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SCHOOL!!!

앞서, 많은 한국 이민자들의 직업은, 공항에 마중 나와준 사람의 직업에 따라 결정된다는 우스개에 대해서 얘길 했었는데, 만일 누군가, 신규 이민자가 나에게 와서 뭐 해서 먹고 살 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나는 (가계 재정이 허락하는 한에서) 두말 않고 학교부터 가라고 조언할 것 같아. 그만큼 밴쿠버 취업시장에서 현지 학력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L 마트 컴퓨터 수리기사로 이름을 날리는(?) 동안, 아내는 이웃 동네 시립 도서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었는데, 비교적 낮은 급여와 궁색한 복지혜택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어. 그 도서관에 오래 다니는 동안, 몇 차례 풀타임 직책에 지원해 보기도 했지만, 그곳도 나름 그 동네 토박이 카르텔이 남아있던 직장이어서 인맥이 없는 아내로서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지. 결국 학교에 가서 도서관 준사서 (Library Technician) 공부를 하기로 했고 (캐나다에서 ‘사서 Librarian’라는 직업은 석사학위 이상 가진 사람만 될 수 있고, 관리직이나 교육직의 위치에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학교에 다닌다는 이유로 근무 시간을 줄여 (관련 업무 네트워크를 유지하기 위해) 주말에는 일할 수 있었는데, 이건 뭐, 파트타임 시스템의 장점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아내의 경우, 처음 이민 결정을 할 때부터 와서 공부부터 하려고 했었고, 그래서 IELTS도 이민자용이 아니라 유학생용으로 시험을 봤었지만, 이미 시간이 제법 지난 터라 다시 또 입학 자격 시험을 봐야 하더라. 물론 그동안 이민자를 위한 ESL 정부지원 과정이니, ‘English 12’ (고등학교 영어과정 이수 자격으로, 다른 영어 자격시험과 달리 2년 시효가 없이 평생 자격이 유지된다) 며 여러 가지 영어 수업을 들어보려고 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수료할 수는 없었고, 결국 대학 입학을 위한 LPI (Language Proficiency Index. 영어 활용 검정 시험으로 입학 자격으로 차용하는 학교가 많다) 시험을 별도로 치르게 되었다.

예전에 고용보험에 대한 세미나에 참가했을 때, 고용보험 피수령 자격이 되면 직업교육에 드는 비용 및 생활비 보조까지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막상 몇 년 후에 일을 추진하려고 하니 또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있더라. (말하자면, 이런 종류의 모든 정부지원 들이란, 정부의 실업정책이나 이민자 정책에 따라서 하루아침에 손바닥 뒤집듯이 바뀔 수도 있다는 뜻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한인 이민자 시민권자 들이 캐나다 현지 선거나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냥 한인계 후보가 나오면 밀어주는 현실은 좀 아쉬운 일이지). 갖가지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하고 심사 결과를 기다렸는데, 결국 내 소득이 높다는 황당한 이유로 거절하더라구. 그래도, 일단 시험도 치르고 입학허가 (Admission)도 받고 했으니 학교에 가기로 했어.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경력이 끊기지 않게 아내는 파트타임 일을 계속해서 여기저기 전전해야 했어. 당연하겠지만 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어디서 풀타임 자리를 덜컥 주는 건 아니어서, 여기저기 온콜과 캐주얼 파트타임 자리에 이름을 올려두고는 끊임없는 구직활동 을 해야 했거든. 그래도 일단 온콜 직책이라도 발을 담그 고 있으면, 그 회사 내부 채용 정보를 우선적으로 받아볼 수 있는 장점도 있고 했으니까.

2010년 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간의 구직활동 끝에, 아내는 주말에만 일하러 나가던 공립 대학 도서관에서 정규직을 잡는데 결국 성공을 했다. 그것도 집에서 10km도 안 되는, 정말 모든 사람이 꿈 꿀만한 출근 시간 30분 걸리는 가까운 곳이었어. 우리처럼 아무 연고도 없이 이민 온 사람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 이겠지만, 사실 이렇게 현지 회사에 취직이 되는 건 90% 이상이 그냥 행운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그 행운이 왔을 때 그냥 쳐다만 보면서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졸업장을 따고, 관련 경력을 쌓고, 이력서를 써나가는 등 이빨과 발톱을 날카롭게 갈아두는 것이겠지.

