 역시 현지 회사에서 나름 인정받으면서 꾸준히 다니고 있다. 작지만 아담한 집도 하나 마련했고, 캐나다 시민권도 받았으며, 곧이어 부모님 초청절차를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예전에 우리가 가졌던 소망이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는 것에 감사함과 행복함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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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영 (2007-03-09 17:59:18)
추카추카!!! 승진턱 얻어먹으러 함 가야하는데…암튼 무쟈게 추카드려요~

딸기아빠 (2007-03-10 01:22:29)
캄사캄사!! 어서 놀러 오세요.^^

MADDOG Jr. (2007-03-11 00:09:05)
^^ 축하해~

MADDOG Jr. (2007-03-11 00:10:07)
이게 어찌된 일이야? 왜 maddog으로 등록되지? 암튼 축하해~ 누나야.

MADDOG Jr. (2007-03-11 11:46:17)
이 화면 우측상단에 보면 “로그아웃”이라고 있는데.. 거길 클릭하면 로그아웃 할 수 있어. 아마도 내가 저번에 가서 자동 로그인 설정 해놓은 후 그냥 온 듯…

두성 (2007-03-22 19:41:27)
인생을 겸손하게 사는것은 미덕이지. 나도 기분이 좋네 그려 ^^

경욱 (2007-03-24 19:07:51)
그러게… 근데 맘대로 잘 안돼네 그려. 워낙에 자가당착 속에 30년 넘게 살아와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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