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죽을 캠핑

이민 와서 첫 캠핑은 사실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전에 메이플릿지 (Maple Ridge)에 있는 골든이어즈 (Golden Ears) 주립공원 피크닉 장소에서 친구들과 고기를 구워 먹으러 몇 차례 간 적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러면서 그 공원에 캠핑장도 있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다(어떻게 이곳으로 캠핑을 오기로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난다). 텐트를 사고, 침낭을 사고.. 여름부터 캠핑하러 다니자고 아내와 같이 작심을 하고 나서, 연습경기 삼아 가까운 곳에서 1박 하고 오자… 하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형마트에서 새로 산 침낭은 두 개로 나눠서 쓸 수도 있단다. 0도까지 쓸 수 있다니 두 개로 나눠도 각각 영상 5도까지는 쓸 수 있겠지, 설마 그 아래로 떨어지겠어? 생각했는데 너무 안이했다. 보통 산에서는 지상 온도가 영상 5도라 할지라도 지면은 영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캐나다에서 처음 캠핑을 하자니, 캠핑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혹시 주차하고 나서 한참 걸어 올라가야 할지도 모르니 짐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카메라도 안 챙기고.. (그래도 강아지 짐만 해도 하나 가득이 된다). 음식도 저녁에 고기 굽고 아침엔 간단히 라면으로 요기하기로.. 그래도 깔깔거리며 이것저것 쇼핑하고 나서 캠핑장에 도착하고 나니 이미 8시.

4월이라곤 하지만 산속이라서 이미 해가 진 후였다. 게다가 산속의 공기는 장난 아니게 싸늘하다. 캠핑 사이트마다 테이블, 벤치와 모닥불을 피울 수 있는 화로가 비치되어 있지만, 너무 추워 한번 앉아 볼 생각도 못 한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기대어 일단 텐트부터 후딱 친다. 고무망치로 플라스틱 페그를 박고 있자니 팔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지나가던 파크레인저에게 등록을 하고 장작 한 뭉치를 샀다. 한 뭉치에 5불 (2005년 기준 가격으로 2021년엔 13불이 되었다). 근데, 장난 아니게 큰 덩어리 들이다. 게다가 축축하다. 이것들이 인종차별 하나? 아니 어찌 이런 나무를 돈 받고 팔지? 하지만 놀러 와서 쌈질하기 싫다. 아니, 당시엔 영어로 따질 엄두를 못 내고 소심해진 걸지도 모르겠다. 암튼 예쁘게 쌓고 그 아래에 신문지를 뭉쳐둔 후 불을 붙여보지만, 불이 붙을 리가 없다. 입김을 불고 부채질을 해가면서 연기와 씨름을 하지만 도리가 없다. 그나마 불붙이려고 발악을 하다 보니 추위가 좀 가셨다.

지나가던 어느 백인 오지랖 아줌마가 한마디 한다. 

얘. 니들 그렇게 큰 덩어리 나무에 불이 붙겠니? Hatchet으로 잘게 쪼개서 kindling을 만들어 시작해야지. 

Hatchet? Hatchet이 뭔데?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작은 Axe 있잖아..

이날 배운 Hatchet과 kindling 이란 단어는 잊을 수가 없다. (이때부터 장비 수집병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BC 주립공원은 나무를 쪼개서 팔지 않는다는 사실도 뇌리에 박힌다. 

아… 그렇구나. 너넨 그럼 Hatchet이 있어? 좀 빌려줄래?

처음 만난 아시안한테 아는 체했다가 봉변당한 그 아줌마의 뜨악한 표정도 아직 눈에 선하다. 나중에 알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공구는 빌려주는 게 아닌 데다가, 도끼는 원래 남한테 잘 안 빌려주는 거였다. 잘못 쓰면 쉽게 날을 망칠 수도 있고, 흉기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꼭 돌려달라는 신신당부를 듣고 도끼를 빌려왔다. 나무를 바닥에 둔 채 도끼질하면 절대 안 된다. 도끼날 다 망가진다. 밑에 받침목을 두고 해라.. 라는 잔소리는 덤이다. 그래도 덕분에 젓가락 크기로 잘게 쪼개어 불쏘시개를 장만했다. 아.. 드디어 불이 붙는다. 온몸 구석구석에 정체되어 있던 피가 다시 흐르는 기분이다. 오지랖 아줌마들에게 도끼를 돌려주며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 이제 고기를 구워야겠다. 아내는 불이 붙자 식음을 전폐한 채 불놀이에 열중이다. 

몸이 따끈해지고 배가 좀 든든해지자.. 정신이 들기 시작한다. 근데 이렇게 추워서 텐트에서 잠을 어떻게 자지? 일단 많이 먹고 몸을 최대한 뎁혀서 침낭에 들어가기로 한다. 근데 그러기엔 한 뭉치의 땔감은 너무나 금방 다 타버렸다. (보통 주립공원에서 파는 땔감은 마른 장작이면 뭉치당 한 시간, 젖어있다면 뭉치당 2시간 정도 버틴다고 보면 된다. 물론 젖은 나무에 불이 붙을 경우이지만)

씻지도 않고 후다닥 침낭으로 들어갔을 때가 한 10시쯤. 그리고 이때부터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이 시작되었다. 바닥에 이러저러한 매트를 깔아 뒀지만, 아래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내긴 힘들었다. 그리고.. 0도까지 쓸 수 있다는 침낭은… 아마 영하 0.1도부터는 동사할 수 있다는 뜻이었을지도… 처음엔 두 개로 나눠서 씨크하게 반 개씩 쓰던 침낭은, 얼마 안 있어 하나로 합쳐서 덮어쓰게 되었고, 체온을 최대한 유지하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배에 최대한 밀착시키며 바짝 웅크린 채 누었다. 하지만, 너무 추워서 중간중간 깨게 되었는데.. 어떻게든 자야 해! 하면서 잠을 청하다가도, 으아악! 너무 추워!! 하며 깨어나면 이제 15분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절망감이란..

