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전)

1. 예전에.. 91년 92년 즈음에 “리우 회담”이라는 것이 있었다 . 마침.. 세계적인 농산물 무역 협정이었던 “우루과이 라운드” 이후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렸던 환경 관련 세계회담이라 ‘그린 라운드’라고도 불리었었는데, 좌우간 회담의 의제는 전세계 산소 공급의 30%이상을 담당하고 있었던 아마존 강 유역의 열대림 보호로 집중되었다.

브라질 입장으로는 후진국을서 어떻게든 국가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브라질 열대림을 희생하겠다는 것이었고, 이미 자기 나라 공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일찌감치 지구 환경 훼손에 압장 섰던 선진국들은 절대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자국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살림에 잔소리를 늘어놓는 선진국들의 행태가 괘씸하기 그지 없었지만… 나로서는 그렇다고, 브라질의 공업 발전을 위해 그 나무들을 베어내는 것을 찬성하기도 어려운 입장이었다.

2. 밴쿠버에는 그 동안 서부 캐나다를 중심으로 한 독점적인 한인 A 유통체인이 있었다. 언제 생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암튼 “유통기한을 지워내는 전문 부서가 있다”, “김치를 절일 때 오랫동안 싱싱하라고 락스를 사용한다”, “지역 농산물 생산자들에게 부당한 거래를 요구한다”, “노동조건이 열악하다” 등등 별별 루머가 있었고, 종종 동네 한국 슈퍼마켓의 생존권을 위협했지만, 그래도 한동안 절대적인 독점 지위를 누렸었다.

그러던 어느날, 2004년 미서부에서 승승장구하던 유통자본이 A 슈퍼 바로 건너편에 더 웅장한 B슈퍼를 만들었다. 품질도 훨씬 좋았고, 상품 종류로 다양했으며, 들리는 말에 의하면 노동조건 및 종업원 복지도 훨씬 좋았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 현지 자본인 A슈퍼가 미국 자본인 B슈퍼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고 걱정하기도 했지만, 신선한 품질과 파격적인 할인 공세에 한인 소비자들은 모두 B 슈퍼에 몰렸으며, A 슈퍼에 일하던 많은 인력들이 좋은 대우를 받고 B 슈퍼로 건너갔다.

이러저러한 가격할인과 사은품 경쟁을 마치고, 지금은 두 슈퍼가 어느 정도 시장을 안정적으로 나눠먹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B슈퍼는 계속해서 활기차게 지점망을 넓히고 있고, A슈퍼는 있던 지점망을 줄여나가고 있다. 좌우간.. 그 둘의 피바람나는 경쟁에, 동네에 조그만 한인 슈퍼들만 죽을 쑤게된 반면, 당장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좋은 노동 조건이 보편화되고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고 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나쁠 것이 없었다. 솔직히 나로서는 더 잘된 일이라 생각한다.

3. 우리가 1년간 살았었던 보웬섬에도 개발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보웬섬 남쪽의 굉장한 절경이 포함된 부지를 소유하고 있는 부자가, 그 부분을 리조트로 개발해서 섬경제를 살리겠다고 하자, 대다수의 보웬 사람들이 들고 일어서서 자연훼손이라면서 반대를 했다. 그러자 그 부자 아저씨는 반은 시민 공원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즐겁게 놀 수 있도록 허용하고, 다른 반은 리조트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했으나, 이 역시 많은 반대에 부딪혀 결국은 유야무야 되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개발을 반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동안 보웬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자신의 지위를 어느 정도 구축한 사람들이다. 지금도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데, 굳이 외지인들을 들이면서까지 섬이 번잡스럽게 되는 것이 자신들로써는 용납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안그래도 섬에 식수가 모잘라서 난리인데 말이다.

반면… 역시 보웬에서 처음 정착하려고 이리 저리 잡일이나 하고 부잣집 가정부를 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번듯한 일자리가 생길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비단 새로 이사온 사람들 뿐아니라도, 보웬에서 몇십년간 살아오면서도 아무 희망 없이 동네 구석에서 공병이나 줍고, 대마초나 피우며 사는 사람들에게, 남들 부럽지 않게 일하고 세금내면서 떳떳이 살 수 있는 기회일 수도 있다. 이 역시 솔직히 나로서는 어느 편에 서야 할지 모를 일이다.

4. 부끄러운 얘기지만, 입대영장을 받아놓고 카투사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다. 시험을 봤었는지 아닌지 잘 기억이 안나지만, 아무튼 그걸 포기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동안 항상 존경해왔고, 내가 하는 일을 항상 적극 지지해 주시던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그런 시시한 짓 하지 마라”고 야단을 치셔서 그랬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일빵빵 땅개로 가서 그야말로 개고생하면서, 내 인생의 가장 황금같은 2년을 날리고 왔다.

돈 없고 빽 없이, 맨 땅에 헤딩으로 군에 들어가야 하는 입장에서, 솔직히 조금이라도 편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군 복무 기간을 헛되이 날리고 싶지 않았다. 영어라도 배워서 나오고 싶었다. 그게 아무리 침략군의 졸병으로 들어가는 거라도 말이다. 한국군에서 미군 만큼 대우를 해준다면.. 누가 쪽팔리게 미군에 들어가겠다고 하겠는지..

