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캠핑을 좋아하는 건 아냐

이렇게 꾸준하게 아내와 같이 캠핑을 다니다 보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기가 정말 힘든 건데… 참 좋아 보인다”, “어이쿠.. 부부 둘 다 캠핑을 좋아하는 건 아주 드문 일인데..”와 같은 호감이나 찬사를 듣게 되는데, 우리가 아무리 “아유~ 정작 같이 가서는 얼마나 지지고 볶고 싸우는데요…” 하면서 손사래를 치며 부정을 한다 하더라도, “에이… 그래도.. 그건 정말 귀한 일이에요…”하는 부러움을 사게 된다.  

사실.. 같이 캠핑 다닌다는 거.. 맞다. 쉽지 않다. 우리 부부는 둘 다 “에이.. 그냥 나 하나 참으면…”이라는 생각으로 유지되는 집안의 평화보다, 차라리 쌈질해서 깨지는 집안을 더 선호하는 성격들인 데다가, 이삿짐 하나를 싸도, 아니 집안 청소를 하면서도 각자의 의견이 분분하고, 자기주장을 굽힐 생각을 안 한다. 결국 한 사람 의견으로 일이 진행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름다운 양보나 논리적인 설득이 아니라, 어느 순간, “아니… 무슨 독립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이게 이렇게 거품 물고 싸울 일이 아닌데…”하는 현타가 와서 그냥 포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22년 차가 되어도 이 모양이고, 여기서 더 얼마나 같이 살아도 딱히 달라질 거라는 생각도 안 한다.

그렇더라 하더라도, 주변을 보면 신기하게도 우리만큼 캠핑을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없다. 우리처럼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간의 캠핑 계획을 연초부터 짜두는 사람들이 없는 걸 보면 우리가 남들에 비해 캠핑을 좋아하긴 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막상 우리가 캠핑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면, 딱히 캠핑을 안한다고 해서 인생이 무척 지루해지거나 그럴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 캠핑 너무 힘들어” 하는 것도 아니지만, “오, 캠핑 없으면 죽을 것 같아” 이런 것도 아닌 것이다. 그냥, 마치 습관적으로, 예약을 하고, 짐을 싸고, 캠핑을 떠난다.

물론 막상 가면 좋다. 캠핑 의자에 앉아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멍 때리는 것도 좋고, 가만히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는 것도 좋다. 일교차가 심한 초여름날, 물안개가 덮여있는 호숫가를 천천히 산책하는 것도 좋고, 비가 갠 아침, 피톤치드로 가득 찬 숲속을 걷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좋은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노는 것도, 그리고 왠지 캠핑장에서는 정크푸드를 좀 먹어줘도 용서가 되는 분위기도 좋다. 게다가 야외 바비큐 파티나 캐나다에서 몇 안 되는 합법적 야외 음주 행위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이렇게 재미나고 낭만적인 걸 어떻게 안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첫째, 물론 일이 너무 많아서다. 캠핑장 예약 등 준비하고 짐을 싸고 싣고, 운전하는 것에서부터, 나중에 설거지, 빨래, 젖은 텐트를 말리는 일까지.. 엄청나게 일이 많다. 야외에서 며칠 노숙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짐들을 죄다 싸갔다가 다시 정리하는 일이니 오죽하겠나. 현장에서 텐트 치고 음식하고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RV는 또 RV대로 정기적으로 유지 보수를 해줘야 하는 일이 있다. 앞서 말한 낭만적인 불멍도 사실은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장작을 패주고 불이 꺼지지 않게 땔감을 쉬지 않고 넣어줘야 가능한 낭만이다.

특히 젊은 부부들은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또는 쉬는 날 아이들의 폭풍 질문과 요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혹은 아이들에게 맘껏 뛰놀 수 있는 (그렇게 에너지를 죄다 탕진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 등 아이들 때문에 캠핑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경우 당연히 짐도 늘고 일도 더 늘어나게 된다. 일이 많다 보니 부부가 같이 캠핑을 할 경우 각자 역할 분담을 해야 하게 되는데, 왠지 내가 맡은 일은 너무나 힘이 들고 상대는 너무 쉬운 일을, 그마저도 꼼꼼하게 해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본인이 절실하게 원해서 하는 캠핑이 아니다 보면 왠지 상대의 취미 때문에 내가 희생한다는 생각도 든다. 캠핑을 싫어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흔히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저 사람은 집에 오면 캠핑이 다 끝난 줄 알아요.”라고 하는 배우자에 대한 원망이었다.

