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제가 일을 하는 건물에는 캐나다 연방정부 환경부가 입주해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 종종 정부 환경정책에 대한 항의 시위가 건물에서 벌어지고는 합니다. 굳이 개인 시간을 쪼개 자신의 신념을 보여주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 대해선 어느 정도 존경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그리고 저렇게 불평을 하는 사람들 덕분에 사회가 더 좋은 쪽으로 발전한다는 희망도 있지만, 그래도 가끔 유리창이나 건물 외장 벽, 입구 바닥에 남겨진 낙서를 발견하게 되면, 시설 관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은근히 빡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낙서를 지우는데 제 개인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온전히 국민 세금을 사용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낙서를 하고 가면, 막상 손에 물 적셔 가며 치우는 건 환경정책을 결정 집행하는 관료가 아니라 저 같은 말단 찌끄래기 시설 관리인이라든지, 건물 청소 용역 할머니가 되니까요. (그리고 대리석은 페인트를 흡수하기 때문에 완전히 안 지워집니다 ㅠㅠ)
시위 다음 날 아침 ㅠㅠ
뭐.. 80~90년대 한국에선, 시위가 벌어지면 멀쩡한 보도블록 깨서 돌 던지고, 심하면 파출소 건물에 화염병 던지고 그랬으니, 그런 과격시위에 비하면 대리석 위의 빨간 페인트 정도는 애교로 봐주고 넘어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당시 한국에서도, 사회 변화를 원하지만 폭력적인 시위 방법은 거부했던 사람들이 많았었고, 야학이나 다른 현장 활동과 같은 보이지 않는 헌신을 통해 전반적인 시민사회의 성숙을 이루어 낸 것처럼, 밴쿠버에서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 역시 다양한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몇몇은 건물 벽에 포스터를 붙이고 셀카를 찍어 인스타에 올리는 것에 만족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화물 철로 위에 스크럼을 짜고 누워서 미디어의 주목을 받는 방법도 선택합니다 (물론 이 방법은 결과적으로 출퇴근 대란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환경부 리셉션 사무실로 들어와 포스터를 붙이고 사진을 찍는 환경운동가들
“당신이 얘기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당신의 그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라는 건 사회 활동가들이 종종 부딪히는 반발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언론과 공권력이 모두 내 편이 아닐 경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손, 발 다 묶이고, 입에 재갈을 물린 상태에서, 고개만 끄덕이거나 가로저었다고 해서 그런 식으로 대답하는 건 무례한 행위다라고 훈계하는 건 공정한 처사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어쩔 수 없이 골리앗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해야 했고, 자기 살을 태워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80~90년대 한국에서 강제적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북한과 엮어서 구속 감금하면서 활동가들의 입을 막고 시민들의 귀를 막았다면, 이제는 “플렉스”와 “좋아요”로 손쉽게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TV를 돌리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식’과 ‘코인’으로 돈벼락을 맞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뿐 아니라, 그 돈으로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삶과 출연진들의 부러움을 조명합니다. 10여 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여러 가지 공상만 많았지 그게 내 생활에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해선 아무런 얘기가 없었습니다.
경제 프로그램에서는 단지 삼성전자가 4차 산업혁명을 이용한 새로운 공정의 반도체를 개발하고 새로운 갤럭시 스마트폰에 대한 광고만 넘쳤고, 그러다 보니 모르는새 한국의 고용시장은 완전 양극화되었습니다. 기존의 저임금 노동자들이 플랫폼 노동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동시에 소규모 사업체의 구인란은 더욱 심각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는 캐나다도 마찬가지여서, 현재 중소 규모의 사업체에선 역대 최악의 구인란을 겪고 있습니다.
한국의 저소득층들은 카카오 혹은, 배민과 쿠팡과 같은 대기업과의 하청계약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캐나다의 저소득층들은 우버와 스킵 더 디쉬, 아마존과의 계약으로 가계를 유지하며, 조금이라도 여윳돈이 생기면 다시 삼성, 아마존, 테슬라와 같은 대기업의 주식을 사서 환차익을 기대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극 중 ‘아마존’과 ‘테슬라’를 합쳐 놓은 것과 같은 IT 기업 ‘배쉬(BASH)’의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일자리가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인터뷰는, 단지 SF 영화 각본이라고만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언젠가부터 심각한 거대 담론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쿨하지 않아 보이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30초 내의 웃긴 틱톡 영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좋아요”를 얻는 것만이 사람들 간의 소통의 전부가 된 것도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PC (정치적 올바름)를 내세워 작가의 상상력에 제한을 걸고, 다른 한쪽에서는 조금이라도 심각한 얘기를 하려고 하면 조롱하거나 귀를 닫아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말장난과 가벼운 우스개만이 미덕이 되었고, 당연히 지구 멸망에 대한 경고 따위는 시장에서 소비되지 않게 되어 버린 거죠. 극 중 토크쇼에서 케이트가 비명을 질러대며 우리 모두 죽을 거라고 했을 때, 공포나 패닉과 같은 반응 없이 그냥 조롱거리용 인터넷 밈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섬뜻할 정도로 현실적입니다.
영화에서 랜들이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항상 미치도록 재밌거나 ‘좋아요’를 받을 필요는 없어요. 어쩔 때는 그냥, 다른 사람에게 내 말을 전달하고, 또 그걸 제대로 들어주는 게 필요합니다. (Not everything needs to sound so goddamn clever or charming or likable all the time. Sometimes we need to just be able to say things to one another. We need to hear things).”라고 말하거나, 케이트가 “어쩌면 지구 멸망에 대해서 하는 얘기가 웃기면 안 될지도 모르죠. 어쩌면 충격을 받거나 벌벌 떨어야 하는 이야기여야 할지도 모르죠. (Maybe the destruction of the entire planet isn’t supposed to be fun. Maybe it’s supposed to be terrifying. And unsettling)”라고 한 말은, 바로 감독인 애덤 맥케이가 관객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