취직이 되면서 아내가 무엇보다 기뻐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휴가비 (Vacation Pay)’ 더라. 그 이전 파트타임 일자리에서는 휴가비가 시간당 급여에 포함되어 나왔었는데, 그걸 뭐, 따로 하나하나 계산해서 저축하지 않는 다음에야, 휴가를 받을 때마다, 심지어 어디 놀러 가지 않고 집에서 그냥 쉬더라도 왠지 주머니가 얇아지는 느낌이었거든. 근데, 이젠 명실공히 놀면서도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던 거야.

그리고, 그로부터 1~2년 정도 지나니까… 이번엔 내가 도저히 L 마트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어. 2008년 경제위기 및 온라인 쇼핑과의 경쟁 때문에 줄여나간 현장 인력이, 이제는 줄이다 줄이다 못해 시간에 따라 두 부서를 통합해서 한 명만 배치하는 지경까지 이르더라구 (그리고 내가 퇴직한 이후에는 컴퓨터, TV, 카메라 세 부서가 결국 통합되더라).

게다가 같이 일할 동료들이 줄어서 업무량은 이미 내 능력 밖까지 초과했는데, 일반 세일즈 직원들에 대한 처우가 점점 나빠지니까 실력 좋은 동료들은 각각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나는 거야. 그 때문에 기존 내 업무에 신입직원 트레이닝까지 포함되게 되었고, 결국 집에 까지 업무를 들고 와서 트레이닝 매뉴얼을 만들기도 했어. 정말 “내가 이러려고……” 싶더라.

끊임없이 이력서를 넣어봤는데, 수많은 면접 경험 덕택에 말빨만 늘었을 뿐 실제 소득은 없더라구. 그리고 면접을 통해 좋은 인상을 서로 나눈 몇몇 회사로부터, 여기 현지 학교에서 공부를 해서 학력을 갖춰 보는 게 어떠냐는 후기를 들었거든. 그래서 짬을 내어 지역 공과 대학에서 컴퓨터 관련 단과 수업을 등록해 듣기 시작했는데… 아놔.. ㅋㅋㅋ 지금 20세기가 지난 지 십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DOS를 가르치는 걸 일주일 듣다가 그냥 취소했다.

필수 이수과정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지금 DOS 수업부터 들어서 언제 졸업하고 언제 취직한단 말이냐고. 그래서, 대신 독학으로 CCNA나 MCSE와 같은 컴퓨터 자격증 공부를 6개월 정도 했었는데, 그것도 당장 집에 서버를 구성하지 않은 채 실습 없이 해보려니 너무나 재미없기는 매한가지였어.

그러던 중, 예전에 B 섬에 있는 슈퍼에서 일을 할 때, 냉장고가 고장 나면 불렀던 수리기사가 별 일 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고액을 청구해 갔던 기억이 나더라. 하하하. 그리고 그때마다, 그 슈퍼 매니저가 ‘자신이 만일 캐나다에서 무슨 공부를 하게 된다면 반드시 냉동기사 공부를 하겠다’고 말한 기억도 났고. 곧바로 좀 더 리서치를 해보니, 냉동기사라는 직업이.. 그냥 괜찮다는 걸 떠나서, 여기선 상당히 고소득을 얻는 직업으로, 아는 사람만 알고 있는 그런 직업이었더라구.

배관기사, 전기기사, 자동차 수리기사, 용접기사와 같은 기능직들을 영어권 나라에서는 “트레이드 TRADE”라고 부르는데, BC 주에서 이 트레이드 직업 중 가장 시간당 급여가 높은 두 직업이 엘리베이터 기사와 냉동/공조 (에어컨) 기사더라구. 그 중에서 또 냉동/공조 기사는 여름에는 거의 매일 오버타임을 하니까 경력자의 경우 12만 불 연봉이 대부분 가능하다더라. 특히 BC의 경우, 딱히 다른 생산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개 소매업이나 관광업, 식당들이 주력산업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항상 필요한 것이 괜찮은 냉동/공조 컨트랙터(서비스 업체)였던 거였어.

뭐.. 사실 에어컨 수리 같은 건 주말이든 밤이든 참고 넘기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냉동의 경우 눈 앞에서 식자재가 녹아내려 가는 걸 봐야 하니 주말이든 밤이든 언제나 바쁘다. 2021년 현재, 자격증을 딴 냉동노조 소속 정부 공인 기사 급여는 시간당 $63.97 (휴가비 및 각종 복지 혜택이 포함된 총 합산금액 Total Compensation) 인데, 여기에 야간근무, 주말근무 수당까지 합치면 그게 얼마가 되겠어.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냉동 수리기사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아가지고, 내 주변의 한인 지인들 중에서 뭔가 정보를 얻는 걸 기대하기 아예 상상도 못했고, 결국 하나하나 직접 찾아 다니게 되었지. 지역 공과대학 BCIT (British Columbia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주최하는 설명회에도 참여해 가면서 말이야.

