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

2015년 겨울, 회사에서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여할 건지 여부를 확인하는 메일을 받았다.

북미 지역에서 가장 큰 명절이라면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인데,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도 가족들이 모여서 같이 저녁을 (주로 칠면조 요리를 메인으로 한 대규모 식사) 먹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처럼 전부 모여 선물을 주고받고 하하호호 웃는 날은 없지. 특히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가족 간의 선물교환이 빠지질 않는데 이 역시 사람들에겐 커다란 고민거리가 되기도 해. 보통 10월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하는 선물 쇼핑은 11월 말에 가장 정점을 이루게 되는데, 미국 추수감사절 금요일을 ‘블랙 프라이데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야. 바로 이 날이 미국의 모든 소매업들이 흑자로 전환되는 날이기 때문인데, 덩달아 가장 큰 폭의 할인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날이기도 하고 말이지.

캐나다에선 예전에는 ‘블랙 프라이데이’ 대신 ‘박싱데이 (Boxing Day)’라고 해서 크리스마스 다음 날 (12월 26일) 에 대규모 할인 행사를 했었는데, 마치 부활절 다음 날부터 모든 슈퍼마켓에서 토끼 모양 초콜릿을 떨이로 파는 것처럼,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준비했던 모든 재고들을 박싱데이에 할인 가격으로 밀어내고는 했었어.

하지만 2008년에 미국 경제 위기가 터지면서 미국 달러 가치가 캐나다 달러 가치보다 낮아지는 사태가 일어나니까 많은 캐나다 사람들이 국경을 건너 미국으로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을 가는 일이 벌어졌고, 이때를 기점으로 캐나다의 대부분 소매업체들 역시 미국 추수감사절에 맞춰 블랙 프라이데이 행사를 시작하게 된 거지.

비단 선물을 주고받는 가족 모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장에서 연말이 되면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게 되는데, 직장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서 파티의 규모도 보통 달라지고는 해. 어느 게임회사에서는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을 빌려서 대규모 파티를 하기도 한다는데, 아내의 경우 공공 도서관과 공립학교 도서관 (세금으로 운영되는 회사) 만을 전전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직원들끼리 조촐하게 피자를 나눠 먹는다든지 포틀럭 (Potluck Party 각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가져오는 파티)을 한다든지 하는 파티만을 해왔고, 그래서인지 법인카드로 근사한 식당에 가서 먹는 파티를 그리워하기도 했었어.

내 경우는 L 마트를 10년간 다니면서 크리스마스 파티에 계속 초대받기는 했지만… 이때만 해도 회사 상사들이랑 같이 밥 먹고 술 마시고 하는 자리에 대해 트라우마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질 못한 시기였었는지 왠지 내키지 않았었어. 그리고 L 마트의 경우 입사 1년이 지나자마자 계속 회사를 탈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기 때문에 무슨 추억 같은 것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파티 장소로 선정된 식당들이… 그냥 그렇더라구. 그냥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곳을 빌려서 했었는데, 굳이 내 시간을 들여서 여기서 직장 상사들이랑 밥을 먹어야 하는가 싶었지. 아! 그리고 참가비도 내라 그러더라. 그래서, L 마트에 다니는 동안엔 회사 파티에는 참가한 적이 없고, 대신 같이 일 하는 직원들과 시간을 맞춰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곤 했었어.

