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당하기

그렇게 어이없는 잡 오퍼를 받고 나니까, 그냥 이 모든 게 다 무슨 소용이람… 하면서 심드렁해지더라. 어쩌면 절망감에 너무 빠져있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보호본능’이었을지도 모르겠어. 아무튼, 자존감이 떨어지면 가방 끈을 늘리는 게 당연한 건가? 그냥, 당초 계획대로 학교에나 가야겠다 생각이 되어서 주립 공과대학 학위 프로그램들을 알아봤는데, 컴퓨터 관련학과 들은 이미 3년 이상 대기기간이 있더라구. 내가 원한다고 해서 금방금방 학교에 갈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야. 애초에 학교에 갈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섬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예비 등록이라도 했어야 했던 거지. 뒤늦게나마 컴퓨터 공학과에 예비등록을 해놓고는, 학교 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기에 또 다시 하염없는 구직활동이 시작되었다. 노력을 한다는 건 물론 무척 고귀하고 존경받을 일이지만, 그게 다 보답을 받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정말 잔혹한 일이더라. 결국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있었던 거야.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목표 직종이 컴퓨터 수리 기사가 되었는데, 이건 내가 그나마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로컬 경력들에서 나온 결과였어. 동네 컴퓨터 가게에서 짧게나마 일한 경험도 있고, 그전 1년간 섬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고객 응대하는 일도 했었고. 그리고 파트타임으로 지인의 유학원 설립을 도와, 회사 컴퓨터 세팅이나 홈페이지 등을 만들었던 것들을 죄다 모아보니, 자연스럽게 그 직업이 답으로 나오더라구. 막상 이렇게 지원 목표가 좁혀지니 오히려 구직활동이 많이 편해지더라.

당시에는 밴쿠버에 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전무했기 때문에 (지금은 IT, Fashion, 의료 등 많은 기업들이 있지만), 모든 어린 사회 초년생들은 슈퍼마켓 같은 소매업체나 패스트푸드 /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고객 서비스 경력부터 시작하거든. 그래서인지, 여타의 다른 기업에 면접을 보더라도 고객 서비스 경력이 있는지, 팀플레이 경험이 있는 지는 아주 중요한 자산이 되는 거지.

때마침, 당시 내 구직 활동 케이스 매니저 분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미국 최대의 전자제품 양판장인 ‘베스트바이 (Best Buy)’가 캐나다 시장 진출을 위해 대규모로 채용박람회를 연다는 하는 거야. 그래서 또, 이력서와 커버레터 등을 다시 정리하고, 드레스 셔츠에 넥타이까지 하고 갔었지.

그런데, 나에겐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어. 커다란 회장에 여러 개의 부스를 마련해서는, 수백 명의 지원자들을 팀으로 나눈 후, 여기로, 저기로 끌고 다니면서 회사 소개를 하는데, 회사 소개라고 해도 지원자들을 그냥 강당 바닥에 앉혀둔 후 오리엔테이션 비디오를 틀어주거나, 적성검사 식으로 문제를 푼다거나, 손뼉 치며 환호를 유도하거나 하는… 뭔가, 다단계 판매 집단의 입소교육 같은 것처럼 느껴지더라.

이런 부스들을 몇 군데 돌다 보면 결국 면접 부스에도 도달하게 되긴 했거든. 그런데, 무슨 사이비 종교 집단처럼 너무나 과잉으로 유쾌했던 다른 오리엔테이션 강사들과는 반대로, 면접관은 아주 피곤하고 지겨워 죽겠다는 표정이더라구. 당연히 이력서는 미리 읽어볼 시간도 없었겠지. 이민 와서 정말 수많은 면접 경험을 갖게 되었는데, 이날 면접은 최악으로 세 손가락에 꼽힌다. 면접관도 면접자도.. 누구도 잘해보자는 의욕이 없는 상태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한 채 끝이 났다. 그 와중에, 영어가 너무 안 들리고 안 나와서 내내 비참한 표정이었다는 기억은 난다.