아내는, 처음에 내가 트레이드를 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이 양반이 무역상이 되려나…” 하는 반응이었지만, 설명을 듣고 나서는 몸을 써야 하는 분야라는 것에 더 걱정을 하더라구. 뭐, 운전도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고, 전기도 많이 만져야 하는 직업이니 당연히 안전사고 위험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엘리베이터 수리와 같은 다른 고소득 트레이드처럼, 내 실수로 누군가를 죽일 위험이 전혀 없는 직업이라는 부분도 아주 매력이 있었다. 그리고, 만일 공부를 다 마쳤는데도 취직이 안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항상 배우고 싶었던 산소 용접은 배우고 나오니까, 그것도 나름대로 매력이라고 볼 수도 있더라. 하하하.  

BCIT에는 여러 가지 냉동기술 과정이 있었는데, 3년짜리 학위과정은 이미 5년간 대기 명단이 있더라구. 게다가, 일단 이 냉동기사라는 분야가 내가 좋아하게 될지 아닐지도 몰랐기 때문에, 겸사겸사 6개월짜리 기초과정 (Foundation Course)을 신청했고, 마침 결원이 생겨서 2013년 그 해 가을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이 잘 되려니까,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채 트레이드 직업 교육 ‘기초과정’을 듣는 이민자를 대상으로, 이민자 봉사회와 BC 노동부, BC 산업인력공단이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었어. 사실, 풀타임으로 공부를 하려면, 당연히 일하는 시간이 줄고 벌이도 줄 수 있는 상황인데다가 학비까지 만만치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수업료, 교재비 등등 일체를 지원해 준다니 어지간히 고마운 일이 아니더라구. 게다가 그때 마침 담당 케이스 매니저 분이 한인 이민자 1세대분이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었어 (하하.. 그때 고생했던 기억은 안 나고, 이렇게 우연히 하나하나 맞아떨어진 기억만 나니 마치 거짓말 같구나).

풀타임 수업이라서 주중 아침 7시부터 2시까지 6개월간 계속 등교를 하고 실습을 해야 하는 코스였어. 당연히 회사 근무시간은 조정을 해야 했지. 사실, 몇 해 전부터 다니던 L 마트에 염증을 엄청 느끼고 있던 터였는데, 갑자기 더 악랄한 (임무를 맡고 부임한) 지점장이 와서 횡포를 부리자, 5년 넘게 다니던 지점에서 집과 가까운 지점으로 옮겼었거든. 그러던 와중에 정규직 자리를 반납하고 다시 파트타임 노동자가 되었었어.

뭐.. 이제.. 아내도 정규직이 되었고, 아내 회사 보험에서 각종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가 더 이상 정규직에 목을 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긴 했지. 근데 정규직을 반납한 게, 오히려 내가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근무시간을 더 유연하게 쓸 수 있게 만들어 줄 줄은 누가 알았겠어?

근데, 막상 지역 공과대학에서 풀타임으로 수업을 들을 생각을 하니, ‘과연 내 영어실력으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안들 수가 없었지. 그동안 가계 재정상황 핑계를 대곤 했었지만, 사실 이 ‘영어실력’ 이라는 문제가, 나에게 있어서 이제껏 학교에 가서 공부를 할 결심을 방해해 온 것일지도 몰라. 물론 학교에 지망하기 전에 대학 수학 능력 시험과 같은 형식의 수학, 물리, 영어 시험을 봤었지.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기는 했는데. 그래도 뭐.. 시험성적과 실제 수학능력은 다를 수도 있으니까.

2013년 가을부터는, 5시 반에 일어나서 7시까지 등교를 하고, 낮에는 수업을 듣고,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일을 하고, 토요일에는 풀타임으로 L 마트에서 일을 하는 일정이 시작되었어. 열역학과 냉동 분야는, 사실 처음 공부하는 분야라서 처음에는 좀 헤매긴 했었는데, 그래도 그럭저럭 따라갈 수 있더라. 제도 (Drafting), 수학이나 기초 물리, 전기는 뭐, 중고교 시절부터 워낙 좋아하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반 친구들을 많이 도와줄 수도 있었고. 가장 힘든 부분은 각종 공구나 부품 명칭을 외우는 거였지. 내가 한국에서도 공구를 많이 써와서 더 어렵더라구. 여기는 ‘닛빠’, ‘뺀치’, ‘빠루’ 같은 식으로 부르질 않으니까.

