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몰하는 배 속에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L 마트에서의 컴퓨터 수리 일은 10년 하고도 6개월을 더 하고 직종을 완전히 옮기게 되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솔직히 2년을 버틴 회사가 없었는데, 철이 든 건지 아니면 이민생활 구직 과정의 혹독함을 뼈에 사무치게 배워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를 아는 모두, 그리고 나조차도, 내가 넥타이를 매는 직장에서 10년 넘게 견디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지. 하하.

처음에는 현지 직장에 취직했다는 사실 그 자체 만으로도 너무 황송하고, 안 잘리고 매일매일 버텨내는 나 자신도 대견스럽더라. 고객 서비스에 중점을 두는 회사여서 고객한테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회사 내 직원들끼리는 제법 분위기 좋았는데 (마치 훈련이 많은 부대일수록 내무반 분위기가 좋은 것처럼), 담당하고 있는 컴퓨터 부서랑 TV 부서에는 비슷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어린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영화, 게임, 컴퓨터 등 여러 가지 대화도 통하고 좋았다. 또, 뭐, 나름 업무능력도 인정도 받아서 승진도 하고 입사 1년 반 후에는 동종업계에서 최고대우를 받기도 했지만……

하지만 캐나다 사회도 오프라인 소매업의 생존 자체가 점차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어. 회사에서는 (그리고 아직도 많은 시장 전문가들 입장으로는) 가장 큰 원인은 온라인 쇼핑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역시, 그럼 왜 온라인 쇼핑 시장이 성장을 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되지 못해. 사실 누구나 다 알고 있지. 왜 온라인 쇼핑이 오프라인을 계속 계속 이겨내는지. 다름 아닌 가격경쟁력. 하지만 누구도 입밖에 쉽게 꺼내질 못하는 거야. 바로 부동산과 직원 고용에 기대고 있는 오프라인 매장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꼴이 될 테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도 있지. 온라인에 비해 오프라인의 우월한 점 (사람이 직접 도와주는 서비스.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는 경험 등.. 그래서 태생부터 배송 판매로 시작한 애플 역시 오프라인 매장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소비자들은 가격을 선택하는가? 전후 경제 호황기를 거쳐 온 북미 사람들에겐 생소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한국이나 중국이 개발도상국일 때 이민 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고 당연한 일이야. 왜 서비스가 아닌 가격을 선택하냐고? 바로 소비자들이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기 때문이잖아.

사회가 양극화되고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가난해진 상황에서, 기업의 입장에서는 노동자 / 소비자에게 계속 저임금을 지급하는 채로 시장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저비용 생산기지를 만드는 것 밖에 없었던 거지. 그래서 중국산 제품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고, 또 중국 제조사들끼리도 가격경쟁을 하다 보니까 품질이 유지될 수 없었다. 결국 신자유주의 경제에서 사회 양극화는 컴퓨터마저도 일회용품으로 둔갑시키게 된 거라고 봐.

L 마트에서 오래 전부터 일해 온 동료들 얘기를 들어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컴퓨터 세일즈 커미션을 모아서 집 월세를 낼 수 있었다고 하더라. 보통 판매 이익의 20%를 커미션으로 받고, 당시 한 달 렌트를 500불이었다고 가정한다면, 한 달에 컴퓨터를 15대 정도 판다고 했을 때, 컴퓨터 한 대당 회사 마진이 최소 167불이 되었다는 얘기가 되는 셈인데, 2005년 이후부터 내가 회사를 다니는 동안엔 솔직히 대당 50불 이상 마진이 남는 컴퓨터를 찾기는 힘들었어.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노트북 컴퓨터 하면 의례 2000불이 넘어가는 게 당연했었는데, 2000년대 말이 되자 300불 400불 하는 노트북도 쏟아져 나왔더라구. 미쳐 돌아가는 가격경쟁 속에서 오프라인 매장도 제살 깎아먹기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

이렇게 되니 회사 입장에서는 온라인과 싸우기 위한 경쟁력의 일환으로 고장수리 서비스를 강화할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처음에는, 왠지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우쭐한 적도 있었는데, 하지만, 당장 영업이익을 맞추기 위해서, 그리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일즈 매장 직원들을 서서히 줄여나가더라구. 이 때문에 종종 세일즈 매장을 커버하기 위해, 하던 수리를 팽개치고 나서는 일이 많이 생기게 되었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리 서비스 실적을 올리라는 끝없는 압박을 계속 받았기 때문에, 결국 더 노력해서 수리를 더 빨리 하는 수밖에 없었던 거야. 이렇게 노동강도가 점점 세지는 동안 당연하게도 급여는 제자리.

