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을 무릅쓰고

사실, 지난 록키 캠핑 이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물론 중간에 하루 쉬긴 했었지만) 일주일 동안의 캠핑은 꿈도 꾸지 못했었다. 2중 텐트에 전기장판까지 동원해서인지 매일매일 비교적 쾌적한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씻는 것도 그렇고, 숲속에서 축축한 공기 속에서 계속 생활을 하자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매일매일 (본전을 뽑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관광을 다니려다 보니까 무척이나 힘이 들었었고, 그래서 배탈도 났던 게 아닌가 싶다.  뭐.. 요즘은 한국에서 관광 오신 분들에게 텐트 캠핑으로 록키 여행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그렇지만, 예전에는 캠핑이란 하룻밤 날 잡아서 밖에서 텐트 치고 노는 것이지 어떤 여행의 형식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최근 들어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장기 캠핑을 할 때 중간에 하루 이틀 정도는 관광지 투어를 자제하고 캠핑장에서 몸을 쉬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아무래도 신체 회복이 느려지기 때문인지 몰라도, 며칠을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이게 여행인지 운동인지 헷갈릴 때가 많이 생긴다. 그리고 장기 캠핑 시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수분 섭취가 (화장실 가는 일을 줄이려는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평상시보다 매우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 때문에 피로감이나 소화불량, 배변 불량 등이 쉽게 유발된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요즘엔 캠핑을 가게 되더라도, 가능하면 술을 줄이고 최대한 물을 충분히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다.

록키에서 돌아온 후 다시 일상이 시작되었고 그 주 내내 몸이 힘들었지만, 마지막 날 자스퍼에서 쏟아지는 비로 인해 잔뜩 젖어있던 텐트와 장비들을 말리기 위해 그다음 주말에 또 캠핑장을 찾아야 했다. 포트 랭리 (Fort Langely)에 있는 에지워터 캠핑장 (Edgewater Bar Campsite)은 이때까지만 해도 예약 시스템이 없이 선착순 (FCFS : First Come First Serve)로 운영되었었는데, 뭐.. 가 봐서 자리 없으면 돌아오면 되지… 하는 정신으로 무작정 길을 나섰고, 운이 좋아서 7월에, 그것도 캐나다 데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빈자리를 하나 얻을 수 있었다. 소형차에 텐트를 싣고 다니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배짱이었고, 지금처럼 카라반을 끌고 다닌다면 사이트를 얻게 될 거라는 보장 없이 길을 나서긴 어려웠을 것이다.

포트 랭리 (Fort Langley)라는 마을은 랭리 광역시 (Township of Langley)의 북쪽, 1번 고속도로 건너편에 있는 작은 마을로 프레이저 강 (Fraser River) 유역에 자리 잡고 있다. 강이나 바다에 인접해 있는 다른 모든 도시들처럼, 도로 교통을 통한 교역이 활성화되기 이전까지는 프레이저 벨리 지역의 상업 / 행정 중심도시였다고 하는데 (1930년대에 만들어진 마을회관도 아직 운영되고 있다), 현재는 1800년대의 교역 문화를 소개하는 국립 민속공원 (National Historic Site of Canada)을 포함해서, 각종 골동품 가게 및 힙한 식당들이 즐비한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특히 프레이저 강변을 따라서 길게 늘어진 산책로가 있는 더비 리치 공원 (Derby Reach Regional Park)과 그 부속으로 있는 에지워터 캠핑장 (Edgewater Bar Campsite)이 유명하다. 2007년까지 운행되었던 알비온 페리 (Albion Ferry) 서비스가 중단된 이후로는, 왠지 관광지에 가는 느낌이 덜하긴 하지만, 여전히 볼거리 먹거리가 풍부하고, 동시에 고즈넉한 시골 마을 분위기도 유지하고 있다.

