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변명 (부제: 알렉스 화분 심는 소리하고 있네)

그는 본래 “사교육” 자체를 비난하거나 그 기능을 부정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공교육 과정을 비판한 것을 비추어 사교육에 대한 태도를 기대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호불호의 문제가 반드시 세트메뉴로 갈 이유는 없고,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돈에 팔려서 자기 주관을 버렸다는 비난을 받아 매우 불쾌하다고 했다. 그는 자기주장의 잦은 공개적 피력이 정치를 하려는 수순으로 오해받는 것에 대해 인격모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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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가 재밌는 연예인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진보적인 의식을 가졌을 거라고 기대한 적이 없어서 실망할 일도 없었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두고…) 그래, 나 역시 기능적인 의미에서 사교육이나 학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 역시 대중에게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태도나 관점을 일일이 간섭받아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나 역시 내가 초코렛이나 단 음식을 싫어한다고 해서 아이스크림 역시 안 먹을 것이라고 기대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
하, 지, 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개인적인 취향”을 넘어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일관성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어떤 문제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그런 비판의 잣대가 (자기 자신을 포함해) 모든 부분에 공평하게 사용될 것이 기대 받는 것도 사실이다. 전자가 결여될 경우 우린 “(정신) 분열적인 태도”라고 하거나 후자가 결여될 경우 “(비열한) 기회주의적인 태도”라고 비난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동성애나 동성동본 연인 등 소수자에게 각별한 시선을 피력해왔던 그가, 이 땅의 힘없는 사람들을 가장 강력하게 소외시키는 사교육의 현실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 준 것(그걸 넘어서 특목고 전문학원 광고를 찍고 광고 모델료를 받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현실에서 “사교육”이란 신분상승을 위해 입시 경쟁력을 갖추는 수단이라는 것은 사교육을 받을 나이가 시작되는 5살 아동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교육의 품질 수준은 시장 하에서 가격 차이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예를 들어, 엄마가 노래방 도우미를 하면서 동네 영어 학원비를 대주는 삼식이와, 방학마다 미국으로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니는 의사 아들 만식이의 사교육 효율이 얼마나 다를 지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빈부격차에 따른 교육수준의 차이가 결국 그 인생을 결정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 사실을 모두가(피교육생조차도) 잘 알고 있다는 점, 경제적 여건 때문에 고품질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그 가족들이 희망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만일 그가 이런 사실조차 미리 인식하지 못한 채 현실 사교육을 옹호했다면 그의 지적 허영이 더 이상 편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만일 그 사실을 알고도 ‘세트메뉴’로 가지 않는 소신을 보여준 것이라면, 부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적극적인 치료를 권한다. 
그리고 자신의 소신은 세트메뉴로 취급받기를 거부하면서, 국회의원직을 쌍스런 직업이라고 싸잡아서 폄하하는 발언을 한다든지, 집을 소유하는 것에 대해 ‘싸잡아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선, 제발 좀 멋지구리한 표현 때문에 공평성을 잃는 일이 이제 그만 없었으면 한다. 자신의 입장이 일반화의 오류를 통해 곡해되는 것을 경고하는 글에서 그런 공격을 남발하다니…… 아쉽지만 그가 원하든 말든, 그 자신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존재고, 그의 발언 하나하나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공평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자신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감추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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