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 여행 – 7일차

4월 25일

너무 덥고 건조해서 깼다. 밖에는 비가 계속 쏟아지지만 어젯밤에 추워서 난방을 높이고 잤더니 집 안이 건조해진 모양. 일어나서 난방을 낮추고 환기를 시켰다. 

당장 내일 휴가가 끝난다고 생각하니 왠지 급 우울. 아내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인터넷 뉴스 검색을 하는 도중 또 인터넷이 나갔다. 음. 이 집 인터넷은 좀 과하게 쓴다 싶으면 이렇게 여지 없이 나가는군. 다시 이불 속으로……

건물주가 출근 하기 전에 가서 인터넷 리셋 해달라고 하는 게 어떠냐는 아내 말을 .. 뭐 내일이면 집에 가는데 하면서 가볍게 무시.. 아.. 이게 그리 큰 후환을 몰고 올 줄이야.

아침을 먹지 않고 일단 Target에 가서 딸기 옷과 캠핑용품을 구경하러 나선다. 하지만.. 의외로 Target은 너무나 Zellers와 닮아서 별로 쓸만한 게 없었다. 비는 장대같이 몰아치고.. Walmart로 발길을 돌리려는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일단 근처 주택가로 찾아 가서 공개된 wifi 신호를 찾아 재빨리 지도 검색을 했다. 

Walmart에 가서 벼르던 튼실한 침낭 두 개와 깔판을 집어 왔다. 일단 록키를 가서 딸랑 텐트 하나 가지고 견디더라도 침낭만 튼튼하면 살만 할 것 이다. 이제 집으로 가서 순두부로 아점을 해결할 시간.

짐을 슬슬 실을 준비를 하려고 차를 집 문 앞 근처로 주차하려고 한다. 아… 왜 그랬을까? 멀어봤자 3미터 더 걸으면 되는 것을…. 이 때부터 휴가 마지막 날의 생노가다가 시작되었다. 문 앞에 있는 공간이 알고보니 완전 진흙이었던 것. 게다가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바퀴가 회전할 수록 그 아래로 웅덩이가 만들어진다. 이럴 때는 차를 최대한 저속 기어로 천천히 움직여 헤어 나와야 하는데, 이 차는CVT가 되어 가지고 저속 기어로 움직여도 그에 상응 하는 힘이 없다. 젠장. 몇 차례 앞 뒤로 차를 움직이려 하다보니 차 앞이 쑤욱 가라않았다. 예전에 늪에 빠지면 헤어나오려고 발버둥 질수록 빨리 가라앉는다더니 바로 그 짝이다. 2시간 정도 삽질을 하다가 아무래도 견인을 해야할 것 같아서 어떻게 더 해보겠다는 아내를 뜯어 말려 집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집 앞 마당에서 저 지경이 났다. 30cm도 안빠졌는데 차가 움직이지 못하다니


밥을 앉히고 순두부 찌게를 끓이는 동안 내내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을지 궁리를 했다. 밥이 뜸이 덜 들어 좀 깔깔해도 뭔 맛인지 모르고 일단 주어 삼키며 머리를 쥐어 뜯었다. 건물주 아줌마가 오면 얘길 해봐야겠지만 당장 인터넷이 안되니 연락을 할 수가 없다. 온다 하더라도 만일 그 아줌마가 견인 도구가 없다면, 혹은 로프는 있더라도 우리 차에 맞는 견인 고리가 없다면, 그래서 어쩔수 없이 견인 서비스를 부르려고 해도 만일 늦어서 내일에야 온다고 한다면, 견인이 되더라도 무진장 비싼 요금을 요구한다면, 아… 고민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오늘 따라 왜 인터넷은 안되가지고, 어디든 연락을 할 길이 없다. 얼마전 가족들과 포틀랜드에 놀러와서 차사고가 났던 친구 놈은 보험회사에 건 전화 로밍요금으로 70불이 나왔다고 투덜댄 적이 있었다. .. 아.. 정말.. 로밍만은 하고 싶지 않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나와 나름 생각난 걸 해보기로 한다. 벽돌을 차 아래 깐 다음, 그 위로 리프트 잭을 가지고 차 앞 부분을 올린다. 그리고 바퀴 아래와 진행방향으로 벽돌을 깐다. 일단 차가 탄력만 받으면 이깟 집 앞 진흙밭 쯤 그냥 지나갈 것이다. 정말이지 이건 그냥 집 앞 마당이다. 무슨 산 골도 아니고 눈 밭도 아닌.. 그러나 차가 나오자 마자 진흙에 미끌어져 바로 나무 등걸 가까이에 바짝 머리를 대고 다시 바퀴 아래 웅덩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헬기가 와서 차를 번쩍 들지 않고서야 견인할 방법도 없는 것이다.

차체 아래 흙을 파낸 후 벽돌을 심고 그 위에 잭 리프터로 차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잠시 쉬었다가 이번에는 후진할 수 있도록 앞 바퀴 뒷 부분에 벽돌을 깔아보려고 한다. 다시 흙을 조금 파내고 벽돌을 박고, 잭으로 차를 올리고 그 밑으로 진행 방향으로 흙을 파낸 후 다시 벽돌을 네개 정도 깐다. 허리가 아주 빠지려고 한다. 이번엔 다소 무겁더라도 내가 직접 차를 운전해서 빠져나오게 할 것이다. 마침내 성공… 한다 싶더니.. 1.5미터 정도 뒤로 가서는 다시 얕은 둔턱 때문에 차가 또 헛바퀴 질을 시작하고 또 다시 바퀴 아래 웅덩이가 생기고 차 앞부분이 가라 앉는다. 뭔 놈의 차가 이리 힘이 없나.

