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초창기 어느 날, 동네 대형 마트에서 식재료 쇼핑을 하던 중에 텐트와 침낭이 전시된 걸 한참 바라보고 있자니 아내가 슬그머니 옆에 서서는 “왜? 올여름에는 캠핑하고 싶어?” 하며 묻는다.
캠핑에 대해선 아내와도 그전에 몇 차례 얘기해 본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신입사원 연수 당시 우중 캠핑의 뼈아픈 경험이 남아있던 아내는 번번이 질색팔색을 했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결국 망각의 동물이고, 각이 잡혀 쫙 펴진 채 매장 한 가운데에 전시된, 스위스 아미 앰블렘이 달린 빨간색 예쁜 텐트는 그런 망각의 이유가 되기 충분했었나 보다. 게다가 당시엔 강아지도 키우고 있었으니, 아마도 아내는 널푸른 풀밭 속에서 강아지와 같이 뛰어놀고, 먹고 자는 그런 아름다운 상상을 했으리라.
반면에 나로서는, 어릴적엔 보이스카웃 활동을 하면서, 그리고 커서는 친구들과 여름마다 놀러 다니면서 (그리고 유격에 혹한기까지) 캠핑은 할 만큰 해왔기 때문에, 딱히 캠핑에 대해 간절함도, 그렇다고 두려움도 없었던 상태였다. 사람들이 말하길, 남편들이 캠핑을 좋아하는 이유가, 1) 찬 공기 맞으며 야외에서 술 마실 수 있어서 (캐나다에선 일반적으로 야외 음주 금지), 2) 집을 짓고, 불을 피우는 등, 야생의 환경 속 아빠의 생존능력을 시위하기 위해서 라던데… 내 경우엔 이런 것들도 그다지 유혹적이지 못했다.
그보다, 머릿속에 박혀 있는 영화 한 장면이 더 충동질 했었는데… 아프리카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얀색 커튼으로 감긴 텐트, 그리고 축음기와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갓 내려진 따끈한 커피. 그리고 활강하는 경비행기 위로 덮이는 존 베리의 사운드트랙.
새들의 짹짹 소리를 들으면서 잠에 깨어, 텐트 문을 열면 수풀 사이로 상쾌한 공기가 흐르고..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커피를 내리고 있자니 왠지 로버트 레드포드가 된 기분이 든다. 내가 뭐라고 이런 호강을 즐기나.. 생각도 들고.
하지만 다른 모든 판타지가 그러하듯이, 밴쿠버에서 하는 캠핑 역시 그 이면에는 무지하게 많은 쌩노가다가 요구된다. 일단 캠프 사이트 예약부터 전쟁. 사설 / 민영 캠핑장이 아닌 주립공원이나 국립공원에서 캠핑하려면 수개월 전에 미리 온라인 예약이 필요한데, 이건 뭐.. 팝스타 공연 예약에 버금가는 준비와 전략이 필요하다. 팬데믹 기간 동안엔 이마저도 매일매일 바뀌는 지경이었는데, 팬데믹 초기에는 야외활동이 실내 활동보다 안전하다는 사실이 알려지지 못해서 주립공원과 국립공원이 문을 닫고, 예약이 모두 자동 취소된 적도 있었다.
주립공원에 비교하자면, 사설 캠핑장은.. RV 캠핑 사이트는 그냥 주차장에 가깝고, 텐트 캠핑 사이트는.. 뭐랄까.. 그냥 넓은 잔디밭 아무 곳에나 텐트를 치고 자는 노숙 느낌..? 뭐 프라이버시라 할 것도 없고.. 그냥 밖에서 먹고 자고 하는 곳이라는 느낌이다. 도시와 가까운 곳이 많아서 전기, 수도는 잘 되어 있지만, 그래도 뭔가.. 이렇게 자연 속에서 휴양한다는 느낌 없이 그냥 집 놔두고 찬 바닥에서 자는 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저러한 이유로, 주립공원, 국립공원의 캠핑 예약에 사람들이 몰리게 된다. 주립공원의 경우 보통 캠핑장 도착 예정일 2개월 (팬데믹 이전에는 4개월) 전날 7시에 예약사이트를 여는데,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쟁이 일어난다. 캐나다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라는 게 허구한 날 사이트가 다운되는 데다가, 수요보다 현저하게 적은 공급 때문에 정말이지 1~2초만 클릭이 늦거나 재수가 없으면 두달 후 주말 캠핑 예약을 물 건너간다. 학교 다닐 때 수강 신청을 종이로 하던 세대라 온라인 예약에 서툰 건 안비밀.
