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 트레이드의 파생상품

애초에 컴퓨터 수리를 하다가 냉동/공조 일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기초과정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실 냉동 수리 일을 얼마나 오래 하게 될 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었어. 물론, 냉동일 그 자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선 뭐, 지금부터 배워가는 과정이고, 현장에서 일하면서도 꾸준하게 배우면 될 테니 딱히 걱정은 하지 않았고, 캐나다 트레이드 일에 필요한 근력 정도는 어느 정도 늙을 때까지는 유지하고 있을 자신도 있었어. 또 힘들면 쉬어가면서 해도 되는 거고 말이지. 그런데, 모든 종류의 고장 수리 업무에 있어서 꼭 빠지지 않는 것 – 간절하고 다급해하는 고객과 실랑이하는 경험만큼은 컴퓨터를 고치면서 겪을 만큼 겪었는데도 도무지 적응이 안되더라구.

게다가 난 운전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잖냐. 심지어 게임조차도, 레이싱 게임은 절대 안 하는데 말이지. 이런 냉동/공조 수리 일은 기본적으로 하루에 최소 2시간 이상은 운전을 해야 했으니까. 결정적으로, 출장수리 서비스 직종에 있어서 필수적인 24시간 당직 대기 (On Call Standby) 주간은, 나처럼 계획대로 일이 흘러가는 걸 좋아하고, 주어진 일을 빨리빨리 쳐내고 쉬는 걸 선호 하며, 돌발상황에 스트레스 많이 받는 사람의 피를 바짝 바짝 마르게 하더라.

그래서 학교에서 다닐 때나 이후 1년차 어프랜티스 일을 할 때, 냉동/공조 전문가로서 내 최종 직업에 대해서 그림을 그릴 때마다 냉동기기 고장 수리 기사라는 직책은 선택에서 배제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이 경력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이것저것 찾아보기도 했었지.

예를 들어, ‘DDC 기사 (Direct Digital Control Techni cian)’라는 일은 기본적으로 냉동/공조 기기의 운용 및 제어를 컴퓨터 네트워크로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및 관리를 해주는 일인데, 주로 실내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이라 근력 소모도 훨씬 적고 날씨의 영향도 적게 받는 일이었고, 마침 또, 컴퓨터 및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해서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던 내게는 딱 적합한 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뭐, 냉동/공조 수리 기사에 비해 급여가 훨씬 낮은 걸로 알려져 있었는데 (냉동기사 저니맨이 시간당 $50 받을 때, DDC 기사는 $30 정도 받는다고 들었다), 나로서는 높은 급여보다 좀 쉽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더 선호했었던 상황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이 DDC 일에 대해서는 학교 강사도 잘 몰랐고 현장 냉동/공조 기사들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더라구.

아니.. 그보다, 아무튼 이 바닥 사람들이, 특히 캐나다에서 태어난 백인 남성 트레이드 들의 경우, 다른 사람들 일에 별로 관심이 없더라.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데, 이 친구들이 트레이드에 들어온 이유가 이 일이 너무 좋아서 들어오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야. 그냥 가족의 권유나 친구의 권유, 혹은 가족의 친구의 권유를 통해서 선택했고, 딱히 특별한 재능이나 자질이 없더라도 최소한의 성실한 태도만 있다면,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기사가 될 수 있는 거거든. 그리고, 그에 대한 금전적 보상 역시 가족을 부양하기에 괜찮은 수준이기 때문에, 결국 이런 트레이드 들이 캐나다라는 나라의 중산층 가정의 뼈대를 형성하게 되는 거였어.

이후에 냉동/공조 일만 20~30년 해온 사람들과 얘기를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이들이 가지는 직업윤리란, 그냥… 만년과장 직장 출퇴근하듯이 해온 일을 계속하는 것일 뿐, 일 얘기보다 아이들 하키나 본인들 휴가 때 하는 낚시, 사냥.. 그런 얘기들이 더 많더라구. L 마트에서 컴퓨터를 고칠 당시, 매장에서 일하는 다른 동료들과 쉬는 시간에도 계속 컴퓨터와 게임, 영화 얘기를 계속했던 나로서는, 그리고 도서관에서 일하는 아내의 직장동료들과 만나더라도, 계속 책과 영화 얘기를 나누었던 나로서는, 저런 식의 직업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처음에는 알 수가 없었지.

‘DDC 기사’라는 직업에 관심 있는 사람을 위해 잠시 내가 아는 만큼만 서술해보자면, 현재 BC에서는 (그리고 아마도 캐나다 전체에서도) DDC에 대해서 제대로 가르치는 학교는 없는 것 같아. 냉동기술 교과서에 한 챕터로는 들어가 있지만, 디지털 신호나 반도체의 특성 등 실무와는 동떨어진 내용 뿐이더라구. 그리고 학교 강사들도 대부분 오랜 경력을 가지고 은퇴한 현장 냉동 기사 출신이라서, 심지어 전자 기술 이론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아.

결국 DDC 전문 업체에 먼저 들어간 다음 OJT (On the Job Training 현장 직무 교육)를 통해서 배우는 수밖에 없는데, 이 DDC 전문 업체라는 것들이 대개 큰 기업 들이고 신규채용이 별로 없어서 애초에 취업기회를 찾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어.

현재 BC에서 DDC 설치, 관리로 유명한 회사로는 ‘Johnson Control Inc.’, ‘TRANE’, ‘ESC Automation Inc.’ 등이 있는데, 모두 미국 회사이고, DDC 뿐만 아니라 냉동/공조와 화재경보 및 건축 설비 전반을 책임지는 대형 설비 회사들이야. 2020년 현재 TRANE의 경우 일반 냉동기사 중에서 DDC 업무를 잘하는 사람을 뽑는 반면에, Johnson Control의 경우 DDC 기사를 따로 채용하고 급여체계도 다르다고 하더라.

