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모든 캠핑이 즐거운 것도 아니지

총 7박 8일간의 캠핑 여행 중에 거진 맨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이런 찝찝한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살벌한 자매간의 신경전에 찌그러져 있다가 좀 분위기 좀 풀어보려고 싱거운 농담을 몇 번 했지만, 번번이 헛스윙, 혹은 오히려 더 심각한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처제 입장에서는 싸움을 피하려고 해도 캐나다 시골 깡촌 한가운데 있는 캠핑장에서 어떻게 달리 갈 수 있는 곳도 없었을 테니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어도 찬바람만 쌩하고 말았을 일이고, 아내 역시 남편 앞에서 동생과 사생결단을 내고 싶지는 않아서 속으로만 끙하고 있었을 것이다. 차라리 대차게 한번 고함지르고 싸우고 나면, 전례대로 결국 울면서 서로 화해하고 말았을 일이지만.. 오히려 이렇게 냉랭하게 있으니.. 정말 휴가가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사진들은 죄다 아름답고 행복하게 나왔다)

보통 루이스 호수가 있는 밴프 국립공원 쪽으로 가려면 캠룹스에서 1번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가야 하는데, 밴프보다 훨씬 북쪽에 위치한 자스퍼로 가기 위해선 계속 5번 고속도로를 타고 간다. 앨버타주 입장에서 말하자면, 밴프는 앨버타주에서 가장 큰 상업 도시 캘거리와 가깝고 자스퍼는 앨버타주 주도인 에드먼턴과 가까운 것이다. 벤프를 향해 가다 보면 주 경계 직전에 ‘글래시어 국립공원 (Glacier National Park of Canada)’이 있는 것처럼, 자스퍼 쪽 길, 주 경계 직전에도 멋진 공원이 나오는데, 바로 ‘랍슨 산 주립공원 (Mt. Robson Provincial Park)’가 되시겠다.

예전 2011년에 록키 여행을 할 때도 이곳 주립공원 휴게소에서 쉬면서 랍슨산을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날씨가 잔뜩 찌푸려 있어서 산 정상을 보기는 어려웠었다. 하지만, 들판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민들레라고 해야 할지.. 데이지꽃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직 6월이라서 그런지 아직까지는 꽃들이 매우 성기게 피어있었다. 그래도 맨 꼭지를 빼고는 산 정상이 보이는 것 같아서 왠지 복권에 맞은 기분이었다.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랍슨 산 정상

‘와피티 캠핑장 (Wapiti Campground)’은 자스퍼 시내와 가까운데 위치해 있어서 비교적 부식 조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와피티’ 뿐만 아니라, 자스퍼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대부분의 캠핑장이 자스퍼 시내와 가까운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Icefield Parkway, 93번 국도)’ 상에 배치되어 있었다. 물론 밴프와 비교하자면 자스퍼 시내는 관광지라기보다는 그야말로 시골 마을과 같은 분위기였지만, 그래도 시내가 가까우면 여러 가지로 편리한 점이 많았다.

2019년 ‘와피티 캠핑장’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캠프파이어 퍼밋을 매일 따로 구매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보통 국립공원 캠핑장을 예약할 경우, 장작은 캠핑장 내에 쌓여 있어서 무제한으로 가져가서 땔 수 있는 반면, 모닥불을 때든 (비가 와서) 안때든 간에 예약할 당시에 캠프파이어 퍼밋 비용을 무조건 같이 내야 해서 좀 억울한 점이 있었는데, 2019년 와피티에서는 예약할 때가 아니라, 캠핑 당일에 캠핑장 관리실에 가서 파이어 퍼밋을 하루씩 살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2021년 현재 국립공원 공식 웹사이트에 의하면, 자스퍼 국립공원의 경우 이제 무조건 예약시 파이어 퍼밋을 사게끔 되었다고 한다

이튿날, 서먹한 분위기였음에도 아내는 또 식구들을 이끌고 예정대로 산에 올랐다. ‘에디뜨 캐블 (Edith Cavell)’ 산은 캠핑장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등산로 입구가 있었는데, 워낙에 외진 곳에 위치해 있었고 이정표가 자세하게 되어 있지 않아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애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하고 나니, 등산로 입구에서부터 1km 정도까지는 주변에 뻥 뚫린 광경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어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포장도로 좌우에는 자갈과 바윗돌 밭으로 채워져 있었고 눈앞에는 빙하로 얼룩진 검은 바위산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 뒤로는 바위 무덤 사이로 지나는 비포장길이 지그재그로 이어지는데, 그만큼 높은 곳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꽃도, 야생동물들도 다른 곳에서는 잘 못 보던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지어 밟지 말라는 표시도 있었다)산행을 시작하고 1시간 동안은 계속 이렇게 친절한 길이 나온다하지만, 곧이어 나오는 돌길길에 나는 식물들을 밟지 말라는 표시는, 생태가 복원 중인 국립공원에서는 간혹 볼 수 있다

