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호기롭게 준비했던 밴쿠버 국제 영화제 관람이 우려곡절 끝에 흐지부지 되자 나름 섭섭했나 보다. 지난 달에는 또 잠시 알바를 뛰는 바람에 휴일에 제대로 쉬지를 못했었는데, 막상 기대했던 영화제 역시 뭐 그리 신통지 않았고.. 겸사겸사 이번 추수감사절 연휴간에 즐길만한 게임을 찾게 되었다. 마침 전세계 PS3 게이머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던 <언차티드2>가 연휴동안 출시된다고 하길래 아무 생각없이 EB Games에 들러 (전혀 어려움 없이) 하나를 집어왔다. 그렇게 게임을 시작하고 딱 10분후….
놀라 자빠져 버렸다.!!
와.. 이건 뭐.. 내가 무슨 게임을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껏 해 본 비디오 게임 중에서 단연 최고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영화적인 연출과 편집. 장면 장면 설계를 정말이지 무진장 신경써서 했는데, 순간순간 느닷없이 덮쳐 오는 오락성이 아주 그만이다. 예를 들어 <스파이더맨 2>를 보면 주인공과 여자 친구가 식당에서 심각한 얘기를 하는 도중에 식당 밖에서 ‘옥토퍼스’가 주인공 커플을 향해 승용차를 집어던지는 장면이 있다. 그냥 말로 하게 되면 “옥토퍼스가 집어던진 승용차가 식당 유리창을 깨고 들어오고 주인공 커플리 가까스로 피한다”라고 단순하게 할 수 있는 장면이 얼마나 실감나고 아슬아슬하게 연출을 했는지
하지만 이게 영화랑은 다르게 게임에서 그대로 구현하는게 어려운 것이, 게임에서는 특히 이런 3인칭 혹은 1인칭 시점 어드벤처 게임에서는 주인공의 시점을 게이머가 맘대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시야 밖에서 튀어 들어오는 충격이라든지, 이렇게 리드미컬한 편집이 쉽지가 않은 법이다. 그래서 몇몇 게임은 어느 장면에서는 이런 주인공 시점 조정을 (다음 장면과의 연결을 위해) 어느 정도 통제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또 움직임이 답답해져 게임의 자유도가 삭감이 된다. 하지만 적어도 <언차티드2>에서는 그걸 너무나 적절하게 배합을 잘해줘서.. 그냥 움직이다보면 자연스럽게 장면설계와 플롯에 따라가게 되어있었다.
게다가… 사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 주는 게임이라면, 사실 영화가 주는 흡입력의 몇 배를 보장하는데, 말 그대로 이건 게이머가 직접 참여하는 interactive drama 아닌가? 난 원래 어떤 공포영화를 봐도 그리 무섭다고 느껴본 적이 없는데, 10여년 전에 처음 해본 <바이오 하자드>에서는 갑자기 튀어나온 개 짖는 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으리라 본다. 그러니까 아직도 이런 좀비 격퇴 액션게임에서 계속 개들이 나오는 법이겠지) 그리고 그 훨씬 전에 <7번째 손님>에서도 역시 비명을 지르는 벽화 등등에서 느꼈던 짜릿한 공포감이란..
게다가 <언차티드 2>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전반적이 분위기를 심각하지 않게 끌고 가는 주인공 케릭터와 대사들이었다. 사실.. 그래픽만 놓고서 본다면 <MGS4>나 <GTA4>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본다. 게다가 두 게임 모두 거의 출시 당시 거의 최고 평점에 달하는 평가를 받은 작품이었고 <GTA4>같은 경우 모든 사람들이 칭송해 마지 않는 오락성과 자유도가 보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GTA>의 경우 왠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재미를 못느꼈다. 특히 작품 전반에 난립하는 무의미한 폭력과 욕자거리들이 끊임없이 거슬렸다. 뭐.. 원래 그런 게임이니, 그래도 남들이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게임인데 한번 참고 적응될 때까지 해볼까나 .. 하다가 결국 1주를 못넘기고 그만두고 팔아버렸다. <MGS4>는 아기자기한 구성과 탁월한 게임성으로 정말 정말 재밌게 했지만.. 그래도 작품 전체가.. “내 한 몸 초개같이 희생해서 PMC로 부터 인류를 구하고 리퀴드에 복수를 하자..”와 같이 너무 심각한 내용이라서, 하면서도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았다. 물론 <MGS>특유의 코미디들이 곳곳에 장치되어 있지만.. 그건 그거고..
그런 면에서 <언차티드 2>를 하는 동안에 계속해서 유쾌한 기분을 만끽하는 것은 게임으로서 당연히 큰 미덕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 3>나 성룡의 <용형호제>혹은 <프로젝트 A>등을 보는 것처럼, 시종일관 <네이선 드레이크>라는 좀도둑이 보물을 훔치는 일들에 재미있게 참여할 수가 있었다. (물론 총질이 좀 지겹기는 했지만서도)
이렇게 얘기는 했지만, 물론 “사실적인 그래픽” 역시 게임에 몰입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요소임에는 틀림없고, <언차티드 2>역시 게임을 “체감”하면서 즐기기에 충분한 그래픽을 제공한다. 특히나 티벳 고원 얼음 계곡을 헤매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게 한기가 쫙 오르는 것이..
실제 게임을 해보면 (카메라 워크니, 등장인물 연기니, 음향효과니 해서)
이렇게 스틸이미지로 보는 것보다 500배는 실감이 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릭터 애니메이션”.. 이제는 왠만한 모션캡쳐 애니메이션 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것 같다. <MGS4>까지만 해도.. 등장인물들의 오버 액션에서 약간 “신파극” 느낌을 받았었는데, 이젠 충분히 2D 애니메이션 수준의 자연스러움은 쫒아온 것 같다. 정말이지 간만에 괜찮은 게임을 만났다. 거의 다 끝냈는데 어서 엔딩보고 <언차티드 1>도 해봐야지. 참고로 영어부제인 “Among thieves”는 게임 중 대사에서도 나오는 “Honor among thieves (도둑들 간의 의리)”에서 나온 말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