DDC 일을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 당시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보니, 차선책으로 생각했던 건 일단 저니맨 냉동 기사로 경력을 쌓은 다음, 그 이후 다른 쉬운 일을 찾아 보는 옵션이었어. 예를 들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선택지에 있었는데, 내가 기초과정을 다녔던 BCIT에서는 계속해서 채용 기회가 있었고, 급여 수준은 뭐, 일반 저니맨 냉동 기사의 70% 정도 수준이었지만, 업무강도를 고려하자면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되더라구. 대부분 최소 저니맨 경력 7년이 필요했고, 수리기사 일을 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은퇴하는 사람들이 아주 선호하는 직업이라 경쟁이 치열했지만, 냉동 기술 외에도 다른 전기/전자 기술에 대해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어느 정도 승산이 있어 보였다. 일단은 빨리 저니맨이 되고 최소 7년 경력을 쌓는 게 먼저 필요했지만.

또 다른 선택지로는 일반 회사 건물 공조시설 관리하는 직업으로 빠지는 것도 있었다. 특히 학교나 병원 등 공공시설 관리를 하는 직업은, 급여의 경우 일반 냉동 수리 기사의 70% 수준인데, 업무강도에 있어서 훨씬 수월하고 직장 자체도 아주 안정적인 데다가 각종 사원복지가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서, 이 역시 은퇴한 냉동/공조 수리 저니맨 기사들이 아주 선호하는 직업이야.

무엇보다 여기저기 출장 서비스 장소로 트럭을 몰고 이동할 필요 없이 정해진 한 군데 직장으로 출퇴근 (그것도 공공교통을 이용해서) 할 수 있다는 점이 나로서는 아주 마음에 들었지. 하지만 이 역시 대개의 경우 최소 5년의 저니맨 경력을 요구하더라구. 역시 현재 회사에 충성해서 빨리 저니맨 자격증을 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만을, 계속, 반복해서 깨닫는 날들이었어.

이 때문에, D 식품에서 일을 하는 동안 내내, 특히 일이 고되면 고될수록, 빨리 학교에 가서 2, 3, 4년차 공부를 마치고 어프랜티스 수습 시간 총 7,220 시간을 채워서 저니맨 자격증을 따는 것이 간절했어. 그리고 그럴수록, 이리저리 핑계를 대면서 학교에 보내주지 않고, 어프랜티스 수습 시간을 근무시간의 일부분만 등록을 해주는 D 식품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지. 한편으로는, 이렇게 D 식품에서 주방 기계만 설치 수리를 하고 있다가는, 과연 내가 저니맨 자격증을 따더라도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건물 시설을 관리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고.

겨울과 봄 내내 여기저기 에스프레소 기계를 설치하다 보니 여름이 돌아왔고, 6, 7, 8월 여름은 일반적으로 냉동/공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신 없이 바쁜 시절이었는데, D 식품 역시 ‘100일 동안의 여름 (100 days of summer)’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쏟아지는 업무량에 대비를 하고 있던 차였어. 마침 6월이 입사한 지 1년이 되는 달이어서 은근히 급여 인상을 기대했었는데, 급여 명세서를 보니 딸랑 시간당 1.5불 오른 걸 발견하고 결국 폭발해버렸지 뭐야.

사실, 일반 회사 기준으로 볼 때, 일 년에 5% 이상 급여를 올려준다면 아주 고마운 일이겠지만, 당시 냉동/공조 트레이드 어프랜티스의 경우 6개월, 혹은 1000 시간 근무를 채울 때마다 (최종적으로 저니맨 급여 수준으로 오를 때까지는) 5불씩 올려주는 게 이 바닥 에서는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일년을 일했는데도 10불은 고사하고 1.5불 인상이라니…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더라.

당장 매니저 사무실에 뛰어 들어가 난동을 부렸는데, 이미 임금협상의 여러 가지 상황에 능숙했던 매니저는 회사 경영상의 이유와 동시에 내가 아직 2년차 학업을 안 마쳤다는 사실을 들먹이더라구. ‘아…. 그랬었구나. 급여 인상을 해주기 싫어서, 학교에도 안 보내주고, 시간도 제대로 보고를 안 해준 거였구나…’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그때서야 깨닫게 되었지.

‘아… 이젠 몰라. 일단 때려치우고 냉동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회사를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표를 던지겠다’는 심정으로 “2년차 학업이라고!! 내가 가겠다고 하는 걸 네가 못 가게 한 거잖아!!”라고 꽥 소리를 질렀지. 그랬더니, 여름이 끝나면 곧바로 학교에 보내주고 학교를 마치면 급여도 제대로 올려주겠다고 다급하게 다짐을 해주더라. 사실, 나 역시 빨리 저니맨이 되고 싶어 했던 이유가 결국 이 회사를 빨리 두고 싶어서라는… 그리 순수한 동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 정도에서 타협할까 했지만, 화가 난 김에 “입사할 때 학교에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엎었는데, 지금, 내가, 니 말을 어떻게 신뢰를 할 수 있냐!” 라고 따졌더니 허겁지겁 “각서 (Written Memo)” 를 써주겠다고 하더라구. 이때까지 짐짓 얼굴에 인상을 쓰고 있었는데, 각서를 써주겠다는 말에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그래.. 뭐.. 이미 여기 애기들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건데 뭐… 45살에 저니맨 되나, 50살에 저니맨 되는 거나… 뭐 얼마나 다르겠어,,?’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이렇게 D 식품에서의 2년차 업무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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