여기에, 캠핑 가기 전에도 먹거리, 옷가지 등, 준비할 게 천지이고, 도착하면, 일단 말뚝 박으면서 텐트 치고, 짐 정리한 다음 장작 패고, 불 피우고, 밥 준비하고, 먹고, 또 금방 뒤돌아서 또 밥 준비하고.. 이러다 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가는 것 같다.
특히 BC주 주립공원의 경우 (비가 많이 오는 동네라 그런지) 캠프 사이트가 단단한 땅 위에 자갈밭 (Gravel)으로 되어 있어서 텐트 페그 박는 데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오랜만에 텐트 캠핑하면 망치질로 팔에 알이 박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쯤 되면 캠핑장비를 왜 스포츠 코너에서 팔고 있는지 알만하다 (알루미늄 대못 형태로 된 페그와 쇠망치 추천입니다). 게다가, 고지대에서 캠핑하면 밤에 기온이 급강하해서, 추위를 견디려고 온 몸에 힘을 주고 자다 보면 다음 날 아침에 허리를 펴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아프게 된다. (일어나자마자 꽁꽁 언 신발을 신어야 하는 고통은 덤이다)
끝으로, 캠핑을 철수하면서 정리하는 일 역시 쉽지 않다. 침낭을 최대한 압축해서 둘둘 말지 않으면 침낭 백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밤새 얼어붙은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이 들어간다. (아직 정글의 법칙에서 소개된 병만 달인의 팁을 모르던 때였다). 이러고 나면 젓가락질하기도 힘들어진다. 여기에 철수하는 날 비라도 내리게 된다면, 철수한 다음에 날을 따로 잡아서 텐트와 타프 등을 말리러 또 나서야 한다. 이 모든 고생이, 아침에 ‘아웃 오브 아프리카’식 커피 한잔을 하기 위함이다.
<캐나다 BC 주 캠핑>
BC 주에서 이용할 수 있는 캠핑 서비스는 다음과 같다
1) 사설 / 민영 캠핑장 (Private Camp Ground) : BC에는 약 10,000여 곳의 민영 캠핑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주로 계곡이나 호수 주변에 있지만 시내 가까운 곳에서 RV로 생활할 수 있는 RV Park도 있다. 공영 캠핑장에 비해 전기, 상하수도, 오락실 등 시설이 잘되어 있지만, RV 캠프 사이트가 매우 협소해서 프라이버시가 없는 경우가 많고, 텐트 캠핑의 경우에도 딱히 사이트가 존재하지 않은 채, 그냥 넓은 마당에서 먼저 텐트 치면 그냥 내 자리가 되는 경우도 있다.
샤워나 빨래 같은 건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비수기와 성수기 캠핑 비용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 2021년 현재 전기와 수도 시설이 있는 RV 사이트는 대체로 1박에 $50, 시설이 없는 텐트 사이트는 $35 정도 한다. 캠핑장에 따라서, 풀밭이나 숲에 있는 죽은 나뭇가지 등을 채취해서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하는 곳도 있는데, 이는 주립 / 국립 공원 캠핑장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2) 주립공원 (BC Provincial Park) : BC에는 약 600여 곳의 주립공원이 있는데, 공원에 따라 Front country camping (차로 캠핑장까지 이동할 수 있는 캠핑), Back country camping (캠핑장까지 텐트와 캠핑 장비를 짊어진 채 걷거나, 카약으로 이동해서 하는 캠핑)을 각각 따로, 혹은 둘 다 제공한다. 널따란 캠프 사이트와 빽빽한 침엽수림이나 반짝이는 호숫가 등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캠핑을 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개별 사이트에는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전기가 들어오는 곳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몇몇은 수세식 화장실이나 샤워시설도 제공하지 않는다.
2021년 현재 BC주에는 캠핑인구가 넘쳐나서, 캠핑 날짜 2개월 전에 미리 예약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 되었다. BC 주립공원 웹사이트는 http://bcparks.ca 이지만, 2019년부터 캠핑 예약은 https://discovercamping.ca/BCCWeb/Default.aspx에서 해왔는데, 2022년 3월 부터 다시 http://bcparks.ca 에서 예약을 받는다고 한다. 비용은 샤워 시설이 있는 캠핑장의 경우 2021년 현재 1박에 $35불, 샤워 시설이나 수세식 화장실이 없으면 1박에 $23이며, 전기가 들어오는 사이트의 경우 전기사용료가 별도로 1박에 $8가 추가되며, 인터넷 예약을 할 경우 3박까지 1박에 $6+GST(5%)가 예약비로 나간다.
