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지고 보면 애플 제품의 런칭이나 출시는 항상 당위성이……라기 보다는, 아무튼 그 제품이 나와서 사용될 수 있는 저변환경이 마련 된 후 소개되었다. 그러다 보니 애플의 Innovation은 대개의 경우 시장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팟만 해도 그렇다. 전세계의 음악 소비형태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이 작은 뮤직플레이어는, 사실 기술적으로 봤을 때, 한국, 일본, 중국, 인도와 같은 IT / 제조 강국의 현지제품에 비해 턱없이 늦게 등장했다. 그렇지만, 아이팟이 출시와 동시에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주도했고, Playlist라는 신조어를 일반명사로 만들어버리는 혁신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바로 Itunes 프로그램이었다. 2001년 아이팟을 런칭하기 일년전 중소기업에서 사들인 후 OS10 용으로 출시한 프로그램이, 지금은 애플 전제품의 컨텐츠 관리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아이팟이라는 제품이 처음 나왔을 당시의 편의성이나 품질, 대용량, 그리고 마케팅도 물론 간과해선 안되고, 음악 라이센서들과의 부단한 노력을 거친 계약도 인정해야 하지만, 아이튠즈와 같은 컨텐츠 관리 프로그램을 공짜로 풀기 시작한 것이 바로 애플 제품의 높은 지배력의 저변이 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그래서인지, 이번 MS의 Windows 8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XBOX 라이브 스토어이다)
2007년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도 마찬가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선도했던 이 휴대전화기는 처음 출시되었을 때만 해도 “아이팟 + 휴대폰인데 폴더도 안되서 엄청 크고 ,배터리도 하루면 닳는다..”라는 우려를 들어야했지만, 출시 후 얼마되지 않아서 시장은 폭발했고 곧이어 사람들은 스마트폰이라는 휴대용 단말기에 중독되었다. 이런 혁신을 가능하게 한것은 바로 캘린더나 아이튠과 같은 자체 개발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아무래도 구글이나 AOL과 같은 써드파티와의 관계였다. 구글에서 지원하는 구글맵을 통해 위치정보를 이용한 다양한 스마트폰 사용법이 가능해졌고, 곧이어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네트워크 문화가 스마트폰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따라서 최근 구글과의 악화된 관계는 적어도 당분간은 결코 애플에 득이 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아이패드 역시 비슷한 경우. 2010년 아이패드가 나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이름을 가지고 비웃고, 그냥 큰 아이팟일 뿐이라고 했지만, 아이패드는 결국 태블릿 컴퓨터라는 문화를 새로 만들었다. 그 크기의 적당함으로 인해서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거나 웹서핑을 하고 간단히 게임이나 영화를 즐기는 것에 태블릿 컴퓨터를 활용하지만, 사실 아이패드의 가장 큰 의미는 개개인이 자신만의 스크린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우선 이런 개개인의 스크린을 가족이나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서 대형스크린으로 옮기는 일이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될 텐데, 이는 2007년에 미리 소개한 Apple TV가 담보할 몫이었다.
CD나 DVD 같은 물리적 저장장치를 없애자는 혁명적인 발상으로 시작되었지만, 당시에는 차세대 HD 미디어를 대표할 Bluray와 HD DVD간의 전쟁에 휘말려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주저앉았던 Apple TV는, 한동안 시장에서 고전을 겪었지만, 2010년 아이패드 출시 6개월 정도 지나서 HDD를 없앤 2세대가 나오면서 다시금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현재 Apple TV는 개개인의 스크린인 아이패드와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긴밀한 동지역할을 하는 공공이 즐기는 미디어 허브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개개인의 스크린으로서 아이패드는 결국 사람들간의 소통형식을 근원적으로 다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최근 애플에서 소개하고 집중 투자하는 <쉬리>라는 음성검색 서비스는 어느 순간부터 개인 통번역 서비스로 영역을 확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바벨탑이 무너진 이후 처음으로 인류는 언어소통에 자유롭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지도 모른다.
이렇듯 애플의 신제품 로드맵은 단단한 사전 포석을 그 특징으로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별 거부감없이 Innovation이 시장에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다. 때문에 몇몇 경제전문지에서 예상하는 2013년 애플의 로드맵에 일회용 컴퓨터나 iTV, 혹은 자동차가 포함된 것을 정말 뜬금없다. 물론 제품 시장성을 검토하는 과정으로서 시제품을 만들어보거나 할 수는 있겠지만, 단지 이제껏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만들어서 출시하는 그런 행태는 (최소한 스티브 잡스의) 애플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일회용 컴퓨터를 출시하기 전에 애플에서는 일년전쯤 가전제품 제활용이나 재처리 경로에 대한 확고한 시스템이 만들어질 것이고, 자동차를 출시하기 일년 전쯤에는 사람들의운전과 주차 습관을 바꾸어 버리는 무슨 시스템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 (스티브 잡스의) 애플식 로드맵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런 인프라 형성을 건너뛰고 신제품을 만들어 파는데만 신경을 쓴다면, 애플은 신기술을 개발하고 이름없이 사라져버린 수많은 벤처기업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될지 모른다.
지금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애플의 로드맵은.. 아마도 다시 만나게될 애플식 혁신은 경제부분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페이팔을 인수할지도, 아니면 페이팔과 같은 전자지불 업체를 인수할지도 모르지만, 애플은 지구상에서 버스티켓이나 현금 사용을 없애려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물론 아이폰과, 아이튠즈가 있고, 이번에 새로 소개된 Passbook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후년이면 한국처럼 휴대전화로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일이 전세계 어디서나 개인 휴대폰 하나로 다 사용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