다음 날 일어나자 온몸이 다 아팠다. 너무 추워서 밤새 몸에 힘을 주고 잔 탓이다. 뼈마디, 근육들이 다 굳었다. 그리고 차디찬 신발을 신자니 다시 냉기가 발끝에서부터 온몸에 엄습했다. 아.. 쒸.. 일단은 퇴각. BC 주립공원 캠핑장은 대부분 숲속에 있어서 여름날엔 서늘하지만, 어디서든 햇빛을 받기가 쉽지 않다. 일단 텐트를 걷고 햇볕이 좀 드는 곳을 찾기로 했다. 손가락 마디도 꽁꽁 언 기분이었는지 침낭을 갤 때에도 손이 굽혀지지 않아 고생한다. 일단 차에 쑤셔 놓고 도망가기로

알루엣 (Alouette) 호수 주변에 마련된 피크닉 장소에 일단 자리 잡는다. 피크닉 장소에는 당일치기 소풍을 온 사람들을 위한 테이블 / 벤치와 보트 정박장, 보트 트레일러를 위한 주차시설 등이 있는데, 물론 다 무료다. 2003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자유당 주정부에서 신설한 주립공원 주차요금 같은 것이 있었지만, 이후 몇 차례 스캔들 때문에 자유당 주정부의 재신임이 불확실해지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주립공원 주차요금을 없애는 거였고, 이후 공공복지 강화를 앞세우는 신민당 주정부도 그 정책을 이어받았다.

그 전에 친구들과 몇 번 바비큐 하러 오던 곳이라, 피크닉 장소에 가면 햇볕이 있으리라 확신했다. 아.. 햇님께 감사를. 왠지 광합성이 되는 느낌이다. 혈액 순환도 순환이지만 에너지가 생산되는 느낌. 몸을 좀 녹이고 나서 라면을 끓였다. 왠지 모르지만, 이 이후로도 캐나다에서 캠핑은 항상 고기로 시작해서 라면으로 끝이 났다. 꼬들꼬들한 면발과 얼큰한 국물을 흡입하면서,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침낭부터 하나 더 사기로, 그리고 손도끼도 하나 장만하기로 아내와 얘기를 한다. 그리고 땔감 나무도 동네에서 구해서 가져오고, 착화유 (Fire starter), 바닥 패드 등등도 얘기해본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우리가 그렇게 캠핑에 진심이게 될 줄은 몰랐다


골든이어즈 주립공원 (Golden Ears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golden_ears/) : 메이플릿지 (Maple Ridge)에 위치한 골든이어즈 주립공원은 광역 밴쿠버에서 가장 가까운 주립공원으로 빽빽한 침엽수립과 광활한 알루엣 호수가 매력적이다. 여기엔 3곳의 캠프 그라운드가 있는데, 알루엣 (Alouette campground)과 노스 비치 (North Beach Campground)는 6월부터 9월까지만 운영하고, 골드 크릭 (Gold Creek Campground)는 연중무휴로 운영을 해서 겨울에도 동계캠핑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겨울에는 수돗물을 잠가둔다). 알루엣과 골드 크릭은 수세식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지만, 노스비치에는 재래식 화장실만 있다. 알루엣과 골드 크릭은 호숫가로 가기까지 제법 내려가야 하지만, 노스비치의 경우 호숫가까지 경사 없이 갈 수 있어서 보트를 띄우기가 쉽다.

산속 깊은 곳에 있어서 밤에는 온도가 꽤 떨어져서 그런지, BC 주립공원의 다른 곳에 비해서 모기가 없는 편. 밴쿠버 근교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로 인기 많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공원이라서 여름에는 예약이 필수다. 캠핑장에 체크인을 하게 되면, 보통 “어제 곰 2마리가 나왔는데…” 식의 곰에 대한 경고를 듣게 되는데, 사실 골든이어즈에서 가장 성가신 동물은 다람쥐. 만일 테이블에 과자봉지를 남겨둔 채 잠에 든다면, 다음 날 아침 갈기갈기 해체되어 있는 과자 봉다리를 보게 된다.

골드크릭에는 2020년에 새로 20개의 워크인 사이트가 만들어졌는데, 주차장에서 짐을 들고 50m 남짓 걸어가야 하지만, 알루엣 호수 바로 위 산등성이에 모여있기 때문에 골드이어즈 주립공원 캠핑 중 가장 멋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골드크릭 (Gold Creek) 캠핑장 워크인 캠프 사이트

가까운 시내 : 메이플릿지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5/5

이동통신 / 데이터 : 없음

프라이버시 : 3/5 ~ 4/5 (워크인 사이트의 경우 2/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3/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하지만 수압이 극도로 낮다

캠핑 사이트 크기 : 4/5 ~ 5/5

나무 우거짐 : 5/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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