3) 국립공원 (National Park) : BC에는 7곳의 캐나다 국립공원이 있는데 2021년 현재 그중 5군데에서 Front country camping이나 Back country camping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립공원처럼 성수기에 캠핑장 예약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 보통 1월에 1년 치를 모두 예약할 수 있다 (2021년의 경우 팬데믹 때문에 3월에 예약 사이트를 열었다).
인터넷 예약은 https://reservation.pc.gc.ca/ 에서 하는데, 주립공원과는 달리 몇 박을 예약하든지 예약비는 $11.5로 일정하고 (2021년 현재), 캠프 사이트 이용료는 사이트에 설치된 시설 (상하수도, 모닥불 화로 및 전기)에 따라서 $33~$50인데, 다른 국립공원 관광지에 주차하는 것과 같이 국립공원 캠핑장에 들어가려면 국립공원 사용료를 별도로 내야 한다. 캐나다 전체 국립공원 시설을 사용할 수 있는 가족용 연간 패스는 $140 정도이다.
RV 캠핑장의 경우 대부분의 사이트에 전기가 들어온다. BC에서 가장 유명한 국립공원 캠핑장 두 곳을 대자면 퍼시픽 림 (Pacific Rim) 국립공원의 그린포인트 캠핑장 (Green Point Campground)과 레벨스톡 (Revelstoke) 국립공원의 스노플레이크 캠핑장 (Snowflake Campground)으로 두 곳 모두 최근에 건립되거나 리노베이션 되어서 최신 설비의 화장실 및 샤워실을 가지고 있다.
4) BC 레크리에이션 관할 공원 (RSTBC : BC Recreation Sites and Trails) : 어떤 사람은 Logging road (벌채 목재 수송용 비포장 도로) camping이라고도 하던, 예전에는 BC주 산림청에서 주관,관리하는 무료 캠핑장들이, 2010년대 말부터 RSTBC 라는 프로그램 하에 통합되었다. 대개 Logging road를 타고 한참 들어가야 나온다.
대부분 무료이긴 하지만, 지역 구청이나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존하는 만큼 관리 상태도 안 좋고, 대개의 경우 그냥 열 개 남짓한 캠핑 패드에 재래식 화장실 한두 개 있고 수도도 없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인터넷 예약 같은 것도 없어서, 막상 5시간 이상 운전해서 갔다가 캠핑장이 죄다 차 있을 가능성도 있다. 주로 호수를 끼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낚시에 진심인 사람들이 일주일 이상 캠핑하는 경우가 많다. 각 캠핑장에 대한 자세한 안내는 RSTBC 웹사이트 http://www.sitesandtrailsbc.ca/search/search-facility-activity.aspx 에서 받을 수 있다.
5) 시, 군, 구 캠핑장 (Municipal Campground) : BC주 산하 시, 군, 구에도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캠핑장이 있다. 주립공원에 비해 저렴하지만 샤워실이나 수세식 화장실이 없는 곳도 허다하다. 광역 밴쿠버에서 유명한 곳으로는, 스쿼미시 (Squmish) 암벽 산악인들이 애정하는 스쿼미시 시영 캠핑장 (2021년 현재 코로나로 운영중단)과, 광역 밴쿠버 서비스에서 운영하고 포트랭리(Fort Langley) 프레이저 강변에 자리 잡은 에지워터 캠핑장 (Edgewater bar Campsites, http://www.metrovancouver.org/services/parks/reservable-facilities/facilities/edgewater-bar-camping)이 있다.
6) BC 전력공사 캠핑 (BC Hydro Recreation Sites) : BC 주 전력공사인 BC Hydro에선 19곳에서 레크리에이션 사이트를 운영하는데, 광역밴쿠버에는 칠리웍 (Chilliwack)의 존스 호수 (Jones Lake)와 미션 (Mission)의 스타브 호수 (Stave Lake)에서 캠프 사이트를 무료로 제공한다. 최근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존스 호수에는 호수 주변으로 50여 캠프 패드와 재래식 화장실이 제공되지만 음주는 금지되고 있고, 스타브 호수 캠프 사이트에는 비영리단체 그룹캠핑만 예약이 가능하다. 자세한 정보는 https://www.bchydro.com/community/recreation_areas.html 에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