사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컴퓨터 수리를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 보면 이 바닥 상황이 애초부터 그랬던 것이고, 오히려 캐나다가 그동안 그냥 너무 놀고먹고 살기 괜찮았던 것으로만 보일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운영체제 재설치 및 세팅 같은 것의 경우 일반적으로 120불이 평균 가격이었거든. 바이러스 제거는 160 ~ 200불. 간혹 다른 나라에서 온 유학생이나 관광객 손님들 컴퓨터를 고칠 일이 있었는데, 미리 예상 비용을 귀띔 해주면 아니나 다를까 완전 도둑놈 쳐다보는 눈빛을 보내더라.

하지만, 일반적으로 캐나다 사회에서는 기술이 있고 그 기술을 사용해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주고, 그 기술의 혜택에 어느 정도 비용을 지불하는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보기엔 어이없는 가격이지만 그 돈을 선뜻 내고 컴퓨터 수리를 해왔던 거지. 그런데 중국에서 제조하는 컴퓨터의 가격이 미친 듯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직종을 바꾸기로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던 Intel Compute Stick의 경우 처음 시장에 나올 때 US달러로 $79이었다. 이게 고장 나면 과연 누가 돈 주고 고치지?

그리고, 그동안 컴퓨터 수리의 주 고객층은 베이비부머, 그러니까 50~60년대생으로 80년대 중반부터 형성된 퍼스널 컴퓨터 문화에 미처 적응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었거든. 하지만, 이 세대들의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한편으로는 태어날 때부터 컴퓨터 / 인터넷과 함께 자라온 자식, 손주들이 직접 가족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수리 비즈니스 시장이 점점 작아져만 가는 게 확연히 보이더라구.

여기에, 윈도즈 8이 나오면서.. 사실상 윈도즈는 더 이상 고장이 안 나는 운영체제가 되어버리더라구. 바이러스에 걸렸더라도 아주 쉽게 그 이전 시점으로 복구하는 게 가능해지고, 고장이 나더라도, 구글과 유튜브를 통해서 비교적 복잡한 소프트웨어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가 해결을 하게 된 거야

마지막으로 태블릿이 하나의 컴퓨터 대용품으로 자리 잡았고, 동시에 퍼스널 컴퓨터도 점점 크기가 작아지면서, 부품이 고장 날 경우 수리센터에서 작업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더라. 마침 물류비용이 저렴해지니까, 제품을 캐나다 동부에 있는 공장으로 보내서 수리하는 일이 잦아졌어. 혹은 아예 매장에서는 그 자리에서 리퍼제품과 교환해주고, 고장난 제품은 중국 공장으로 보내기도 했고 말이지. 이럴 경우 수리기사가 하는 일이란 택배포장 그 이상이 아니게 된 거지. 그래서 현재 데스크톱 컴퓨터 판매 및 수리 시장은 PC게임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야.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가 겹쳐서 2000년대 말부터는 아주 진지하게 직종 변경을 시도하기 시작했고, 또다시 끊임없는 이력서 쓰기의 나날이 시작되었다. 아내나 친구들에게는 공공연히 내 취미는 이력서 쓰기라고 말하고 다니면서 주말마다 구직활동을 했어.