둘째, 그리고 불편하다. 잘 씻지도 못하고, 공중화장실 쓰는 것도 부담스럽다. 그나마 수세식 화장실이 있는 장소도 드물다. 씻지 않은 상태에서 술과 정크푸드를 먹으니 소화도 안 되고 몸에서 냄새도 난다. 그러다 보면 모기들도 더 달려든다. 잠자리도 춥고, 등도 배기고, 축축하다. RV가 있더라도 집에 비하면 너무 좁다. 주 정부에 따라서 차이가 있겠지만, 캐나다 주택 기준상 한 사람에게 거주용으로 필요한 최소 공간이 4 평방미터라고 하는데, 그 정도 넓이를 보장하는 텐트나 RV가 있다면, 그만큼 설치도 운전도 더 어렵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높은 인구밀도는 당연히 거주자들 간의 갈등을 야기시킨다. 여기에다가 날씨마저 안 도와준다면 “아이 씨.. 도대체 여긴 왜 온 거야!!” 하는 짜증이 안 튀어나오기 어렵다.

연인 간의 관계에서도 누가 더 많이 사랑하느냐에 따라 권력관계가 생기듯이, 부부가 같이하는 취미 생활에서도 누가 더 그 취미활동을 좋아하는가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 아내나 연인을 데리고 처음 같이 낚시를 가면 지렁이 미끼도 꿰어주고 낚은 고기에서 바늘도 빼주고 하는 등, 상대가 최대한 빨리 재미를 붙일 수 있게 도와준다. 캠핑의 경우에도 잠자리나 위생 문제 등으로 불편해하는 아내를 달래기 위해, 사이트 예약부터 샤워실 근처로 한다든지, 다양한 텐트 및 침구류를 시도한다는지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다고 해서 갑자기 지렁이 꿰는 게 쉬워지지 않는 것처럼, 상대의 배려에 감동해서 그 취미가 같이 좋아지는 일은 얼마 없다. 한창 빵 만들기에 취미를 붙이던 아내도 내 입맛에 맞는 빵을 구워보려 노력했지만, 나는 여전히 전문가가 만들어 파는 빵을 더 좋아했다.

결국 이러다 보면, 취미생활에 있어서 각자의 길을 걷든지, 아니면  그 취미를 좋아하던 사람도 나중에는 포기하게 되든지 하는 경우가 생긴다. 대부분의 아웃도어 취미의 경우 워낙 근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보니까, 남편 쪽이 재미를 못 느끼거나 일을 힘들어하는 경우에는 애초부터 시작되기도 쉽지 않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같이 캠핑을 갈 때마다 한두 번씩 밖에 안 싸워 온 우리 부부가 제법 화목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동시에, 이 모든 힘들고 불편함을 무릅쓰고라도, 꾸역꾸역 캠핑장을 예약하고 캠핑 짐을 싸고.. 그렇게 간다는 건, 결국 우리 부부 둘 다 어지간히 캠핑을 좋아하긴 하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분명히 처음엔 기왕에 돈 내고 산 텐트랑 침낭이 있으니 어떻게든 써먹어보자..라는 본전심리로 시작하게 된 걸 텐데, 오랫동안 하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불편함을 덜 느끼게 된 것일 테다. 마치 기타를 배울 때 F 코드를 넘기면 신세계가 열리는 것처럼.

문제는 우리 둘 다 캠핑을 좋아하고 거기에 동반하는 불편함과 괴로움을 감수하는 걸 너무나 오랫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오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 역시 캠핑을 하려면 그 정도는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가.. 하고 섣불리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 집단 내 커뮤니케이션에서만 통하는 명제의 당위성을 다른 집단에게 강요하는 건 언제나 폭력적이다 (예를 들어 “우리 개는 안 물어요”나 “야!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같은..). 우리 입장에서는 캠핑의 즐거움을 위해선 재래식 화장실은 당연히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그러다 보니, 우리로썬 나름 신경 써서 캠핑에 초대한다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항상 즐거운 것이 될 수만은 없지만, 상대방 입장에선 그렇다고 대놓고 거절하기엔 또 좀 미안해서 억지로 따라오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2019년 여름 캠핑의 행선지는 자스퍼였다. 어쩌다 보니, RV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록키는 한 해씩 걸러서 여름휴가에, 토피노는 매년 가을 휴가에 가게 되었는데, 2017년에는 벤프에 집중적으로 있었으니 2019년에는 자스퍼에 머물면서 마음껏 관광을 하자는 계획이었다. 2011년에 자스퍼에 갔을 때 매우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위슬러 캠핑장 (Whistler Campground)’의 경우 안타깝게도 안식년에 리노베이션까지 겹쳐져서, 2019년에는 그 근처에 있는 ‘와피티 캠핑장 (Wapiti Campground)로 가게 되었다.