D 식품의 크리스마스 파티 초대장을 보니까, 오.. 이건 무슨 신문에서나 보던 근사한 식당인거야. 게다가 커플이 같이 초청되고 술도 포함되는 파티더라구. 여기선 회사 파티나 심지어 결혼식 피로연에서도 술은 각자 사 먹어야 하거나 제한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듣자 하니 광역 밴쿠버가 아닌 다른 지역 – 밴쿠버 아일랜드, BC 북부, BC 동부 지역 등 – 에서 오는 직원들에게는 항공편 등, 교통편 제공과 더불어 밴쿠버 다운타운 호텔도 잡아준다고 하더라. 또한 밴쿠버 지역에서 오는 직원들의 경우 음주 후 안전귀가를 위한 택시요금까지 지불한다고 하는 걸 보고 완전 감동받았지 뭐야. 역시… 알짜배기 중소기업이 좋긴 좋구나 싶더라. 이전 연도까지는 추첨을 통한 대형 TV와 같은 대박 선물도 있었다고 하는데, TV에 당첨된 직원이 그 다음 주로 사표를 내는 바람에, 2015년부터는 선물을 없애고 식당 등급을 올렸다는 소문도 있었고, 뭐.. 복권으로 재미를 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이 기회에 딸라 표시가 4개 붙은 식당에 가 보는 경험이 더 좋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파티 당일, D 식품의 앨버타 지점에서 수리기사를 빌려 우리 대신 BC 지역 응급 서비스 콜을 담당하게 하고, BC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수리기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어. 출장 수리라는 직업의 특성상, 수리기사 각자 개인이 혼자 운전하고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아서인지, 이 날 처음 만나서 인사하는 직원들도 많았지. 근사한 음식들이 줄줄이 서빙되고, 적절하게 술기운도 돌고 하다 보니까 아주 즐거운 분위기가 한동안 계속되더라. 그리고는 광역 밴쿠버 지점에서 10년을 근속한 어느 직원에 대한 감사장 및 상품을 증정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회사 부사장이 와서 한다는 얘기가… 몇 해 전, 이 직원의 아들이 소아암에 걸려서 수술을 받는 날에도, 이 직원은 당직을 맡았고 응급 서비스를 다니면서 당직 기사의 책임을 다했다고 하면서, 회사에 대한 그의 성실성을 칭송하는 거야. 순간…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해지면서 분명히 내가 영어를 잘못 알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서 주변의 다른 직원들에게 거듭 확인을 했는데, 다들 내가 제대로 이해하는 게 맞다는 거야.

“아니, 여기가 내가 기대하고 있던 캐나다가 맞는 건가? 이건 무슨 한국의 좆소기업도 아니고, 아니 아무리 좆소기업이라고 해도, 보통 저런 식으로 비인간적인 노동 환경에 대해 회사 회식 자리에서 당당하게 얘기하나? 요즘 한국 조폭영화를 보더라도 자식 수술 날에는 금일봉을 주면서 일을 안 시키던데, 아니 무슨 회사가 조폭보다 못한거 지?”하면서 아연실색하게 되더라.

최근 어느 방송에서 구글의 직장 문화에 대해 소개하면서, 모든 먹거리와, 여흥 거리, 마사지에 심리치료 등 회사에서 모든 걸 해주는 대신에, 그에 걸맞은 실적 만을 요구한다고 하던데.. 바로 D 식품의 크리스마스 파티가 그랬던 거였어. 회사에서 괜찮은 수익이 났고 그걸 직원 복지에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직원들의 충성도와 근무태도를 고무시키는데 도움이 되고, 한편으로는 회사 비용으로 처리를 해서 세금 환급 등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는 거지만, 그게 절대로 직원 하나하나를 인간으로, 각 가족의 구성원으로 취급해서가 아니었던 거지. 그야말로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직원들, 수리기사들은 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거야.

그 관점에서 한번 회사를 보고 나니, 내가 이 좋은 회사를 다니면서, 왜 이렇게 몸도 마음도 힘이 든 건지 단박에 이해가 가더라. 예를 들어, 일을 하다가 종종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물론 출장비며 체제비 모두 지급이 되고, 이동하는 시간도 급여로 받고, 대부분의 경우 그 지역에 가서 잔업도 많이 하게 되기 때문에 (회사 입장에서도 비용을 들여서 출장을 보냈으니 실컷 부려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둑한 잔업수당도 챙기게 되거든. 처음에는 밤에 일을 마치고 맥주 2캔 사들고 호텔에 와서 한잔하는 맛이 죽여준다고 생각 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하고 보니 출장을 한번 가게 되면 그 주간은 일과 후 내 생활이 통째로 없어지는 거더라구.

내가 사는 동네에서 해왔던 일과 후 계획들 –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을 만나고, 동네 산책을 하고, 혹은 거실 소파에 파묻혀서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등의 시간이 모두 회사 소유로 넘어가게 되었던 거야. 그렇다고 출장을 간다고 해서 24시간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회사에게 일과 후 개인생활을 통째로 빼앗기는 것을 생각하니까, 거기에 비해서 받는 체제비는 너무 미미한 거더라구.