주로 일반 기업 IT 담당 (여기서는 IT support, Desktop support, Helpdesk라는 표현을 쓴다) 에 지원을 했지만.. 아무래도 쉽지 않더라구. 그 직책엔 또 그들만의 기준이 있었던 거야. 일례로, 지원자격에 “4년제 대학 컴공과 졸업자, 혹은 비슷한 현장 경력 및 자격증을 가진 자”라고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일차적으로는 아는 사람 소개로 온 사람을 먼저 뽑고, 그 다음에는 이 지역 학력을 보고 뽑는 것 같더라. 사실.. 현장 경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각각의 회사와 각각의 직책이 가지는 직무가 죄다 다르기 때문에, 학교에서 기초과정을 충실하게 밟아온 사람이 더 이래저래 써먹기 좋은 법이겠지만……

뭐.. 그렇게 해서, 직업을 바꾸는 건 학력미달로 (그리고 지역 네트워크 부재로) 번번이 좌절되고 말았지. 한번은 BC 지역의 한국통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거대 인터넷 서비스 기업에 지원을 하고 적성시험에서 엄청난 성적을 받아서 당시 면접관이 맨발로 뛰어 온 경우도 있었는데,  안되는 건 안되는 거더라구. 나중에 그 면접관이 따로 전화를 주더니 아깝지만, 전공자를 뽑았다고 얘기까지 해주더라.

거기다가, 2008년 금융위기 때문에 미국에서 엄청난 실업사태가 벌어져서, 미국 대기업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밴쿠버 구직시장에 뛰어들게 되었어. 어느 대학교 IT Helpdesk Job의 경우 시간당 18불 좀 넘게 받는, 말하자면 초급 직책 (Entry level job)이었는데, 이력서가 수백 통이 날아왔고, 그 중 IBM에서 IT support로 20년 가까이 일했던 사람이 뽑혔다더라.

거짓말 안 보태고 최소한 200여 군데는 이력서를 넣어봤던 것 같다. 그 중 막상 면접 단계까지 갔던 건 20여 차례 정도? 그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좋은 회사, 말하자면 남들도 좋다고 얘기하고, 실제 직원들 복지도 좋다고 알려진 회사는 면접자들을 대하는 태도도 확실히 달랐다는 점이었어. 인사 담당자뿐 아니라, 예비 관리자, 예비 동료까지 다 참석해서 구직자들의 얘기를 끝까지 듣고, 그 사람이 가진 장점을 어떻게든 철저하게 알아내 보려는 모습에 감동받은 적도 있었고. 반대로, 여기도 듣보잡 회사들의 대부분은, 정말 불성실한 태도로 면접에 응하는 경우가 많더라.

몇 년간 수많은 일자리에 지원하고 떨어졌지만, 막상 면접 탈락 후에 직접 전화를 걸어와서 “일단 학교에서 관련 수업을 들어라”라고 충고를 해준 회사는 딸랑 두 군데였어. 이렇게 이력서 내고, 면접 보고, 피 말리게 기다리고, 뭐 이런 나날들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러다 보니까, 이제 영어로 면접 보는 것 정도는 하나도 겁나지 않게 되더군. 하하하.

점점 심해지는 노동강도와 본사의 실적 압력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퇴직이나 이직도 점점 늘어나게 되었어. 근데, 본인 전공이랑도 전혀 다른 직업을 쉽게 구하는 동료들과 얘기를 해보면, 100% 친구 소개나, 가족 소개나, 가족의 친구의 소개로 새 직장을 구해 떠나 가더라구. 그렇다 보니까, 왠지 이직을 못하고 이 소매업계에 남아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일하는 내가, 뭐가 모자라거나 뭔가를 잘못해서 벌을 받고 있는 기분도 들더라.

나중에는 상태가 심각해져서, 손님들과 대화를 하다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했었다는 얘기가 나오면, 너무도 당연하게.. “아니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사에 취직해야지……” 이렇게 쉽게 말을 내뱉는 인간들한테, 언뜻언뜻 주먹이 날아가려고 까지 하더라구. 벌써 몇 년간 일해 온 현지 경력도 인정을 못 받아서 이직을 못하는 판국에 애니메이션이라니. 한편으로는, 한국의 대학 입시제도가 바뀌면서 밴쿠버에 조기 유학생 가정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유학생 인구에 의존했던 많은 한인 비즈니스들이 없어지면서 한인 경제의 한 축이 완전히 붕괴돼 버리더라. 그걸 가까운 데서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으로는 “으아아아악. 당장 이 회사에서 벗어나야 해”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나마 난 이런 직장이라도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안심하는 등, 이직준비자의 전형적인 양극성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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