마침, 근처에 사시던 지인 일행이 캠핑장에 놀러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데, 모닥불을 때고, 고요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불멍과 물멍을 동시에 즐기면서 마시는 술은 각별했다. 캠핑장 예약의 수고로움과 짐 싸고 풀고를 포함해서 그 수많은 중노동을 감수하고라도 많은 사람들이 캠핑장을 찾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 야외에서 마시는 술… 

미국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캐나다는 술을 판매하는 것조차 주정부가 직접 관리하거나 주정부에서 인증한 몇몇 소매점에서만 팔 수가 있을 정도로 음주 문화에 대해 엄격하기 때문에, 이때만 해도 이렇게 야외에서 마음껏 술을 마실 기회는 캠핑장 외에는 없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음식점과 술집의 영업제한이 걸리면서, 밴쿠버 시를 포함한 몇몇 BC 주 도시에서는 지정된 공원에서 지정된 시간 동안 음주를 허용하고 있다) 때문에, 이렇게 캠핑장에 미리 자리를 잡고 지인을 초대하게 되면 (집으로 돌아갈 때 운전할 사람이 확보되어 있는 경우에) 대부분 매우 기뻐하면서 술과 음식을 들고 찾아와 주었다.

다른 모든 여흥과 마찬가지로, 캠핑 역시 단둘이서 다니는 것도 좋지만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여럿이 다니는 것이 더 재미있다. 캠핑을 가게 되면 아무래도 주로 앉아 있거나, 먹거나, 아니면 산책을 다니는데, 다시 말해 앉아서 수다를 떨 거나, 먹으면서 수다를 떨 거나, 걸어 다니면서 수다를 떠는 일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에피소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리고 다양한 음식을 먹다 보면) 종종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배우자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나누면서, 우리 집만 이상한 게 아니었구나.. 하는 공감과 위로를 받게 되는 건 보너스이다.

찾아주신 지인분이 다른 일행들한테 나를 캠핑 전문가라고 소개를 했다. 난데없는 전문가 호칭에 좀 당황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시 주변 사람들 중에서 록키로 텐트 캠핑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 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리고 다녀온 다음 주말, 곧바로 텐트를 말린다는 명목으로 해서 또 캠핑을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해도 좀 과하다 싶었기 때문에, 손사래를 치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배시시 웃고만 있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빠돌이 빠순이 정도는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늙어가는 강아지가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고 있자니, 저 자식이 먼저 떠나기 전에 재미난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고 싶은 감정은 어쩔 수 없었다.


더비 리치 공원 – 에지워터 캠핑장 (Derby Reach Regional Park – Edgewater Bar Campsite, http://www.metrovancouver.org/services/parks/reservable-facilities/facilities/edgewater-bar-camping) :  광역 밴쿠버 서비스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으로 포트 랭리 (Fort Langley), 더비 리치 공원 (Derby Reach Regional Park)에 위치한 캠핑장이다. 매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총 38개의 사이트가 각 세 군데의 재래식 화장실과 수돗가와 함께 서비스된다. 이전에는 100% 선착순 (FCFS : First Come First Serve)이었지만 몇 해 전부터 인터넷과 전화로 예약 서비스를 같이 제공한다 (전화 예약에는 5불 서비스 요금이 붙는다).

프레이저 강변을 따라 캠프 사이트들이 모여 있어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캠핑을 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더비 리치 공원의 하이킹 코스와 맞물려 있어서 하이킹이나 자전거 라이딩을 하기 좋다는 강력한 장점이 있지만, 샤워실이나 수세식 화장실이 없다는 점, 그리고 역시 더비 리치 공원의 하이킹 코스와 맞물려 있어서 유입인구 통제가 어렵다는 점, 그래서인지 화장실 상태가 매우 극악무도하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 리뷰나 주변 캠퍼들의 얘길 들어보면, 캠핑장의 청결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 또, 강변에 위치해 있어서 프레이저 강 수위가 올라가게 되면 캠핑장을 강제로 닫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캠핑 날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한 시간 반 정도 산책 후 팬시한 브런치 식당에 들를 계획이 있다면, 이 캠핑장이 최선의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가까운 시내 : 포트 랭리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5/5

이동통신 / 데이터 : 잘됨

프라이버시 : 1/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3/5

RV 정화조 : 없음

RV 급수 시설 : 없음

캠핑 사이트 크기 : 3/5

나무 우거짐 : 1/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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