5. FTA가 타결되었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분신까지 하면서 아직까지 결사 반대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노무현 정부 최고의 성과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FTA를 통한 장미빛 미래든, 아니면 노동자 / 농민 / 빈민 몰락이든.. 그 어느 쪽의 입장도 한심스러울 정도로 먼나라 이야기 같았다.

FTA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관심있다”와 “관심없다”. 그 “관심있다” 역시 두 가지 “결사반대”와 “불가피”로 나뉘고, 그 “불가피” 입장에 선 사람들이, 이른바 정부 대표들로서. 어떻게 해야 굴욕적인 협상을 하지 않고 한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노력해온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한국의 이익이란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파는 대기업의 이익을 의미한다.

가만있자.. 그게 과연 대기업의 이익 뿐인가? 우린 쉽게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농민을 죽인다고 말하지만.. 한국 농민의 수와 대기업 및 산하 기업들의 종업원 수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많을지 잘 모르겠다. 단지.. 수적인 우열만이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청년실업이 끝도 없이 증가하고, 취업고민 끝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종종 나타나는 상황에는……

FTA의 핵심은 결국 시장 개방이다. 농업이 되었든 금융이나 법률 서비스가 되었든 간에, 자국의 상품을 다른 나라 시장에 아무런 제제없이 팔 수 있도록 하는 것이 FTA의 목적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장 경제에서 경쟁력이란 품질과 함께 가격 경쟁력이기 때문에, 외국 상품에 비해 경쟁력이 약한 자국의 상품이 시장에서 죽어나가는 것을 수수방관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큰 쟁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피해가 소규모 자영업자 및 국내 중소기업이 아닌, 가진 것이 몸 뿐인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물론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 하에서 노동조건이 보다 빡세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이 꼭 FTA가 타결되어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짜피 시장경제인 이상, 싸고 고품질의 상품이 경쟁력있는 것은 내수시장이든 수출시장이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장 내수 시장이 생산량을 모두 커버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외국 기업과의 경쟁을 회피하기란 어렵다. 전 세계가 사회주의로 바뀌지 않는 이상……

이런 상황에서 당장 뺵 없고 돈 없는 노동자 입장에서 봤을 때, 취업시장 다변화와 고용이 창출되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쉽게 말하자면, 평생을 지지리 궁상으로 살고 있는 농민 아버지 꼴로 더 이상 살기 싫어서, 농삿일 때려 치우고 읍내 맥도날드에서 열심히 일해 점장이 된 덕팔이의 이야기를, 우린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결론은… 난 잘 모르겠다..이다. 심정적으로는 농민들의 결사반대에도 불구하고 FTA를 강행한 노무현 정부에게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지만, 내가 막상 덕팔이의 입장이라도 농삿일 그만두고 맥도날드에 취직했을것 같다. 맥도날드가 표면상으로나마 (다른 한국 기업들은 무시하고 있는) 장애인 고용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 맘 속으로 위안이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나름 FTA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노동자 단체와 진보 단체들의 입장을 살펴보고 싶었지만, FTA에 대한 소규모 자영업자의 이해가 아닌, 노동자들의 입장을 명쾌하게 정리한 내용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각기 다른 소규모 자영업체인 영화인들과 농민의 연대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윗대가리가 누가 되었든… 좀 더 적게 일하면서 높은 수준의 생활을 무릴 수 있게 되기 만을 바랄 뿐이다. 한국과는 달리 북미의 윗대라기들은.. 우리같은 일반 종업원들에 비해 스트레스도 더 받고, 자기 시간 포기해 가면서 더 혹독하게 일하기 때문에.. 그들이 나보다 좀 더 가져가는 것에 대해 불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냥 내가, 내 멋대로, 삶을 즐길 만한 여유를 제공받기 만을 바랄 뿐이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 전선은 FTA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기업가들의 연대 앞에 그어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신자유주의와 FTA는 불가분의 관계이고, 외국 기업들의 국내 진출이, 노동자들에게 마냥 황금의 기회가 되지만은 않겠지만..(실지로, 제3세계 아이들에게 노동기회를 제공하는 “나이키”의 경우, 그들에게 미국 일반 노동자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그 나라의 아이들이 받는 수준의 급여만을 지급한다. 그래서 우린 “나이키’가 아동 착취를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나처럼 머리 나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각 노동자 단체들의 선전 부서에서는 좀 더 명확히 얘기를 해줬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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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2007-04-11 01:29:50)
내가 재미있게 보고 있는 건 (언젠가)일본과 FTA를 하게 되면 이해당사자의 입장이 미국과의 FTA와는 반대로 나타날 거라는 거..

딸기아범 (2007-04-11 12:45:50)
허거거거걱… 살아있었수? 도대체 어떻게 지내는 거여!!

경수 (2007-04-12 18:43:05)
지금 보니 이상하군..남의 집 불구경하듯 재미있게 볼 일은 아닌데…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느라 정신이 없다. 난생 처음 외국회사에 들어와서 영어때문에 생고생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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