이 때도 한국에서 방문한 처제와 같이 갔었는데, 아내는 연초부터 동생과 같이 자스퍼의 명소들을 등산할 계획으로 설레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자스퍼로 출발할 때쯤이 되어서는 처제의 건강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고, 나 역시 (오래 의자에 앉아서 일하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갑자기 허리디스크가 도져서 내리막을 내려가는데 힘이 들었기 때문에, 아내의 자스퍼 관광 계획은 절반도 채 이루지 못한 채 만족해야 했다. 

이렇듯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은 여행이다 보니까, 서로 짜증도 많이 내고, 말실수도 많이 하고, 또 상대의 말 때문에 서러워하기도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처제는 원래 캠핑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 좋아하긴 하지만, 재래식 공중화장실과, 모기와, 땀과, 축축한 잠자리를 감수할 정도까진 아니라는 걸. 그냥 캐나다에 있는 언니랑 시간을 보내고 싶었었다는 걸.

어쨌건, 이 여행도 출발 당시에는 아주 즐거웠다. 이번에도 하루 최대 5시간 운전 원칙은 있어서, 자스퍼에 도착하기 전에 ‘캠룹스 (Kamloops)’ 근처 주립공원에서 하룻밤을 신세 지기로 했다. BC 주 내륙지방에서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인 캠룹스도 호반의 도시이지만, 광역 밴쿠버에서 캠룹스로 올라가는 동안의 길 양옆으로도 예쁘장한 호수들이 많고 그 호수를 중심으로 여러 주립공원들이 있었다. 

첫날 도착한 ‘라끄르준 (Lac le Jeune)’ 호수는,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낚시꾼들에게는 이미 슈퍼스타급의 위치에 있는 호수공원으로, 커다란 데크가 있어서 보트를 띄우기도, 그리고 거기 앉아서 낚시를 하기에도 아주 적당해 보였다. 최근에 리노베이션이 있었던 건지 호숫가 나무 데크를 포함해서 모든 시설 상태가 매우 좋았고, (인터넷 리뷰에는 재래식 화장실밖에 없는 것처럼 되어 있었는데) 캠핑장 군데군데 있는 1인용 화장실들이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이어서 신기했다. 이런 1인용 수세식 화장실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습지대 특유의 수초들이 호수 여기저기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서, 해지는 저녁에도, 여명이 터오는 새벽에도, 색색으로 물드는 호수빛과 근사하게 어울렸다. 이곳 캠핑장은 비가 많이 오는 광역 밴쿠버에 있는 주립공원과는 토양도 다르고 생태계도 달라서, 텐트 팩을 땅에 박는 것도 무척 쉬웠고, 사이트 주변으로 나무들도 그리 많지 않아서 햇볕도 잘 드는 편이었다. 마침 여름 땡볕이 비치던 캠룹스 시내에서 사 가지고 들어온 동네 양조장 맥주가 있어서 벌컥벌컥 마셔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오자 두 자매는 조곤조곤 쌈질을 시작했다.

캠핑날 저녁


라끄르준 주립공원 (Lac le Jeune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laclejeune/) : ‘호프 (Hope)’에서 ‘메릿 (Merritt)’으로 가는 ‘코카할라 고속도로 (Coquihalla Highway ; Highway 5)’를 계속 타고 가다 보면 어느덧 ‘캠룹스 (Kamloops)’를 향하게 되는데, 캠룹스 시내로 가는 내리막길이 시작하는 지점쯤에서 고속도로 오른쪽으로 빠져나가서 15분 정도 더 들어가야 있다. 뜬금없이 외진 길이 나오고 근처에 다른 호수 공원들이 많아서 찾는 데 좀 애를 먹을 수는 있지만, 일단 공원에 도착하면 확 트인 호수 뷰에 구석구석 마련된 수세식 화장실로 만족감을 얻게 된다.

장소도 좀 외진 편이고 일반적으로 낚시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RV를 끌고 온 장기 캠퍼들이 다른 주립공원에 비해 많은 편이다. 또 그만큼 약 150개 가까이 되는 캠프 사이트들이 제법 다 큼직한 편이고 사이트 간 간격도 넓은 편이다. Lac le Jeune이라는 이름은 왠지 젊은 호수 (Young Lake)라는 의미일 것 같지만, 사실은 이 지역에서 평생 봉사활동을 했던 프랑스 신부 Father Jean-Marie-Raphaël Le Jeune 에서 따왔다고 한다.

가까운 시내 : 캠룹스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2/5

이동통신 / 데이터 : 전화 가능

프라이버시 : 3/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모두 수세식 화장실이지만 샤워실은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2/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3/5  ~ 4/5

나무 우거짐 : 3/5

호숫가 / 강변 / 해변 : 있음

햇볕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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