캐나다 국립공원의 상징인 ‘마못 (Marmot)’. 여기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왕복 8km 좀 넘는 산행이었지만, 3.5km 정도 올라갔더니 얼음이 아직 안 녹은 길이 나타났다. 해발고도 2,100m 되는 지점이었는데, 6월의 자스퍼는 아직 눈길이 다 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눈길 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던 상태여서 결국 그냥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을 시간을 골라 급하게 올라가느라 등산로 입구에 있는 안내판들도 자세히 못봤었는데, 내려와서 보니까 이 산과 초원이 이름을 딴 ‘에디뜨 케블’ 본인은 정작 캐나다에 한번도 온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영국에서 태어나고 1차 대전 당시 벨기에에서 간호사 활동을 했던 사람인데, 안타깝게 1차 대전의 희생자가 되어 한동안 독일군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연연방이었던 캐나다는 영국의 정책을 따라서 이 사람을 기념하는 장소를 만들었고… (참조 :  https://albertashistoricplaces.com/2016/03/09/mount-edith-cavell/)

다음날에는 ‘말린 호수 (Maligne Lake)’로 향했는데, 루이스 호수가 벤프를 상징한다면 여기 이 말린 호수가 바로 자스퍼를 상징하는 호수라고들 한다. 호수를 둘러싼 주변 산들과 함께 보이는 첫인상은 벤프에 비해 좀 임팩트가 약한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호숫가를 천천히 걷다 보면 군데군데 예쁜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말린 호수 전경호숫가 산책로

이때에도 아내는 왕복 6km에 500m 오르막 위에 위치하는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호수 전경을 보고 싶어 했지만, 남편과 동생이 못 올라가겠다고 나자빠져서 결국 포기해야 했다. “아니, 그럼, 우리, 그냥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만 한번 올라가 보자..” 하면서 달래 보려 했지만, 김광진의 ‘편지’ 첫 구절을 반복해 부르며 앉아 있는 완강한 반항에 어쩔 수 없이 등산을 접고 돌아 내려왔다. 변명해보자면… 2km 정도 올라가는 동안 본 거라고는 정말이지 등산로 양옆을 채운 키다리 침엽수들밖에 없었고, 게다가 길바닥도 내 허리 상태에 비해서 매우 딱딱한 길이었어서 다시 돌아 내려가는 일이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아무튼, 이 일로 아내는 대박 삐졌고, 이 여행에서 이후로는 더 이상 등산은 없었다.

캠핑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스퍼에서 나름 유명한 R 로스터리를 찾아가 봤는데, 커피를 로스팅하는 일이 향긋한 냄새만을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중심가에서 벗어난 외진 곳에 위치한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었지만, 너무나도 촌스런 제품 포장이나 로스팅 날짜가 명기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은 품질에 좀 의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알고 보니, 이 근방 모텔이나 상가, 사무실에 대량으로 맞춤 로스팅을 해 주는 것이 주력 사업분야인 걸로 보였다. 어쨌든, 기념 삼아 ‘코나 커피’와 ‘백패커 커피’, 두 제품을 구입했는데 예상대로 ‘코나 커피’는 하와이 ‘빅 아일랜드’ 코나 지역에서 자란 커피콩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R 로스터리에서 그냥 붙인 이름이었다. 마치 편의점에서 파는 ‘울릉도 호박엿’처럼.. 맛도 그냥 그저 그랬고…

예전에 벤프에 있는 국립공원 캠핑장도 그렇듯이, 이곳 와피티 캠핑장도 360개가 넘는 캠프 사이트가 있으면서도 샤워장을 달랑 두 군데뿐이어서, 샤워나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하기에는 많이 불편한 상황이었다. 대형 RV의 경우, 대개 내부에 자체 샤워 시설이 있어서 그런 건지 RV 전용 캠핑장 근처에 있는 샤워장이 그나마 경쟁이 덜했기 때문에, 좀 더 걷더라도 여기까지 와서 씻고는 했다. 그래도 우리는 아침보다 저녁에 샤워하는 습관이 들어서 아주 심각한 병목현상을 피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캠핑장에서 벗어나 좀 여유를 가지고 편하게 씻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있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셋째 날에는 오전에는 좀 느긋하게 쉬고 나서 오후 들어 천천히 근처 온천으로 향했다.  ‘미엣 온천 (Miette Hotspring)’은 자스퍼 시내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말로는 천연미네랄 온천이라고 하는데, 뭐.. 역시나.. 그냥 동네 공용 풀장과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간만에 뜨거운 (그래 봤자 40도 정도지만) 탕 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아무리 날씨가 서늘해도 얼굴이 금세 달아올랐다.