그 뒤로는, 뭐… 수십 번 ‘콜드콜 (Cold Call)’을 하고, 수십 번 이력서를 쓰고 몇 차례 인터뷰를 거치고 번번이 거절당하는 날들이 연속되었지. 호르몬이 왕성했던 10대, 20대 시절에도 거절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즉석만남이나 헌팅 같은 건 취향이 아니었는데, 나이를 먹고 난 후에도 역시 거절당하는 것엔 쉽게 적응되지 않더라. 이때 쌓인 트라우마 때문인지 아직도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지원자들이 탈락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그리고, 많은 인터뷰를 거치면서 영어실력 밑천이 없는 게 여실히 드러나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여기에, 나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면접관이 좋아할 만한 모범답안을 엉터리 영어로 준비하는 나 자신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로 하루하루 버틸 수는 있었어. 한 번은 어느 중국계 시민단체의 ‘멀티미디어 마케팅’직책에 지원해서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사실 그땐, 그 직책이 무슨 일을 하는 직책이었는지도 몰랐거든. 그냥 ‘멀티미디어’ 라는 단어만 보고 지원했는데, 사실 ‘마케팅’에 더 방점이 있는 직업이었던 거야. 면접 도중 ‘난 누구, 여긴 어디…’ 와 같은 극심한 현타가 와서 울상을 지었었나 봐. 하하. 그런데, 갑자기 면접관이 부랴부랴 차를 준비한 후에, 자기 시간을 들여서 이민자로서 어떻게 구직활동을 하는 게 좋은지 본인 시간을 들여 아주 정성스럽게 충고해 주는 거야. “세일즈를 하려면 바이어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듯이, 구직을 하려면 채용담당자와 같은 마인드를 가져라”, “제일 먼저 그 회사가 어떤 인재를 당장 필요로 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과 같은 얘기는 그 면접관한테서 배운 이야기야. 그 때는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허둥지둥 건물을 나왔지만, 그래서 이름도 얼굴도 잊어버린 분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얼마 지나서, 학교에 가기 위한 영어 레벨 테스트를  봤는데, (시험 보기 경력 20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성적이 아주 좋게 나오더라. 아니 그보다, 따로 고등학교 졸업 자격 영어 수업을 듣지 않고도, 곧바로 컴퓨터 공학과 수업을 들어도 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바로 이 직전까지는 영어 때문에 그렇게나 비참한 감정이었는데, 연이은 면접 강행군 덕분에 은연중에 회화 능력이 고속 성장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의외로 이렇게 시험 보는 게 사람을 격려하는 경우도 있더라구. 학교 다닐 때는 시험 치는 걸 그렇게 싫어했는데..  

수많은 구인광고들을 찾아보던 중에, 컴퓨터 수리기사 직종의 경우 A+ 자격증이 있으면 취직에 유리하다는 걸 발견했지. ‘베스트 바이 (Best Buy)’의 수리 서비스 팀인 ‘긱 스쿼드 (Geek Squad)’를 포함해서 몇몇 회사는 아예 필수조건으로 넣어 뒀더라구. 어차피 학교에 입학하려면 아직도 대기기간이 철철 남았기 때문에 동네 도서관에서 관련 참고서를 빌려 공부를 했었다. 마침, 지인의 소개로 (주인이 휴가를 떠나는) 액세서리 가게를 일주일간 봐주기로 했는데, 무척이나 한가한 알바여서 참고서 두 권 분량을 공부하는데 아주 적당한 시간이었고 생각보다 쉽게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이 종이조각 하나가 그렇게나 도움이 될 줄은 몰랐지.

북미에서 대부분의 구직과 채용이 인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대해 불평만 할 뿐이었지, 그 이유까지는 생각이 미치질 못했었던 거야. 인맥을 통해서 하는 채용을 선호한다는 건, 채용할 인력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증을 필요로 한다는 보수적인 태도 때문인데 (나중에 그 직원이 사고 쳐도 뽑은 사람 입장에서 면피할 수 있다는 거지), 그렇다면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자격증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었어. 그것도 한번 사고가 나면 그걸 메우는데 비용을 더 많이 써야하는 큰 회사일 수록 보수적인 채용을 한다는 거지.

자격증을 취득한 후, 이력서에 한 줄 추가해서 또 계속 구직활동을 했는데, 하하, 너무나 어이없이 쉽게 취직이 되어 버렸다. 그것도 바로 집 앞에 있는, 로컬 중견기업 L 마트 컴퓨터 매장의 수리 기사로.

나중에 듣자 하니, 내 직전에 일했던 컴퓨터 기사는 당시 매니저랑 같이 일하면서 말대꾸가 심하고, 지시를 무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말대꾸를 잘 못할 만한 이민자를 채용했다는 후문이었는데, 기분이 충분히 나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당시 나로서는 정말 천지신명에게 감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섬에서 나와 6개월간 쉴 새 없이 거절당한 후 2005년 7월에 생긴 일이야.

수리기사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인 금전 등록기 조작이나, 고객 서비스를 해야 하는 법이라서 L 마트의 신입사원 공통 연수에 참가해야 했었지. 처음에는, 일주일간의 오리엔테이션 기간을 과연 내 영어 실력으로 버틸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연수를 마쳤다. 더불어, “아… 이 정도면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들어도 어느 정도는 따라잡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생기고 말이야.

그리고 막상 회사에 출근하니까,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다른 나라 이민자들도 다 같이 일하고 있더라. 물론 하는 일도 다르고, 종종, 손님들의 문의 사항을 이해 못했을 때 원어민 동료의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모두 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서, 또 인정을 받고 있더라구. 그런 걸 보고 있자니, 영어가 안되는 상태에서 현지인 직장에 취업을 시도하는 건 물론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 분명하지만, 정작 거기서 일 하는 건 그렇게 까지 어려워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중국, 필리핀, 인도, 이란에서 갓 들어온 이민자들도, 다 자리 잘 잡고 일을 하는데 말이지. 뭐든지 용기를 낼 때까지가 제일 힘든 법이었어.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