이 놈의 노가다는 끝이 없다. 아.. 집에 가고 싶다

그래도 다행히 이제 견인은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만족하면서 일단 벽돌이며 깔판등을 씻어서 원래 자리에 돌려 놓기로 한다. 안그러면 건물주가 와서 기절할지도 모를 일이다. 안쓰던 근육을 갑자기 썼더니 나중에는 벽돌 하나를 들 힘이 없었다. 바지며 신발은 이미 진흙으로 엉망진창이고, 손도 좋게 말하면 머드팩, 실제로는 갓 김매고 온 농부의 손처럼 되어 버렸다. 일단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견인 고리 없이 견인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내는 물 웅덩이를 흙으로 덮어 내기 바쁘다. 힘 낭비하지 말라고 아무리 말려도 듣질 않는다. 뭐든 어떻게 해보려는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웅덩이를 진흙으로 다시 덮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아예 함정을 만들려는 건가?

계속, 문자 그대로, 삽질을 하는 아내를 설득해 그만두게 하고, 어떻게든 건물주 아줌마한테 연락을 하기로 한다. 1 – 2 킬로 내리막길을 따라 걸어내려 가면 있는 커피샵에 공중전화가 있기를 바라며 천천히 걸어가는데 또 비가 쏟아진다. 눈에는 뭔가가 들어가서 계속 침침하고.. 아.. 정말.. 왜 항상 영화 같은 전개가 되어가는지, 근처 이웃집들을 몇 군데 지나면서 결국 Wifi 가 잡히는 것을 발견하고는 Skype이나, TalkaTone 같은 무료 전화 서비스를 시도 해보려고 하는데… 아 쒸.. 뭐 이리 복잡해.. 게다가 인터넷 연결 상태도 왔다갔다 하니.. 에라 젠장.. 그냥 로밍으로 냅다 건물주 아줌마한테 전화를 해버렸다. “우리 차가 지금 집 앞 마당 진흙에 박혀 있는데.. 언제쯤 오니..??” 아..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집 앞 마당에 박혀있다니. 도대체 저게 네 바퀴 달린 차가 맞긴 맞는 거냐?

집에 돌아와 허리를 펴고 눈을 좀 감고 있으려니 건물주 아줌마가 바람 같이 날라와서 우리 차 상태를 보고는 (혹은 죄다 헤집어진 집 앞 마당 상태를 보고는) 경악을 한다. 그리고는 자기 트랙터도 종종 그런 일이 있어서 자기 SUV로 빼낼 때 쓰는  체인을 찾아오겠단다. 아.. 그건 좋은 데 도대체 어디다 연결을 하냐고… 마침 체인을 찾을 수 없어서 동아줄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리고 시끄러운 그 집 개도 같이 나타나서 진흙밭에 뛰어들더니 우리 숙소 안에 까지 들어와 발자국을 남겨 놓고 간다.) 결국 마땅한 연결 고리를 찾을 수가 없어서 보닛에 달린 고리에 연결을 했다. 처음엔 천천히 움직이다가 결국 마침내 해방. 아.. 앓던 이가 빠진 심정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런 견인용으로 고안된 고리가 아닌지라 살짝 휘고 말았다. 때문에 보닛이 닫힐 생각을 안한다 .
또 한번 건물주 아줌마를 찾아가 망치를 빌려 왔다. 당겨서 휘었으니 때려 밀어 넣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차체”라는 것이 그리 말랑말랑한 몸이 아닌지라. 대충 때려서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결국 약간의 상처와 함께 수 십분간 수 차례 망치질을 하고 나서야 보닛이 제대로 닫혔다. 차를 빼려고 할 땐 허리가 빠지는 줄 알겠더니, 이젠 어깨가 빠지는 것 같다. 휴가 말년에 이게 왠 생노가다냐. 아.. 정말 작은 일에 감사하며 살아야지. 아내는 시운전을 해볼겸 기름도 넣고 세차도 하고 오자고 한다 .그러지 머.. 근데 운전은 못해.
세차..$3.75가 붙은 곳으로 들어갔다. 기름을 넣으면 4천원 돈으로 손세차를 하다니.. 이런 호사가 어디있나. 한국에도 이런 서비스는 없을 듯. 이렇게 보면, 미국이란 나라에서 먹고 사는게 뭐든지 싼 건 멕시칸 이민자들이 저임금에 착취당하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진흙 구덩이에서 방금이라도 기어나온 몰골을 한 차에 왁스에 타이어 휠까지 깨끗이 서비스를 받았다. 

너무 힘이 들어 뭔가 밖에서 사먹고 들어올까 하다가.. 집이 난장판인 걸 깨닫고 일찍 들어와 좀 치우면서 김치볶음밥을 해먹기로 한다. 딸기용으로 사둔 ground turkey까지 넣어서 아내가 준비를 하는 동안, 짐을 좀 챙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쳐서.. 아 쒸 내일할래. 애초에 김치볶음밥을 하려고 했던 건, 넉넉히 만들어 내일 차 안에서 간식으로 먹을 주먹밥도 만들자는 요량도 있었는데, 스트레스가 갑자기 풀려서 그런지.. 와.. 그 많은 걸 다 먹어버렸다. 

저 많은 밥을.. 냄비 채 다 먹어버렸다

거의 4인분 정도를 만든 김치볶음밥을 흔적도 안남기고 해취운 후 집 정리를 좀 하다가 씻고 자리에 누웠다. 온몸이 삭신이 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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