여기 백인 남자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아빠한테 차 엔진오일 가는 것부터 해서 이런저런 기계를 만지는 걸 배워서 그런지 실습에는 능한 경우가 많았지만, 수학이나 물리처럼 이론이 필요한 부분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더라.

애초에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장래 직업에 대한 이런저런 일을 찾고 있던 아이들이어서, 몇몇은 수업에 진지하지 않았고, 몇몇은 고딩 때 마인드로 나처럼 버벅버벅 거리면서 말하는 사람을 낄낄거리면서 업신여기기도 했었는데, 막상 코스가 진행되면서 어려운 과정도 내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같이 정보도 나누고 하는 걸 보고 나니 금방 친해지게 되더라 (북미 문화에서 놀랐던 점 중 하나는, 뭔가에 우수한 사람이나 뭔가를 성취해낸 사람에 대해 꾸밈없이 인정하는 풍토이다. 마치, 루돌프 사슴코처럼, 이전에는 왕따를 당하다가도 산타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 동료 사슴들도 모두 인정하는 식이야).

그보다, 수업을 들으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강사가 학생을 대하는 태도였어. 아직 서구권에서는 트레이드가 백인 남성이 주류인 직군이다 보니까, 몇 십 년동안 일을 해왔고 그 경력으로 강사가 된 사람들의 태도는, 정말 경악할 정도로 차별적이고 권위적이더라구.

게다가 학생들도 대부분 갓 고딩 때를 벗은 아이들 이었고 직업을 구하는 상황이어서인지 몰라도 위압적인 강사의 태도에 고분고분 말을 또 잘 듣는 거야. 한국에서 국비로 운영하는 대우전자 수리센터 교육을 받으러 다닐 때에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 이 학교는 80년대 무슨 고등학교에서 수련회 같은 거 가던 기분이더라구.

그리고 또 힘들었던 건, 다름 아닌 단위. 아니 왜 캐나다는 공식적으로 미터법을 쓴다면서 여기선 죄다 파운드법으로 가르치는 거냐? 그냥, 냉장고며 에어컨이며 죄다 미국 제품을 쓰고, 업계에서 아예 파운드법으로 통용해 쓰니까 어쩔 수 없이 학교에서도 파운드 단위로 가르치더라구.

처음엔 어떤 단위를 보면 그걸 머릿속에서 다시 미터법으로 환산한 후에 설명을 하나하나 재해석하느라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었는데, 애초에 열역학의 많은 부분이 영국에서 파운드법으로 개발이 되었기 때문에 – 예를 들어, 냉동고의 기본 온도 설정이 화씨 0도 라든지 (섭씨 -18도), 1 파운드의 물 온도를 화씨 1도 바꾸는데 필요한 열량이 1BTU라든지 (미터법에서는 1g의 물 온도를 섭씨 1도 바꾸는데 필요한 열량은 4.184줄) – 오히려 암기에는 쉬운 부분도 있었다.

어쩌다 보니까, 수업도 잘 따라잡았고 특히 제어장치나 전기 부분에 있어서는 거의 완벽한 점수를 받고 졸업을 하게 되었다. 낮에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작은 카드에 다시 옮겨 적어서, 그날 밤, L 마트에서 일하면서 복습을 하기도 했고. 하하, 당장 지금 이 글도 현재 직장 근무시간에 쓰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당시에도 여러 이유로 한가해진 L 마트의 파트타임 근무시간을 적극 활용해서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더불어 20여 년간 숙달된 시험 보기 신공 덕분에 1등으로 졸업할 수 있었다. 하하하, 하지만, 1등으로 졸업한 건 취업에 있어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더라. 어느 회사라도 생면부지의 아시안 이민자에게 일자리를 넙죽 줄 리는 만무했던 거지. 이 당시에는 또, 냉동 트레이드 자체에 아시안이 거의 없었거든. 그렇지만, 누구나 처음에는 죄다 씬삥에 어리버리할 테니까, 전에 학교에서 냉매 압력이라도 한번 재보고, 용접 토치라도 한번 만져봤다고 하면 조금이라도 채용에 고려대상이 되는 건 사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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