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전

그 날 마침 친구들과 1박 여행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10년간 알고 지내던 터라 새삼스레 MT라고 하기도 웃겼지만.. 그냥 그 땐 그렇게 하루 나가서 공기 좋은데 묵으면서 술마시는 일을 통틀어 MT라고 했다. 군복무 후 모두 4학년으로 올라가는 해였으니 앞날이 한창 막막했을 때였다. 지레 겁을 먹고 영어 공부다 시사상식 공부다 하면서 (사실은 그 핑계로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을 때였다. 모처럼 (청평이었나?) 교외로 여행을 나갔건만 우울한 분위기는 지울 수가 없었다. 그걸 핑계삼아 또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밤새 포커를 하고, 아침에 경춘선 상행선을 기다리면서 역 앞에서 콜라(동전을 던지면서 하는 노름)를 했다. 그야 말로 룸펜이었다. 불안하니까 무력해지고, 무력하니까 불안해지는 악순환이었다. 
청평에서 청량리로 청량리에서 동네에 있는 전철역으로 이어지는 긴 열차여행 동안 정신없이 잠을 보충했건만, 쨍한 겨울날 햇빛을 맞으며 역 개찰구를 나올 때에는 아직 비몽사몽이었다. 역 앞 가판대의 스포츠 신문 헤드라인이 눈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사실 그 전엔 김광석이 훌륭한 가수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노찾사와 동물원을 차례로 배신하고 독립한 솔로 가수 정도, 혹은 자기 노래 없이 남의 노래를 다시 불러 앨범을 낸 특이한 가수 정도 (당시 그 정도 되는 가수가 리메이크 앨범을 내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각종 대학 축제 때마다 오고, 끊임없이 소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가수 정도였던 것 같다. 사실 우리끼린노래방에 가도 신해철이나 서태지, 노땅 가수 중에선 이문세를 불렀고, 여자 앞에서 폼을 잴 때는 봄여름가을겨울이나 김민우를 불렀다. 친구들 군대 갈 때에도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를 불렀다. 
그런데 신문 헤드라인의 “김광석 자살”이라는 글자를 보고 나니 정말이지 심장이 뻥 뚫린 것 같았다. 온 몸에서 땀이 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다시 술집으로 발을 옮겼다. 그래야만 했다.
단골 맥주집 테이블에 거의 엎드리다 시피하여 맥주잔을 어루만지며 그의 노래를 한참을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누군가 말을 꺼냈다.. 야.. 우리가 이렇게나 많은 노래를 알고 있었다니.. 우리가 김광석 좋아했었나? 
그리고 나서, 어느 정도 술이 올라서야 알아챘다. 술을 마셔도 외로움이 가시지 않을 때가 되면, 우리도 모르게 항상 그의 노래를 불렀다는 것을. 둔치에서 술을 마시다가 길게 한숨을 쉬면서 검은 하늘을 바라 볼 때에도, 우리도 모르게 그의 노래가 입에서 흘러 나왔다는 사실을. 그렇게 먹먹해진 가슴을 추스려왔다는 사실을.
그리고 16년.. 이제 그 때의 당신보다 훨씬 늙었고, 지구 반대편에서 먹고 살기 바쁘지만
아직 당신과 당신의 노래를 기억합니다

2 thoughts on “16년전

  1. 폴리맘

    저 사실 김광석 예전에 별루였는데…
    나이를 먹다보니 그의 노래가 좋아지더군요;; (삶에 치이다 보니?)
    너무 일찍 간….젊디젊은 나이에….. 왜 그랬을꼬…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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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기아범

      나이 먹고 나서 좋아지는 가수들이 있죠. 이제와 보니 예전 할머니께서 “현철과 벌떼들” 만 좋아하셨던 것이 이해가 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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