서비스 기사를 인격체가 아니라 돈을 벌어다 주는 기계로 대우하는 걸 증명하는 또 다른 예로는 세븐일레븐과 같은 편의점과의 서비스 계약이 있었어.  보통 이런 편의점과의 계약은 본사 차원에서 (특히 세븐일레븐의 경우, 캐나다 주요 도시에서는 2015년 당시 전부 본사 직영으로 운영되었다) 일년마다 갱신되는데, 연간 서비스 비용을 통짜로 계산해서 계약이 이루어 지거든. 말하자면, 일년에 서비스 출장이 몇 회 이루어 지든지 간에, 그리고 얼마나 야간이나 주말 서비스가 이루어지든지 간에, 세븐일레븐 입장에서는 연간 서비스 비용에 차이가 없는 거야. 물론 서비스 기사 입장에서는 야간이나 주말에 서비스를 나가게 되면, 오버타임 1.5배로 계산되어 돈을 제대로 받고, 출퇴근 운전시간도 계산을 받지만, 세븐일레븐 매장의 관리 잘못이나 실수로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면, D 식품과 세븐일레븐 사이의 계약에서는 추가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거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정말이지 서비스 콜이 밤, 낮, 주말에 상관없이 무제한으로 쏟아지게 되는 거야. 게다가 계약에 의하면 응급콜은 4시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에, 당직근무 서비스 기사나 주말근무 기사들은 미쳐 돌아버릴 수밖에 없는 것인데, 회사 입장에서는 세븐일레븐과의 계약은 마치 비용을 다 제하더라도 짭짤한 고정수익으로 간주되는 건지, 저렇게 불리한 계약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고 있더라.

뿐만 아니라, 이런 형식의 서비스 계약을 아예 최근 유행하고 있는 ‘구독 (subscription)’ 형식의 마케팅이라고 명명하여 D 식품의 차세대 경영 전략으로 설정했고, 내가 퇴직할 무렵에는 세븐일레븐과 같은 편의점뿐 아니라 맥도널드와 같은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으로까지 서비스 ‘구독’ 계약을 확장하려고 하더라구. 결국 현재는 세븐일레븐 뿐만 아니라 맥도널드 마저 주말,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서비스 콜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어.

입사 초기에 트레이닝을 해 준 내 사수 중 한 명은, 자기가 선임 기사 중 유일한 독신이기 때문에 당직 주간이 항상 연휴가 낀 주에 배치된다고 볼멘소리를 했는데, “하지만, 이 놈의 회사는 주말이고 밤이고 간에 너무 바빠서 도저히 연애를 할 수 있는 틈을 주지 않아. 아마도 평생 나는 혼자 살게 될 것 같아. 그럼 평생 연휴가 낀 주에 당직을 하는 인생이겠지”라고 자조적인 한탄을 하더라. 듣고 있을 때는 웃겼는데, 막상 내 앞에 다가오니까 공포영화가 되버리더라구. 쉴 새 없이 돈을 벌게 되는 것 까지는 좋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은 생각이 드는 때가 계속해서 생겨났어.

그렇다고 일개 서비스 기사 입장에서 회사의 경영 방침에 대해 왈가왈부 하기는 어려웠고, 그냥 직원들끼리 만나면 서로의 푸념을 들어주는 것 밖에 없었지. 그러던 중 비슷한 얘기를 회사 최고참 직원에게 늘어놓았는데, 그가 예전에 T 냉동 (D 식품이 독점 계약을 맺고 설치/수리 서비스를 위탁으로 하고 있는 기계들의 제조사) 에 가서 연수를 받을 때의 일화를 얘기해주더라. 

T 냉동의 슬러시나 아이스크림 기계의 경우 비교적 크기가 작은 편이었는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 더 많은 제품을 놓고 팔아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편의점이나 패스트 푸드 레스토랑에서 인기가 있었거든. 근데, 기계 사이즈가 너무 작다 보니까 기계 내부에 들어있는 모든 배관이나 부품이 어처구니없이 엉켜있어서, 부품 교환 등의 수리가 무척 어렵게 되어있는 디자인이기도 했던 거야.

그래서 같이 연수를 받던 수리 기사 중 한 명이 T 냉동의 엔지니어에게 물었다고 해. 애초에 제품을 디자인 할 때부터 고장수리의 편의성도 같이 고려해 줄 수 없냐고…. 그랬더니 그 엔지니어가 한다는 말이 “너희들 모두 시간당 급여를 받는 사람들 아니었어? 고치기 어려워서 천천히 고치면 되지. 그러면 너흰 돈도 더 벌고 좋을 거 아니야?” 그런 거였어. T 냉동 입장에서 봤을 때, 유지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디자인이라는 비판은 맥도널드나 세븐 일레븐과 같은 고객들로부터나 들어줄 수 있는 비판 이었던 것이지, 이들에게 있어서 D 식품이나 다른 서비스 파트너들은 그저 자사 제품에 기생해서 먹고 사는 하청업체에 불과했던 거야. 그리고 우린 사생활을 포기하면서 그 하청업체에 돈을 벌어다 주는 직원들 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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