아내는 워낙에 놀러 다니는 계획을 짜는 걸 좋아하다 보니 자신의 휴가 일정에 자부심이 넘쳐나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여러 가지 이유로 – 특히 동반자들의 건강상 이유로 –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다 보니, 3일 차가 지나자 “에라 모르겠다. 니들 하고 싶은 대로 해라..”와 같은 형상이 되었다. 여기에 날씨마저 비가 계속 내리게 되자, 그 좁은 트레일러에서 냉랭한 분위기만 띠면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스퍼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운전 시간을 줄이기 위해 중간에 주립공원에서 1박을 했다. ‘북. 톰슨 강 주립공원 (North Thomson River Provincial Park)’는 ‘클리어워터 (Clearwater)’라는 동네에 있는 공원으로, 말 그대로 톰슨 강에 인접해 있고, 그 경치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재미난 산책로가 있는 주립공원이었다. 하지만, 2019년 여름에는 모기가 말도 못하게 많아서, 걷다 보면 모기에 물리는 것보다 부딪히는 경우가 더 많을 정도였다. 부탄가스를 이용해서 훈증하는 매트형 모기향 두 개를 몸에 매달면서, 조심스럽게 걸었던 기억이 난다.

밖으로 이렇게 놀러 다니는 것도 좋지만, 익숙한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좋다. 어쩌면 피곤한 몸을 뉠 집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여행 하는 동안 마음껏 놀러 다닐 수 있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모두들 가슴속에 쌓였던 앙금이 조금씩 누그러져서 시시한 농담에도 다시 피식피식 웃기 시작했다.  ‘클리어워터’ 시내에서 나름 리뷰가 좋던 ‘쌍용반점’에 찾아가 전형적인 북미식 중국 음식을 먹으며 묵혔던 감정을 씻어냈다. (음식은 그저 그랬지만…)


와피티 캠핑장 (Wapiti Campground https://www.pc.gc.ca/en/pn-np/ab/jasper/activ/passez-stay/camping#wapiti ) : 밴프 국립공원과 자스퍼 국립공원은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Icefields Pkwy)’라고 불리는 93번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자스퍼 시내 인근 도로 양방에 설립된 몇 개의 국립공원 캠핑장 중 하나이다. 캠핑장 자체에는 위락시설도, 산책로도 없어서, 다른 국립공원 캠핑장처럼, 단지 국립공원 관광을 위한 베이스캠프 정도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360개가 넘는 사이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샤워실이 2개밖에 없고, 그나마도 낙후된 시설인데, 최근에 이 지역 국립공원 캠핑장들이 순차적으로 리노베이션을 하는 거로 봐서는, 이 캠핑장 역시 조만간 리노베이션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까운 시내 : 자스퍼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1/5

이동통신 / 데이터 : 전화 가능, 데이터는 장소에 따라 뜨문 뜨문

프라이버시 : 3/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있음

시설 관리 / 순찰 : 2/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 3/5

나무 우거짐 : 2/5

호숫가 / 강변 / 해변 : 근처에는 없고 멀리서 보임 (아싸바스카 강 Athabasca River)

햇볕 : 4/5


북. 톰슨 강 주립공원 (North Thomson River Provincial Park https://bcparks.ca/explore/parkpgs/n_thm_rv/ ) : 자스퍼에서 캠룹스를 향해 돌아오다 보면 5번 고속도로 길 양편으로 작은 동네들이 계속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이 고속도로는 캠룹스까지 흐르는 ‘북. 톰슨 강 (North Thomson River)’을 따라서 놓여있고, 말하자면 그 작은 동네들 역시 이 강줄기를 따라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블루리버 (Blue River 푸른 강)’라는 동네를 지나서 계속 캠룹스를 향해 가다 보면 1시간 후쯤 나오는 동네 이름은 ‘클리어워터 (Clearwater 맑은 물)’이고, ‘북. 톰슨 강 주립공원’이 바로 이 ‘클리어워터’ 마을에 있다. (이렇게 놀랍도록 정직한 마을 이름들은 아마도 원주민이 지은 지역 이름을 영어로 그대로 옮겨오면서 발생한 것 같다. 서울 북쪽의 ‘일산시’ 역시 이런 식으로라면 ‘One Mountain’이라는 이름으로 옮겨지지 않을지)

캠핑장 주변으로 북. 톰슨 강을 관찰할 수 있는 아기자기한 산책로가 있는데, 가파른 오르막도 잠깐 나오고, 때에 따라 모기들도 넘쳐나는 곳이니 대비를 해야 한다.

가까운 시내 : 클리어워터

광역 밴쿠버로부터 접근성 : 2/5

이동통신 / 데이터 : 전화 가능

프라이버시 : 3/5

수세식 화장실 / 샤워실 : 없음

시설 관리 / 순찰 : 2/5

RV 정화조 : 있음

RV 급수 시설 : 있음

캠핑 사이트 크기 : 2/5  ~ 3/5

나무 우거짐 : 3/5

호숫가 / 강변 / 해변 : 클리어워터 강변이 멀리에 있음. 일반 산책로에서는 위에서 바라볼 수만 있음

햇볕 :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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